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은 나눴어도 연출은 없습니다”
▲ 관객 50만명을 꿈꿨던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꿈 같은 소리 마세요. 독립영화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고영재 PD)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워낭소리>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접한 뒤 이충렬 감독과 고영재 PD가 나눈 대화, 아니 말다툼 내용이다. 결국 고 PD는 50만 관객이 들면 정식으로 사과하겠다고 약속했고 얼마 전 실제로 정식 사과했다. ‘100만 관객 신화’를 이룬 독립영화, 그런데 너무 큰 성공은 외려 만만찮은 역작용을 불러왔다. 하다못해 고 PD는 지난 20일 <워낭소리>의 흥행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왜 이런 일까지 생겼을까. 이 감독을 직접 만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어봤다.
사실 영화 <워낭소리>는 독립영화가 아닌 TV에서 방송되기 위해 제작된 방송용 다큐멘터리다. 연출을 맡은 이충렬 감독 역시 15년여를 외주프로덕션에서 독립 PD로 활동하며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워낭소리>를 퇴짜 놓은 방송사가 얼마나 아쉬워할까, 만약 TV에서 방영됐어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까 등등의 궁금증이 발동되는데 이는 곧 왜 방송사가 <워낭소리>를 퇴짜 놨을까 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다큐멘터리를 담당하는 방송사 PD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소재와 주제가 너무 평범하다’ ‘불특정 다수인 시청자 대상 방송에선 동물학대라는 소수의견도 신경 쓰인다’ ‘내레이션이 없어 방송용으로 부적합하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여기서 먼저 이 감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봐야 한다. 본래 미대에 가고 싶었던 이 감독은 부모의 뜻에 따라 명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뒤늦게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에 취직했던 그는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어 다시 지인의 소개로 외주 방송 프로덕션에 들어가 15년가량 독립 PD로 활동해왔다.
“프로그램 구성과 편집에서 베테랑 작가와 방송사 PD, 그리고 외주 프로덕션 대표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힘겹게 만든 작품을 시청자가 아닌 방송국 PD에게 평가 받아야 하는 게 서글펐죠. 게다가 저작권도 방송사의 몫이 돼 성취감도 없었어요.”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성애자, 에로배우, 무당, 비전향장기수 등 ‘쎈’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해온 이 감독은 아예 독립해 혼자 투자를 받아 사전제작한 뒤 방송국에 파는 형식을 선택했다.
<워낭소리>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방송을 타지 못했다. 내레이션을 요구해 이 감독이 직접 내레이션을 했고 늙은 소가 죽은 이후의 모습을 원해 할아버지가 젊은 소 길들이는 이야기도 추가 촬영했지만 그 이상의 편집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 이렇게 방송국에서 퇴짜 맞은 <워낭소리>는 독립영화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고 PD를 만나 독립영화로 재탄생했다.
작품 자체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훌륭한 독립영화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다큐멘터리로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 특히 맞춤형 감동을 위해 편의적으로 연출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한미 FTA 반대 시위 현장 앞을 지나는 노부부를 태운 늙은 소와 달구지다.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만큼 연출된 장면 아니냐는 의혹도 크다.
“할아버지는 귀가 거의 안 들리시는 데다 영상 촬영의 개념도 없어 카메라로 사진만 찍는 줄 아시는 분이세요. 게다가 할아버지가 할머니 잔소리 다음으로 싫어하시는 게 바로 저희 촬영팀 오는 거였어요. ‘큐’가 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제 의도대로 상황을 연출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미 FTA 반대 시위 장면을 영화에 굳이 넣은 것은 당시 그 지역의 다양한 소리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란다.
“<워낭소리>는 영상보다 소리로 삶의 원형질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할머니 잔소리, 소 울음소리, 워낭소리, 농기계 소리, 농약 치는 소리, 새 울음소리, 그리고 시위 소리 등이 당시 그 지역 소리의 원형질들이었죠. 그냥 시위대 앞을 지나갔으면 별 장면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구경삼아 소달구지를 세우셔서 기대 이상의 장면이 포착된 겁니다.”
또한 명절을 맞아 노부부의 집을 찾은 자식들과의 대화 장면도 매우 어색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아마추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 여든 살의 할아버지와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마흔 살 소의 교감을 다룬 영화 <워낭소리>. | ||
기술적인 허점도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디오와 비디오가 잘 맞지 않는 장면이 있고 동시에 일어나지 않은 장면을 이어 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들도 있다.
“그런 지적은 다큐멘터리의 기준을 편협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의 삶이 다양하지 않고 매일 반복되는 삶이었기에 인서트 장면을 활용한 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어요. 사금파리처럼 흩어져 있는 할아버지 삶의 원형질을 하나의 온전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주워 모으는 과정이 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빛나는 것들만 주워 완벽하진 않지만 온전한 그릇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버지’ ‘어머니’ ‘부모의 헌신’ ‘고향’ 과 같은 정서를 그리고자 했거든요. 결국 관객들도 이런 정서를 느끼지 기술적인 부분을 느끼는 것은 아니잖아요.”
특히 액티비즘 다큐멘터리하고는 비교를 경계했다. 사실 액티비즘(행동주의) 시각에서 <워낭소리>는 문제가 많은 작품일 수 있다. 정치나 사회 현안을 <워낭소리>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조작’ 논란이 불거지고 심하면 법적 조치까지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
“기존 다큐멘터리는 시간 순서대로 기록해서 이슈를 얘기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액티비즘이 많습니다. 액티비즘에선 정서나 감동보다 팩트를 나열해서 비판하는 기능이 중시돼 동시성을 리얼로 봅니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의 답이 액티비즘은 아닙니다. 저는 삶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1만, 2만, 10만 더디게 올라가던 관객 수가 멀티플렉스 극장의 가세로 상영관이 급증하며 금세 100만에 이르렀다. 독립영화계가 문제점으로 지적하던 멀티플렉스의 파워가 <워낭소리>의 흥행에도 가속점화장치가 돼준 셈. 이런 분위기가 자칫 ‘정책 지원이나 제도 정비를 언급하기 전에 작품부터 잘 만들라’는 논리를 야기할 수도 있다.
“<워낭소리>는 로또처럼 운이 좋았을 뿐이지 이것이 독립영화 전체의 모습은 아니에요. 앞으로 이런 영화가 계속 나올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얘기가 바로 본질입니다. 또 ‘잘 만들면 된다’는 얘기가 만연되면 자꾸 되는 것만 하려는 획일성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핵심은 다양성, 다양한 꿈인데 그걸 잃어버린다면 정말 큰 불행이겠죠.”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