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낙하산에 자리 내주기?
지난 19일, KB금융은 지배구조위원회를 열고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후보로 김옥찬 사장을 내정했다. 오는 11월 KB금융 이사회에서 김 사장 선임을 최종 승인하면 그는 서울보증에서 인수인계를 마무리한 뒤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김 사장은 서울대사대부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82년 국민은행에 입행해 30년여 동안 몸담은 ‘정통 KB맨’이다. 지난 2013년 KB금융이 내분 사태 후유증으로 어수선하던 당시 은행장대행을 맡아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고, 지난해에는 KB금융 회장 후보로 추천됐을 정도로 안팎의 신임이 두텁다.
그런 그가 KB금융 사장으로 복귀하는데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그는 KB금융 회장 후보에서 사퇴할 당시 많은 의문을 남겼다. 김 사장은 지난해 유력한 KB금융 회장 후보로 추천됐지만, 돌연 자진사퇴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의 사퇴로 윤종규 현 회장이 CEO(최고경영자)로 선임됐고, 얼마 후 김 사장이 서울보증 사장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9월 서울보증은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6명의 후보를 추천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장 선임 절차가 갑자기 비공개로 전환되더니 돌연 김옥찬 사장이 등장해 CEO 자리를 꿰찼다. 김 사장은 국민은행에서 방카슈랑스부장을 담당했던 이력 외에는 보험 업무를 다뤄본 경험이 없는 전형적인 뱅커다. 자금부, 신탁증권부, 관악지점장, 재무관리본부장, 경영관리그룹 부행장 등을 지냈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비판이 제기됐고, 서울보증 노동조합이 반발하는 상황으로 번졌다. 그는 서울보증 임시주주총회가 열리기 전날 직접 노조를 찾아가 설득작업을 벌인 뒤에야 사장으로 정식 선임될 수 있었다. 김 사장이 낙하산이라는 꼬리표도 채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사표를 던진 셈이다. 김 사장의 임기는 오는 2017년 10월까지로 2년이나 남은 상태다.
김 사장이 다시 돌아갈 KB금융을 향한 금융권의 시선도 곱지 않다. 김 사장이 맡게 될 KB금융 사장직은 지난 2년 동안 공석이었다. 윤 회장은 지난 3월 개최된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장 선임을 서두르지 않겠다. 당분간은 (없어도) 별 어려움이 없다”고 주주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윤 회장이 당분간 지주사 사장자리를 만들 생각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금융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KB금융의 증권사 인수는 이미 지난해부터 진행된 사업이고, 대우증권의 경우 인수전이 이미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게다가 서울보증 사장 선임 때와 마찬가지로 김 사장은 증권업에 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1일 논평을 내고 “지주사 사장을 선임하지 않겠다고 주주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윤종규 회장이 돌연 입장을 바꾸었다”면서 “감독당국의 외압 또는 KB금융의 감독당국 눈치 보기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더구나 김 사장이 옮기면서 비워질 서울보증 사장 자리는 최종구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낙하산을 내려 보내기 위한 시나리오가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최 전 부원장은 행정고시 25회로 옛 재무부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뒤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거쳤다. 지난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지냈다.
감독기관인 금감원 출신은 재취업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2년간 민간금융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보증의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전체지분의 93.85%를 갖고 있는 회사다. 이에 따라 최 전 부원장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 전 부원장이 낙점될 경우 서울보증은 김옥찬 사장이 남긴 유일한(?) 성과인 민간 출신 CEO체제마저 도루묵이 될 처지다. 김옥찬 사장을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서울보증 사장은 정기홍, 방영민, 김영기 등 관료 출신이 줄곧 맡아왔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김옥찬 사장의 KB금융 복귀는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다소 적절치 못한 것 같다”면서 “서울보증 사장 자리가 ‘시간 때우기’나 ‘관피아(관료 출신 마피아)’의 재취업 용도로 이용된다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다분한 행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