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문 아래서 둘만의 ‘핏빛 의식’
여고생 하다 미우 양(왼쪽)이 동급생 남학생에 의해 살해된 장소는 도라오산 기념비 근처로 소설에 등장해 유명세를 치른 곳이다.
지난 9월 28일. 일본 여고생 하다 미우 양(18)이 동급생 남학생 A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우 양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도라오산 기념비 근처로 공교롭게도 소설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에 등장해 유명세를 치른 장소다. 소설은 난치병에 걸린 17세 소녀와 동급생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됐을 만큼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우 양은 A 군이 집에서 가져온 칼에 심장을 단번에 관통당해 출혈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에서 싸운 흔적이나 저항 흔적 등 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미우 양이 칼에 찔린 시각은 해가 질 무렵인 오후 5시경. 살해 직후 곧바로 산속에 어둠이 찾아왔고, A 군은 3시간가량 시신 곁에 혼자 머무른 것으로 확인됐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산중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또 무엇을 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오후 7시경. 귀가가 늦어지는 걸 걱정하는 친구의 문자에 A 군은 미우 양의 시신을 찍은 사진을 전송하면서 은신처를 알렸다. 약 한 시간에 걸쳐 피해자의 어머니와 남자친구, 가해자의 어머니, 학교 친구 등 총 10명이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후 9시 45분경. 친구 중 한 명이 119에 신고해 경찰과 구급대원이 현장으로 달려왔으나, 이미 미우 양은 숨을 거둔 후였다.
당시 슈퍼문을 구경하기 위해 산에 오른 인근 주민은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어째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현장에 도착한 10명 가운데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스럽다. 경찰은 “현장에서 체포된 A 군은 넋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시신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경찰이 조심스럽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촉탁살인의 여부다. A 군이 “미우의 부탁으로 가슴을 칼로 찔렀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점과 피해자의 시신에서 저항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이 여기에 힘을 실어준다. 다만 촉탁살인이라면 왜 미우 양이 직접 흉기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등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반면 생전 미우 양의 언동은 촉탁살인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자료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미우 양은 “18세가 되면 죽고 싶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7월에는 자살을 시도하려고 다른 동급생 남학생과 가출을 감행했으며, 손목에는 자해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와 관련 <제이캐스트>는 “그 후에도 미우 양은 다시 강으로 뛰어들려 했으나 ‘무서워서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친구들에게 털어놨다”면서 “담임교사의 설득으로 두 번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A 군과 미우 양,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는 동급생은 “매일같이 둘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쉬는 시간에도 얘기를 나누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인관계는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미혼모 가정에서 자란 공통점 때문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기묘한 우정이 존재했다. 특히 A 군은 미우 양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냥한 친구였다. 중학교 시절 A 군의 탁구부 후배였던 남자 고교생(17)은 “탁구부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중재 역할을 맡곤 했다. 부탁을 받아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는 자살충동이 강했던 미우 양이 일부러 A 군에게 자신의 살해를 의뢰한 이유와 또 A 군은 왜 그것을 승낙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심리상담사 오시마 노부요리 씨는 “숨진 미우 양이 경계성인격장애(BPD)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남학생과 가출해 자살을 시도한 것과 이를 반성하고 다시 학교를 열심히 다녔다는 점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죽고 싶다’와 ‘살고 싶다’, ‘죽여 달라’와 ‘도와 달라’ 등 극과 극의 양면성 기분이 공존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이러한 증상은 유전되는 경향이 강한데, 자살유전자를 지녔을 가능성도 높다.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자살을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할 확률이 보통 사람보다 높은 것은 분명하다”면서 “몇 번이나 자살에 실패했기 때문에 촉탁살인이라는 확실한 방법을 택한 건 아닐까”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정신과 전문의 가야마 리카 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우 양은 18세에 죽고 싶다고 자주 언급했다. 그 기저에는 ‘추악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결한 채로 죽고 싶다’는 염원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이나, 드물게 자살사건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미우 양이 거듭 살해를 부탁하고, 소년은 일종의 세뇌를 당해 그녀에게 공감하면서 죽음의 판타지가 강해진 듯싶다. ‘슈퍼문이 뜨는 날, 판타지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소울메이트 손에 의해 목숨을 끊는다’는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청소년기에서는 망상이 거세지기 쉽고, 충동적인 선택을 할 위험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저항 없이 친구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게다가 스스로 살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10명이나 되는 이들이 사건현장을 찾았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살인 의식을 연상시킨다”면서 “뭔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 측에 따르면 “A 군은 평소 얌전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학습태도가 성실해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덧붙여 “책임감이 강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끝까지 해냈다”고 전했다. 친구가 부탁하는 대로 따라주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결국 그는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건 물론 자신의 인생마저도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다.
한편, 최근 <마이니치신문>은 “검찰이 A 군의 정신감정 유치를 청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사건 당시 남학생의 정신 상태와 형사책임능력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