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사라지고 궁전만 남아
버마의 샨 왕국에서 공주로 산 오스트리아 출신 잉게 사전트와 그가 쓴 회고록 표지.
53년 미국 유학중 콜로라도에서 만나 결혼 후, 새로운 삶을 위해 이곳 양곤항으로 들어오던 날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날 양곤항 부두에 배가 도착했을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꽃다발을 흔들고, 환영하는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누군가 대단한 분이 배에 타고 계시군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흔드는 피켓에는 남편의 이름 사오짜셍이 적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에야 남편이 한 왕국의 왕자였고, 부두에 나온 군중들은 왕자의 백성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을 다닐 때 그가 샨 왕국의 왕자라는 사실은 대학의 학장밖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샨의 공주, 오스트리아인 잉게 사전트는 남편의 나라를 떠나갑니다. 남편이 체포된 후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기약없는 작별, 그녀의 슬픈 로맨스는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미얀마 샨주(Shan State)의 산골짝 마을 씨뻐(Hsipaw)에 가면 지금도 궁전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샨 팰리스. 62년까지 왕국의 사오파가 살았던 곳입니다. 샨족들은 버마족과 달리 작은 나라로 나누어 사오파가 다스렸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번영한 왕국이 바로 씨뻐였습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오짜셍과 잉게 사전트는 왕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아래는 이들 부부가 살았던 샨 팰리스.
1962년 네윈의 군사 쿠데타는 평화롭던 샨의 왕국들을 불행한 역사 속으로 가져갔습니다. 지역의 군주였던 샨족의 사오파들을 모두 체포한 것입니다. 부족의 세력이 강해지고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남편은 동생과 함께 체포되었고 그녀는 궁전에 연금되었습니다. 그녀는 다행히 오스트리아 시민권이 있어서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94년 버마에서 지낸 나날들을 돌아보며 회고록을 출간하게 됩니다. 제목은 ‘Twilight over Burma’. 부제로 ‘My Life as a Shan Princess’를 달아 놓았지요. 책의 수익금은 미얀마 난민들을 위해 기부했으며, 그녀는 난민들의 식량과 의료를 지원하는 단체를 설립해 꾸준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유엔이 주는 국제인권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실종입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재혼하였습니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남편은 네윈 정권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살던 지금의 궁전은 1924년 미얀마 티크목재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지은 집입니다. 지금은 사오짜셍 왕자의 조카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조카 역시 1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복역 중 사면되어 이 집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손들이 사는 이 팰리스는 지금은 개인 저택이므로 방문객들을 이들이 일일이 맞고 있습니다.
미얀마에는 공식적으로 135부족이 살고 있습니다. 부족마다 그들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양곤이라는 현대적인 도시에서도 부족들의 연례행사가 열립니다. 평화협정으로 길고 긴 내전은 막을 내렸지만 지난봄, 샨주 북부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로 133명이 사망했습니다.
정선교 Mecc 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