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복수는 나의 것
복수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Eye for Eye, Teeth for Teeth)’’라는 복수에 기반한 형벌을 주장하여, 타인의 눈을 상하게 한 사람은 자기 눈도 상해져야 하고, 타인의 이를 상하게 한 사람은 자신의 이도 상하게 하여 동일한 고통을 부과하는 것을 정의로움으로 여겼다.
동양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동양 사회에 빈번하게 자행되었든 ‘삼족(三族)을 멸했다, 심하면 구족(九族)을 멸했다’는 기록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복수의 심리가 사회 저변에 얼마나 유구한가를 알 수 있다.
사실, 복수의 심리는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오페라도 알고 보면 복수극이고, 한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동명의 영화도 세상에서 상처 받은 주인공들이 벌이는 복수극에 다름 아니다.
◇누구를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론적으로 말해서 가슴 속에 맺힌 원한과 상처는 용서로서만 극복될 수 있다. 복수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영혼과 마음, 심지어 신체적 상태가 온전할 리 없기 때문이다. 설령 복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자신이 받은 원한과 상처가 치유된다는 보장도 없다. 일순간 시원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 올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영화 <밀양>은 용서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드러내 주고 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찾아간 교도소에서 주인공(전도연)은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용서 받아서 마음이 평온한 살인자’를 만난다.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왜 용서해야 하는지, 그러면 피해자의 마음은 어떻게 위로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진정한 복수
<왜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집필한 목사,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증오의 힘이 그를 사로잡고 탈진시킵니다. 증오와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십시오. 가끔은 그 싸움에서 이기기도 하고, 가끔은 흠씬 두들겨 맞기도 할 것입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증오가 당신을 잡아 삼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결국 용서는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원한과 증오와 상처를 받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알고 있었던 단순한 사실인데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용서보다는 복수를 선택할 확률이 여전히 더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서 해야 할 시점이 왔다. 왜 사람들은 용서보다는 복수를 선택하는지를 묻기 보다는 가장 크고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용서보다는 복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복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준 원한과 상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여 끝내는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복수의 첫 걸음이다.
글 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