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으로 얻은 회장직 뒤탈 날 줄 몰랐나
조남풍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왼쪽=연합뉴스)이 선거법 위반, 배임, 배임수재 등 각종 비리 혐의로 노조로부터 고발당해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향군은 예비역 132만여 명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안보단체로 전국 13개 시·도회, 220개 시·군·구회, 3288개 읍·면·동회와 해외에는 22개 지회를 갖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있었던 향군 총회에서 조남풍 당시 회장 후보는 참석한 385명의 대의원 중에서 250명의 지지를 받으며 35대 회장에 당선됐다.
조 회장이 당선된 지 4개월도 채 안된 지난 8월 향군 이사 대표, 노조 등은 ‘향군정상화 모임’을 결성해 조 회장을 선거법 위반과 배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향군정상화 모임’ 측에서는 조 회장이 선거를 앞두고 대의원 200여 명에게 돈 봉투를 돌려 회장에 당선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향군 선거캠프 요원이 작성한 자필 문서에는 지난 4월 7일부터 선거가 있기 전인 9일까지 선거캠프 요원들이 500만 원을 건넨 서울시내 지회장을 맡고 있는 대의원 19명의 이름과 이들의 연락처, 접선장소·시간 등이 적혀 있었다. 이외에도 전국 13개 시·도회 및 해외 지회장 240여 명에게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까지 건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캠프 요원들이 돈을 전달한 후 조 회장 측근에게 ‘임무완료’라고 전송한 문자 메시지의 진위를 확인 중에 있다.
이 같은 증거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조 회장은 선거 전 전체 대의원 77%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불법 자금을 건넨 것이고 이들 표의 일부를 받아 회장직에 당선됐기 때문에 이는 엄연한 선거법 위반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7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재향군인회 건물과 산하기업 등 5~6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향군건물에 있는 조 회장의 집무실과 향군상조회 사무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향군타워 등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사업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향군은 공직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공직자선거법 위반에는 저촉되지 않는 실정이다. 선거 관련 불법 정황이 포착됐다 하더라도 조 회장을 업무방해죄로밖에 기소할 수 없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조 회장은 당선된 이후 향군 산하기관 업체 대표를 임명하면서 뒷돈을 받은 인사 청탁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노조 측은 조 회장이 당선된 후 중앙고속, 향군상조 등 향군산하기관 대표를 임명하는데 뒷돈이 오고갔다고 주장했다.
선거요원 자필 문서에는 ‘상조회 사장 인사 건’, ‘5월 초 5000만 원’, ‘6.12 17:30 교대역 커피숍 5000 환수’ 등의 내용과 또 다른 산하 업체인 ‘충주호’, ‘통일전망대’ 등이 적혀 있었다. 이는 5월 초에 박 아무개 씨로부터 5000만 원을 받고 그를 산하업체 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이 아무개 씨에게 1억여 원을 받았기 때문에 돌려줬다는 것이다. 검찰은 향군상조회 대표인 이 씨를 상대로 대표 선임 과정과 취임 대가로 돈이 오갔는지를 조사했다.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조 회장이 대의원들에게 건넨 수십억 원에 이르는 선거자금의 출처다. 이와 관련해 조 회장은 취임 2개월도 안 된 지난 6월 1일 기존 경영본부장을 해임하고 공개채용 절차를 무시한 채 조 아무개 씨를 향군 경영본부장에 임명했다. 게다가 조 씨가 지난 2012년 BW(신주인수권부사채) 사건으로 향군에 790억여 원의 피해를 입힌 최 아무개 씨의 측근으로 알려지면서 노조의 공분을 사고 있다. 조 씨는 지난 6월 1일부터 내년 5월 31일까지 2년간 경영본부장에 임용된 상태다.
이에 대해 향군 노조 측에서는 조 회장이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받은 대가로 무리한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항의하고 있다. 거액의 선거자금과 무리한 인사 의혹의 배경은 지난 4년 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1년 당시 향군 U-케어사업단장을 맡았던 최 씨는 G 사를 포함한 코스닥 상장사 4군데가 790억여 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향군의 지급보증을 이행했고 그 대가로 277억 원을 챙겼다.
1년 후 만기가 됐음에도 G 사 등이 돈을 갚지 않자 투자사가 지급보증을 선 향군에 변제를 요구했고 향군이 신규대출로 790억 원을 갚으면서 최 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최 씨는 이때 횡령 혐의로 지난 8월 21일 2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상고를 준비 중이다. 노조 측은 최 씨의 측근인 조 씨가 경영본부장에 임명된 직후 최 씨와 향군간의 소송에서 최 씨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도록 향군이 회수한 채권금액을 214억 원에서 450억 원으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향군 노조 관계자는 “조 회장의 부당한 인사권 남용을 알리기 위해 노조를 결성해 국가보훈처, 감사원,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그 과정에서 대의원을 매수해 회장직을 돈으로 산 정황까지 포착했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엄벌을 받아 더 이상의 향군의 재정적 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향군 관계자는 “지금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답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시비가 가려질 것 같다”고 답했다. 또 다른 조 회장 측근은 “아는 것이 전혀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조 회장을 고발한 노조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 주에 조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며 “조 회장 주변의 자금 추적을 통해 금품 수수 정황이 어느 정도 포착된 상태다. 조 회장 개인비리와 관련된 또 다른 첩보도 입수돼 이를 확인하고 있다. 사법처리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