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앞세워 6·15 재현
▲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최근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DJ-김정일 위원장의 3자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 ||
문 의장의 방북 계획은 청와대 및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9월27일 중앙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 “기본적인 정부의 태도는 포괄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지속 촉구하는 입장이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정부가 추진중인 ‘대북정책 로드맵’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2차 정상회담 개최를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변수이자 주요 고려사항으로 돼 있는 게 북측의 ‘DJ 방북 초청’ 건이다. 북한 대표단은 지난번 서울을 방문했을 때 병상에 있던 DJ를 예방하고 조만간 평양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해 일단 승낙을 받아놓은 상태다. 그러나 그뒤 일시 퇴원했던 DJ가 다시 입원하고 병세가 여의치 않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미 DJ는 평양을 가기에는 기력이 약화한 상태이고 따라서 그의 방북은 당분간 또는 아예 실현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내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아이디어 중 하나가 ‘김정일 위원장을 거꾸로 서울로 초청한다’는 내용의 역제안이다. 이 역제안은 김 위원장의 방문이 DJ와의 면담뿐 아니라 노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1석2조의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고위 소식통은 “DJ와의 만남을 원하는 김 위원장에게 서울에서 회동할 것을 제안하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성사시킨다는 내용의 시나리오가 여권 심부에서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DJ의 병세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동양적 예의’를 정중하게 요구하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게 여권 내 일부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3각 회동은 결국 남북한의 최고 권력자 두 사람의 만남에 한반도 전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DJ까지 개입시킨 그림이라는 점에서 실현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방북 때 노 대통령의 특사 역할을 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 대신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나선 것은 바로 DJ의 개입을 손쉽게 하기 위한 ‘전술적’ 성격이 짙다.
▲ 노무현 대통령 | ||
이런 맥락에서 문 의장은 조만간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DJ를 문병해 이와 관련한 현 정부의 구상과 뜻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후 그가 밝힌 대로 연내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우리측의 의사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이 답방을 수락한다면 그 시기로는 일단 11월이 주목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측 최고 당국자가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는 문제를 미국 등 회원국들과 사전 협의해 보겠다”고 초청 의사를 밝혔다.
물론 시간적 촉박성 등을 고려할 때 올해 내 김 위원장의 방문 가능성은 희박하며, 따라서 내년 적당한 시기에 추진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의 남한 방문 및 이에 따른 3각 회동이 성사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 각 부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가장 크게는 필연적으로 정치현실과 연관돼 우리의 대선구도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 평화통일 분위기와 대북 경제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이를 적극 추진하는 세력과 그 반대세력으로 대권 구도가 양분될 가능성도 있다.
여당으로서는 정권 재창출 구도와 긴밀히 연결되는 셈이다. 여권 인사들은 “지난 2000년 DJ의 방북 및 김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 성사가 집권 후반부에 들어서 계속 추락하고 있던 DJ와 국민의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도를 단박에 90%까지 끌어올렸던 학습효과를 여권이 잊을 리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둘째, 한국의 경제 전략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즉 ‘북방경제 활성화’다. 노 대통령은 “(통일에 대비한 준비와 투자는) 우리 경제에 또 하나의 활로, 또 하나의 시장을 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월남특수’ ‘중동특수’라는 말을 써왔는데 북한은 볼륨이 더 클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인 만큼 ‘북방투자’라고 인식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시장의 광대함과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김 위원장의 한국 방문은 침체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경제의 활로를 뚫고 재계의 판도마저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점을 잘 알고 계산하고 있을 김 위원장의 결단 여부다. 김 위원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떻게 하는 게 최대의 이익을 얻는 길일까를 깊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