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부실수사가 ‘캣맘 혐오’ 부추겼다
104동 3~4라인에서 바라본 사건 발생 지점. 아이들은 이쪽 옥상에서 5~6호라인 옥상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오전 11시께 기자는 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의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번화가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으며 작은 야산이 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있었다. 총 네 개 동으로 이뤄진 이 아파트 단지는 정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101동, 102동이 위치해 있었고, 단지 한 가운데의 어린이 놀이터와 쉼터 등을 지나면 103동, 104동이 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104동 5~6호 라인 현관 앞 화단이다.
104동의 현관은 정문을 등지고 야산 쪽을 향해 있었다. 아파트 단지 구조를 잘 모르는 외지인은 이 현관을 쉽게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기자도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아간 후에야 사건이 발생한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사건 현장이 가까워지면서 나무와 벤치 등에 걸린 주황색 폴리스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104동 현관을 정면으로 보고 오른쪽에 위치한 사건 발생 지점에는 벤치 두 개가 나란히 배치돼 있었다. 그리고 해당 벤치 앞엔 피해자인 박 아무개 씨(여·55)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건 발생 지점 오른쪽엔 주차장을 촬영하는 고정식 CCTV가 설치돼 있었다. 104동 1호~6호 라인 주차장 전체를 촬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경찰은 해당 CCTV를 통해 벽돌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확인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주차장에 다니는 차를 피해 줄넘기를 하는 등, 아이들도 이용하는 길이라 많이 놀랐다” “고의로 던진 것이 사실이라면 아파트 단지 구조상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 소행으로 보이는데, 이웃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주민들은 해당 사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동안 논란이 돼온 ‘캣맘’ 갈등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 주민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날 오후 1시께 기자와 만난 해당 주민은 사건이 발생한 104동 아파트 맞은편인 101동 상층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8일 오후 4시 30분~40분께 옥상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봤다”고 말했다. ‘캣맘’ 사건이 발생한 일시와 시각이 일치했다.
이 주민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부엌에서 104동 옥상이 보이는데, 그날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세 명이 삼각형 모양의 지붕 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듯 놀고 있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듯 보여 깜짝 놀랐지만 난간에 무사히 착지하는 것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아이들이 놀던 지점은 104동 3~4호 라인 쪽이라 사고 지점과 거리가 있어 경찰에 제보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04동 3~4호 라인과 사건이 발생한 5~6호 라인은 모두 18층이다. 아래에서 옥상을 올려보니 5~6호 라인까지 쉽게 오갈 수 있을 듯 보였다.
<일요신문>이 직접 104동 3~4호 라인 현관을 통해 옥상에 올라가 봤다. 1층 복도를 찍는 CCTV가 있었고, 엘리베이터 내에도 CCTV가 있었다. 옥상에는 별도의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에어컨 등으로 보이는 기계류가 설치돼 있었다. 공간은 성인 한두 명만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협소했다. 난간이 없어 위험해 보였지만, 초등학생이라도 지붕과 기계류 등을 넘어 간다면 사건이 발생한 5~6호 라인 옥상까지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옥상을 확인한 후 이 아파트 경비원을 찾아 아이들이 옥상에 오르는 것을 목격한 적 있는지 물었지만, 이날 근무했던 경비원은 “지금까지 아이들이 옥상에 오르는 것을 본 적 없다”고 대답했다. 근처에 별도로 위치한 관리 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지난 15일 오전,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용인서부경찰서 최관석 형사과장을 찾았다. 전날 미리 약속을 하고 최 과장을 기다렸지만 1층 현관에 나타난 그는 “바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다시 최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옥상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CCTV로 아이들이 올라가는 장면을 확인한 적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없었다”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오전, 경찰은 “‘캣맘’ 사건의 용의자로 초등학교 4학년 A 군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1일 ‘캣맘’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며 “사건 발생 직후 해당 아파트의 CCTV 일주일 분을 분석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엘리베이터 입구 및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CCTV 역시 사건과 연관이 있는 듯한 장면은 녹화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경찰은 “100여 가구에 이르는 104동 주민들 중 용의선상에 오른 5∼6라인, 3∼4라인 주민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고 했다. 여기에서도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 16일 오전 11시께 브리핑을 열고 “사건이 발생한 5∼6호 라인을 집중적으로 수사하던 중 3∼4호 라인까지 수사를 확대해 해당 라인 CCTV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건 발생 직후 신원미상의 초등학생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경찰이 공개수사로 전환하며 “해당 아파트의 CCTV 일주일 분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발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한 뒤 104동 5~6호라인 주민 등 20여 명을 대상으로 DNA를 채취하고 동의를 구해 집 안을 수색하는 등 조사를 벌여왔다. 여기에 3차원 스캐너로 벽돌 궤적을 분석하고 있었으며, 지난 16일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벌일 예정이었다. 범인 특정이 지연되면서 사건과 전혀 관계없었던 ‘캣맘 혐오증’ 등의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경찰의 “사건 발생 직후 해당 아파트의 모든 CCTV를 조사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촌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