벼랑 끝 두 잠룡 몸 사리다간 벼랑 아래로…
공통점이 있다.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며 좌충우돌한다. 중심이 올곧지 않고 속이 차지 않은 리더십 때문이다. 대선주자로서 다루고 있는 주요 이슈도 자주 도마에 오른다. 룰(Rule) 싸움이 그것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가 공천규칙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은 두 사람 정치 그릇의 크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안심번호 공천제 합의도 양쪽의 필요에 의한 불가피한 ‘공동전선’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대통령 하려는 사람이 공천싸움에 저렇게 집착해야하는지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내년 4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물러설 수 없는 격돌이 예상된다. 하지만 싸움의 중심에 양당 대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 성급해 보인다. 총선 스코어가 대통령선거의 예비점수로 나오겠지만 그것이 당대표에게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정치인 김무성·문재인’이 제20대 총선에 미칠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아 보인다.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가 그나마 낫다’는 생각으로 당적 없이 한나라당 윤리위원장(2006~2008년)을 지낸 인명진 갈릴리교회 원로목사를 만났다. 인 목사는 소외된 노동자를 위한 도시선교운동의 대부로서 1987년 6월 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지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공동대표로서 통일문제 특강에 나섰던 그를 지난 6일 안양대학교에서 만나 정국의 맥을 짚어봤다.
인명진 목사는 김무성·문재인 양당 대표를 향해 좁고 얕은 정치를 버리고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피하니까 궁지에 몰린 것이다. 어떤 문제든 직접 책임지고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리더가 뭐냐. 비전이 있어야 하고 헌신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여야 대표는 몸조심만으로 대통령후보가 되려는 사람으로 비친다. 비전이 없어 보인다. YS(김영삼), DJ(김대중)는 민주화라는 비전이 있었다. 그런데 김무성, 문재인 대표로부터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보지 못했다. 지금 국민들은 ‘3포’니, ‘5포’니 하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두 사람이 공천 방식을 놓고 논쟁하는 것을 보면 대통령감으로서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좁고 얕은 정치를 버리고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이 최근 많이 무너졌다.
“자업자득이다. 국민을 등에 업지 않고 대통령 심기를 맞추는 정치를 하고 있다. 이런 정치는 당대표로서 맞지 않고 더구나 대통령후보로서 더욱 안 맞다. 본인의 약점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그러면서 큰 방향의 전략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실책이 반복된다.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제 목소리 내가면서 약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국민이 못 받아들이면 대통령 안 되는 것이다. 당당하게 평가받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주변에 전략가가 없는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본인의 한계다.”
―청와대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낼 형편이 안 된다.
“대통령선거에 안 나가겠다고 하면 청와대가 그럴 일 없다. 대선주자라서 견제하고 흔드는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마음을 비우고 있지 않으니 모든 게 불편하다. 욕심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싸움은 원래 홀가분하게 하는 것이다. 권투선수가 넥타이 메고 와이셔츠 입고 링에 오르지 않는다. 팬티 한 장에 글러브만 끼고 하는 게 권투이듯 정치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에 맞서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당대표로서 자기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와 전쟁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출직 대표로서 자기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을 자기 문제로 만들고 의원 다수의 뜻을 받들어 당대표로서 뜻을 전달했어야 한다. ‘다음 타깃은 김무성’이라는 얘기가 있어도 여기에 움츠릴 게 아니라 더 강하게 나갔어야 한다. 국민이 누구 편을 들겠는가. 이런 당대표에게 청와대가 찍어내기를 하면 대통령은 민심의 역풍을 맞는다. 이게 정치다.”
―당내 친박의 반발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반대쪽 사람은 흔들 수밖에 없다. 대표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니 강도가 더욱 세지는 것이다. 대표 힘 빼기 전술이 먹히고 있다. 윤상현 의원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일면 할리우드 액션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천기누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름이 부쩍 많이 거론된다. 국내 정치에 영향력이 거의 없는 ‘반기문 대망론’은 청와대나 친박으로서 지금 꼭 쓰기 좋은 카드다.”
―김 대표의 대권가도는 순항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대표직 수행 과정을 보니 더욱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유하자면 국회의원 선거는 일종의 전투인 셈이고 대통령선거는 한마디로 전쟁에 해당한다. 대권가도 전체가 전시상황이다. 지뢰밭의 연속이다. 내가 살겠다는 마음보다 전쟁을 이기겠다는 결의가 더 중요하다. 김 대표는 크게 보지 못하는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축구경기를 할 때도 볼을 잘 다루는 기교파보다 시야가 폭넓은 선수가 결국 게임을 주도한다. 대선주자의 힘은 국회의원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서 온다. 이런 믿음이 약하다.”
―김 대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대표로서 본분을 다해야 한다. 대표직은 당원과 국민이 뽑아준 것이지 대통령이 임명한 자리가 아니다. 할 말 하는 대표가 되어야 정상적인 당청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대선 주자로서 한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랜드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개헌을 비롯한 권력구조 개편이나 남북문제에 관한 획기적인 정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천제도 개선안은 현실성이 없고 정당의 책임정치에도 맞지 않다. 당이 책임지고 공천권을 행사하고 국민 평가를 받는 것이 옳다. 국민이 정당 후보를 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생각해봐야한다. 무엇보다 당대표가 이런 문제에 깊이 빠져있는 게 더 큰 문제다.”
―문재인 대표는 사정이 좀 더 딱하다.
“이대로 가면 총선 대패라고 하니 그럴 것이다. 문제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래 야당은 YS, DJ 이후 대표가 독자적으로 당을 이끈 적이 없다. 혼란이 더 컸다는 의미다. 집단지도체제가 가장 합리적인 운영체제였다. 문 대표가 다른 세력을 끌어안고 자신은 여럿 중의 하나(One of them)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당내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제공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계파 나눠먹기가 아닌가.
“이런 틀을 한 번이라도 만든 적이 있는가. 혁신은 모든 세력을 모아놓고 해야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야 한다. 나는 괜찮고 다른 사람은 혁신 대상이면 누가 혁신에 동의하겠는가. 또한 가장 좋은 혁신은 공천혁신이다. 당의 이념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 유권자에게 평가받는 게 선거다. 정당 혁신은 공천 혁신으로 마무리된다. 제도로서 공천을 혁신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무책임해 보인다. 국민은 사람 보고 투표하지 선출방식을 보고 투표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은 구조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나.
“새누리당 반대를 통해 이익을 얻는 시대는 지났다. 아직 거기에 갇혀있다.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국민은 야당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부를 견제하고 여당을 비판하는 야성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수권세력으로서 능력을 갖추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새누리당이 미워도 야당이 정권 잡으면 국정운영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정권교체는 없다.”
―문 대표는 총선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본인 주도로 총선을 치르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 때문에 총선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패한다. 또한 당권을 쥐고 공천권 행사에 나설 것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권한을 제한하고 총선체제 전환을 공식화해야 한다. 조기 총선 체제가 되거나 비상대책위 수준의 기구 구성으로 혁신공천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
―신당 전망은 어떤가.
“큰 변화의 출발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태풍의 눈이 될지 찻잔 속 미풍으로 끝날지 예단할 수 없다. 공천 갈등이 숨어있어 새누리당 안에서 친박, 비박 싸움이 심해져 일부 세력이 이탈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도 당권파 주도로 총선이 치러지는 상황이 오면 당이 깨질 수도 있다. 친박, 친노를 제외한 세력이 새로운 당을 만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데.
“창당선언문을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호남 주도 신당이라는 출발이 잘못됐다. 새정치연합과 경쟁하는 모습보다 새판을 짜겠다는 선언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자살, 저출산, 미증유의 위기, 백척간두에 선 국가 등을 내세우고 정치인 천정배가 국난 타개를 위해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 되겠다고 격문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정치가 이런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시간이 갈수록 정치의 질이 더욱 나빠진다.
“여당은 청와대에 끌려 다니고 야당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치 때문에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정치인이 공적 의식을 버리고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언론은 자본과 권력에 포위된 것처럼 보인다. 세월호가 메르스가 우리 사회와 민족에게 경고를 주는데도 가장 앞서 바뀌어야 할 정치가 이를 무시한다. 정신 못 차리면 큰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깨어있는 국민이 나라를 바꾼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을 꼭 새겨야할 때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
손학규 전 대표가 살아남는 길 “당의 총선 필승 위해 조건 없이 구원등판해야” “총선 전에 아무 조건 없이 내려와야 한다. 총선 끝나고 야당 망한 뒤에 백마 타고 내려오면 누가 왕자님이라고 부를 것인가. 부른다고 오면 안 된다. 벼랑 끝에 선 당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내려왔다고 배짱 있게 얘기해야 한다. 그게 손 전 대표에게 맞는 승부수다. 설사 문재인 대표가 부르지 않더라도 나와서 총선을 치러야 한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사람에게 그 같은 선택이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고 다시 질문했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큰 지도자로 남지 못한다. 그런 마음을 버리고 오직 당을 살리겠다는 생각을 할 때 본인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작은 계산으로 큰 정치인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은 더욱 그렇다. 진심을 담고 토굴에서 벗어나야 그 진심이 널리 퍼진다. 사람은 영물이고 정치란 또한 이런 것이다.” 인명진 목사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희생하고,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이 비전을 내세워야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다”며 “그 안에서 좋은 정치가 나오고 국운을 키울 대통령이 태어난다”고 덧붙였다.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