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정쟁의 중심에…조선 선조 이후 최악”
이철희 소장은 “박근혜 정부는 소통은 물론 국가적 의제설정, 상황인식, 대처능력 등에서 모두 F학점”이라며 임진왜란 이후 가장 무능한 정권이라고 평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형식과 내용 모두 낙제점이다. 처음엔 참석 범위를 갖고 다투더니 나중에는 대변인 배석, 녹음 여부 등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지질맞다. 방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인지, 정국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인지 성격조차 불분명했다. 정국에 대한 인식이나 현안 해결 의지가 어느 수준인지 그대로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가.
“소신에서 출발했지만 정치적 효과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여론이 나빠지는데도 대통령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 후에 치른 선거에서도 승리한 바 있으니 박 대통령은 계속 밀어붙일 것이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가 지적했듯 박 대통령의 최대 약점은 경제 실패다. 민생파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민 삶이 엉망이다. 정말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념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경제실정에 대한 국민 시선을 일시적으로 돌려놓는 효과를 보고 있다.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20~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견고하지만 중도층이나 무당층은 반발이 심하다. 여론조사에 그대로 나타난다. 총선 국면으로 갈수록 국정화 이슈는 대통령에게 부담스런 부메랑이 될 것이다.”
―정쟁의 중심에 빠짐없이 대통령이 있다.
“새누리당에 대한 소유의식이 매우 강하다. ‘내가 없는 새누리당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식이다. 새누리당을 TPP(Two Park Party)라고 표현하고 싶다. 새누리당의 뿌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화당이고, 위기 때마다 당을 살려낸 게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래서 기업의 오너(Owner)처럼 박 대통령은 자신을 당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다 주로 유신 때 아버지에게 정치를 배운 탓에 대통령을 ‘선출된 왕’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3권 분립이라는 헌법체계를 견제와 균형으로 보지 않고 종속관계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소신과 판단대로 밀어붙이려 한다. 게다가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처럼 본인이 항상 이겼다는 자신감 때문에 매사를 주도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내년 총선에 박 대통령 주도의 이념전쟁이 먹힐 수 있을까.
“어느 세력에게나 유·불리의 조건이 있지만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새누리당이 유리하다고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라고 해서 언제나 이긴다는 법은 없다. 선거로 흥했으니 선거로 망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이 유리한 가장 큰 이유는 야당의 존재감이 워낙 없기 때문이다. 야당이 무기력하니 대통령과 여당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렵겠지만 야당이 질서 있게 정리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식의 정쟁 주도는 새누리당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념과 진영논리만 있고 국정이 보이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임진왜란을 자초했던 조선 선조 이후 가장 무능한 정권이다. 한국형 전투기 핵심기술 이전,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논란 등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장관이 자신의 비서실장을 임명했는데 그날 그 장관이 개각대상으로 발표됐다. 자영업자, 청년, 가계부채 등 민생문제를 봐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없다. 소통은 물론 국가적 의제설정, 상황인식, 대처능력 등에서 모두 F학점이다. 오죽하면 대통령과 장관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다고 하겠는가.”
―대통령 독주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당에겐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여당의 운명이 달라지지만 정당으로서 자율성을 잃으면 결국 정권에 부담이 되고,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의원은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 대통령도 좋든 싫든 정치적 반대자를 용인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공개 반대한 박근혜 의원까지도 결국 포용하지 않았나. 그게 정당의 자율성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청와대만 바라보는 여당은 국민 신뢰를 잃게 된다. 대통령만 잃는 게 아니라 정권도 잃는다. 특히 김무성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총선국면을 맞으면 성패도 성패지만 자신의 대권가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다. 집권 3년차 총선에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 김 대표에게 미래는 없다.”
―김 대표는 때를 기다린다고 한다.
“자신감과 리더십 부재를 에둘러 표현하는 변명이라고 본다. 때는 만들어가는 것이지 기다리는 게 아니다. 김무성 대표가 정국의 주요 의제를 하나도 만든 게 없다. 유승민 의원 사태, 국정화 문제 등을 봐라. 모두 대통령 작품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를 대통령이 직접 띄운 것도 김 대표에게 불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청와대 5자회동에서 김 대표가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한 것처럼 처신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오너십(Ownership)과 김 대표의 리더십(Leadership)이 충돌하는 상황이 오면 결국 김 대표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단기적으로 당의 분란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봤다. 대통령을 직접 상대하면서 존재감이 부각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국정화 싸움이 문 대표나 야당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은 성급하다. 이번 싸움이 전통적 지지자를 결집할지 몰라도 비새누리당 성향의 국민 설득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총선에서 이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문 대표는 아직 먹고 사는 문제에 설득력 있는 대안과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 대한 국민 요구는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정당, 정책정당, 민생정당으로 변신하라는 것이다. 보수결집의 효과는 ‘투표장’에서 나타나고, 진보결집의 효과는 ‘유세장’에서 나타난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그런데도 역사 교과서 문제에 정의당, ‘천정배신당’과 연대를 했다.
“이런 연대는 제도개혁, 비례대표, 의원정수 등 선거법 문제에 대처할 때 꼭 필요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로 야권이 연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속 가능성이 별로 없다. 교과서 문제는 정당보다 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시민단체 중심으로 국민운동을 벌이고 정치권은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의 편제가 좋지 않을까. 정쟁이나 진영 대결로 나뉘는 구도는 나쁘다.”
―문 대표가 3자연대를 할 때 새정치연합 내부는 분열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갈등이 여전하지만 이제 타협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대로 가면 총선이 어렵다는 공통 인식이 있다. 하지만 친노나 비노 중 어느 누구도 현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대선주자(문재인·안철수·박원순), 중진(김한길·박지원·정세균), 통합행동(박영선·김부겸·김영춘), 386 운동권 출신 등이 그룹을 형성하며 섞여있다. 문 대표 체제가 역부족이라는 데 다들 동의하지만 다른 그룹도 국민을 설득할 선명한 기치가 없다. 선거로 뽑힌 당대표를 낙마시키려면 그만한 명분과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어떤 경우라도 문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다.”
―문 대표는 어떻게 당을 통합해야 하는가.
“인물이나 정책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혁신의 길’과 현직 의원을 모두 재공천하는 ‘투항의 길’이 있다. 후자를 선택하면 당연히 망한다. 리더십을 발휘해 차기 대권주자(안철수·박원순)와 손을 잡아야 한다. 대표 권한을 상당부분 내려놓으며 중진, 통합행동 등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 위기는 문재인 대표에게 큰 책임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몰아세워서도 안 된다. 안철수 의원도 혁신을 위해 문 대표와 각을 세울 수 있지만 어쨌든 당의 리더로서 총선 승리를 위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게 리더의 책임 아닌가. YS(김영삼), DJ(김대중)는 필생의 라이벌이었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손을 잡았다. 이대로 가면 야당 꼴 보기 싫어 투표장을 찾지 않는 유권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패배하면 문재인, 안철수 의원 모두 설자리를 잃는다. 중진들도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단합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비문 진영이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힘으로 압박하면 대표가 물러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 전략적 오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뒤 당 내부에서 후단협을 만들어 노 후보를 집요하게 흔들었다. 그런 모습을 문 대표와 측근들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현재 방식의 압박이라면 문 대표는 총선에서 지더라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문 대표에게 양보를 요구하면서 그들도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출발하면 해법이 나온다.”
―손학규 전 대표 구원등판과 같은 제3의 해법은 의미가 없나.
“때가 아니다. 손 전 대표는 당대표를 두 번이나 지냈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그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 급하다고 다시 그를 불러내는 건 혁신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다. 새누리당에 맞서 새정치연합이 어떤 가치와 비전으로 국민을 설득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힘을 합칠 사람은 합치고, 솎아낼 사람은 솎아내면서 면모를 일신하고 새로운 주체세력을 국민 앞에 제시하라. 그러면 야당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보듯 야당을 찍겠다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