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 봐야 월급 깎여” 부글부글
이상민 새정치연합 의원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노조들의 임금피크제 반대 시위. 사진제공=이상민 의원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최 아무개 씨(여·28)는 최근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일정 연령 이상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조정하는 임금피크제 시행을 앞두고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장 먼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였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일정을 앞당겨 이달 말까지로 조정했다. 그만큼 강하게 도입의지를 보여주는 것. 이 같은 정부의 강한 추진으로 공공기관 도입률은 60%를 넘어섰다.
하지만 공공기관 직원들의 볼멘소리도 상당하다. 사실상 준공무원 신분으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월급을 깎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최 씨는 “정부에서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공공기관은 임금인상률을 깎겠다는 엄포를 놓은 상태다. 때문에 기관 내에 젊은 직원들과 연차가 높은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세대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시니어 직원들은 임금인상률이 1%에 그친다고 해도 손해보는 게 크지 않다. 우리 같은 젊은 직원들한테는 임금피크제가 먼 얘기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에 다니는 정 아무개 씨(여·27)는 “우리 기관은 인원이 적어 별다른 소란이 있진 않았다. 노조가 있어도 별로 힘을 쓰지 못해 단체행동도 없다. 다만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부서의 한 차장님이 ‘내 월급 곧 반토막 나는데 그럼 젊은 직원들이 밥 사주려나’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져 분위기가 이상했던 적이 있다. 가뜩이나 50대 이상 차장급에서 노는 인력이 많은데 ‘일해 봐야 매년 월급 깎이는데’라는 생각에 더 일을 안 하니 젊은 사람들 업무 부담이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공기관 중에도 직원들이 ‘파워’가 있는 곳은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정부출연 연구기관 직원들은 삭발, 단식농성을 하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다. 지난 15일 공공연구노조는 기재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1월 이후 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의료기관도 움직임이 심상찮다. 전남대병원에서는 임금피크제 직원 설명회를 열기로 했지만 직원들의 반발로 무산됐고, 경북대병원 역시 임금피크제 동의 서명을 추진하면서 내부 갈등이 크게 번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인 이 아무개 씨(여·30)는 “청년일자리 창출이 목표라고 하지만 기관별로 신입직원 채용이 얼마나 늘겠냐. 인력 한 명 더 충원하는데 소속 부처 눈치를 얼마나 보는 줄 아나. 성과급, 임금인상률로 협박해서 월급 줄여놨으니 내년 인력충원은 얼마나 될지 지켜볼 일이다. 좋은 건 공무원들이 다 하고 나쁜 건 공공기관부터 시킨다”며 불만을 표했다.
삼성, LG 등 주요 기업 11곳 역시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LG그룹은 이미 전 계열사가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고, 롯데 포스코 등은 일부 계열사에서만 실시하고 있고 내년부터 전 계열사로 확대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현대차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한 아무개 씨(여·27)는 “사내에선 ‘60살까지 다니게만 해준다면 임금 더 깎아도 된다’고 하소연들 한다. 사실상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까지 회사를 다니기도 힘들어 크게 파장이 없는 것 같다. 연봉 적어도 거의 대부분 정년보장 되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배부른 소리 하는 거 아니냐”며 푸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