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복용하면 ‘SKY’ 갈 수 있나요
수능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절박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다양한 수능보약을 찾고 있다. 왼쪽은 각종 홍보물들.
체력에 큰 효과가 있다는 물범탕은 최근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하프물범 포획 과정에서 캐나다 어부들이 어린 물범들을 잔인하게 몽둥이로 때려잡는 모습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기자는 물범탕을 판매하는 건강원과 통화를 시도했다. 기자임을 밝히자 건강원 사장은 “최근 언론에서 말도 안 되게 왜곡한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황당할 정도”라고 항변했다. 어떤 부분이 왜곡됐냐고 묻자 “또 다른 오해를 살 수 있어서 대답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이 건강원 홈페이지는 ‘명문대에 가려면 물범을 먹어라’는 문구로 물범탕을 홍보 중이다. 물범탕은 캐나다에서 수입한 하프물범 고기와 철갑상어, 산삼, 미꾸라지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건강원에 따르면 물범의 칼슘과 철분 함유량은 각각 소고기의 170배, 30배라고 한다. 가격은 한 달 치에 50만 원이다. 기자임을 숨기고 건강원을 찾아갔으나 “주문이 밀려서 예약된 손님만 받는다”며 상담조차 받지 못 했다. 건강원을 찾은 한 학부모는 “이미 3~4년 전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면서 “사실 이런 정보는 잘 공유하지 않는데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성형외과나 산부인과에서는 수능주사를 놓기에 바쁘다. ‘총명주사’, ‘비타민주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주사는 비타민 B와 C 그리고 태반 등이 섞여있으나 상황에 따라 다른 영양제를 추가하기도 한다. 한 산부인과에 문의한 결과 “수능이 다가오면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수험생들이 찾아오고 대개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맞는다”며 “식사를 못하거나 잠을 못잘 때도 효과적이다. 면역력과 집중력에 효과가 좋고 가격은 한번에 4만~6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부작용이 없냐는 질문에는 “원장님과 잘 상담해서 체질에 맞는 주사를 놓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전했다.
기자는 수능주사를 놓는 D 성형외과를 직접 찾았다. “수험생은 아니지만 체력이 약해진 것 같아 주사를 맞으러 왔다”고 하고 간호사는 “비타민제를 먹는다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주사는 직접적으로 혈관에 투여하는 것이기에 일반 비타민제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특히 은행잎 추출물과 비타민 C는 면역력도 강화되고 피로해소에도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한다. 여러 종류의 주사가 있기 때문에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적합한 주사를 놔준다”고 말했다. 오후 6시쯤 되는 시간 대기실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5~6명 정도 있었다. 학생들은 “평일이라서 몇 명 안 왔다”며 “주말에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힘들다. 그나마 여긴 손님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수능환을 판매하는 한의원도 있다. 한약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수능’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서초구에 위치한 한 한의원에서는 일반, 프리미엄, SKY 3가지 종류의 수능환을 판매한다. 3가지 수능환의 차이점을 물어보니 “일반 수능환은 스트레스 해소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되고 프리미엄이나 SKY는 일반 수능환에 체력까지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보통 프리미엄과 일반을 섞어 먹기도 한다”며 “프리미엄은 공진단 성분이 50㎖, SKY는 100㎖가 들어가서 가격 차이가 난다. 하루에 한 알씩 한 달 정도 지속적으로 먹으면 좋다”고 말했다. 일반 수능환은 한 알에 1만 원, 프리미엄과 SKY는 각각 3만 원, 5만 원이다. 이 한의원은 수능환을 특허까지 출원했다.
다른 한의원에서는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이벤트’라며 집중환과 총명환을 20% 할인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고 있다. 이 한의원 간호사는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은 물론이고 불안함과 초조함까지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며 “학교나 학원을 다니느라 바쁜 학생을 위해 연중무휴 야간진료 중”이라고 밝혔다. 집중환과 총명환은 30환에 각각 60만 원, 40만 원인데 이번 이벤트로 48만 원, 32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물어본 결과 대부분 한약이나 물범탕을 한 번은 먹어봤다고 답했다. 주사를 맞았다는 학생은 약을 복용한 학생보다는 숫자가 적었지만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고3인 김 아무개 군은 “확실히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잠이 덜 온다”고 했고 “약은 잘 모르겠지만 주사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학생들도 있었다. 반면 어떤 학생은 “주사를 맞아봤는데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며 부작용을 호소했고 심지어 “약을 먹고 밤새 토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의약품과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이다. 채현욱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특화성을 살리려는 제품으로 만들어진 건데, 새로운 성분이 검증이 돼서 쓰였다는 게 전혀 아니다”라며 “기본적인 피로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능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1년 수능을 앞두고 속칭 ‘공부 잘하는 약’이 일부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식약처는 당시 “약의 주성분은 염산메칠페니데이트로 ADHD, 우울성신경증, 수면발작 등의 치료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라며 “건강한 수험생이 이 약을 복용하는 경우 오히려 신경이 과민해지거나 불면증 등을 유발하여 수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식약처는 이번에도 물범탕, 수능환, 총명탕 등 6개 제품을 수거해 지난 21일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이들 제품에 스테로이드 등 의약품이나 인체에 유해한 성분 포함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품 회수 및 행정조치 등을 취할 예정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성분이 많다보니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며 “결과가 나오는 즉시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