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찾다 ‘무리수’에 빠지기도…
재계 30위권 내외의 재벌가 3세들이 신사업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효성 본사(왼쪽)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오른쪽은 조현준 효성 사장(위)와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아래).
지난 9월 25일 삼표그룹은 7943억 원에 동양시멘트 지분 54.96%를 최종 인수했다. 이로써 삼표는 건설소재 전문기업임에도 그동안 시멘트 제조·공급 계열사가 없다는 고민을 한방에 해결했다. 게다가 지난 2012년 5월 대한시멘트 인수전에서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밀려 고배를 마셨던 기억도 함께 씻어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한국타이어가 한앤컴퍼니와 손잡고 자동차 공조업체 한온시스템을 인수했다. 현대차그룹 등이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으나 한국타이어는 한온시스템 2대주주로 참여했다. 더욱이 훗날 1대주주인 한앤컴퍼니 지분까지 우선매수 할 수 있는 권리도 있어 사실상 한국타이어가 한온시스템을 인수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 사장은 최근 한온시스템 2대주주 참여를 계기로 앞으로 국내외 M&A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영역 파괴도 암시했다. 조 사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자’ 같은 구호로 원래 하던 것을 더 잘하는 것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완전히 따로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일부 대기업이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시달린 사례 이후 M&A의 정석처럼 여겨지던 ‘시너지 효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2011년 가구업체 리바트와 2012년 여성복 제조업체 한섬을 인수한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지난 9월 말 현대그린푸드를 통해 중장비업체 에버다임을 940억 원에 인수했다. 현대백화점은 또 현재 동부익스프레스 최종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유통업체로서 동부익스프레스 같은 물류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지만 중장비업체 인수는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현대그린푸드는 에버다임 인수목적을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라고 밝혔다.
삼표그룹은 최근 동양시멘트를 인수했다.
앞서 밝힌 M&A의 중심에는 오너 3세들이 있다. 30대 후반~40대 초반인 이들은 ‘하던 것을 잘하자’, ‘기존 사업과 연계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 세대 생각과 달리 그동안 전혀 해보지 않은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한국타이어의 한온시스템 인수는 조현범 사장이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표의 동양시멘트 인수에는 정대현 부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인수에 성공한 후 인수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삼표이엔씨 대표였던 정대현 부사장이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M&A는 늘 관심사항”이라며 “시너지 효과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는 돈 되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시너지 효과만 염두에 두고서는 ‘레드오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젊은 후계자들은 당장 성과를 볼 수 있고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업을 눈여겨보기도 한다”며 “아버지 우산 밑에서 가능한 한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본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세대 생각을 뒤집는 젊은 3세들의 이 같은 도전이 좋은 결과만을 낳지는 않는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일부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은 지난 2008년 진흥기업을 인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진흥기업은 3년 만인 2011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젊은 후계자의 뜻대로 대규모 사업에 진출할 경우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해당 사업은 오랫동안 기업을 시달리게 만들 수도 있다. 한화그룹의 태양광사업 진출이 그렇다. 재계에서는 한화의 태양광사업 진출·확대는 오너 3세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결과로 알려져 있다. 태양광사업은 아직까지도 한화그룹의 고민 중 하나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가 인수도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삼표그룹의 동양시멘트 인수가 그런 경우다. 지난 10월 30일 현재 동양시멘트 주가는 5620원이다. 삼표는 주당 1만 4000원에 동양시멘트 지분을 인수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더라도 고가 인수 논란이 일어날 만하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미래가치와 시너지 효과를 감안했고 시멘트사업이 절실했다”며 “동양시멘트 인수로 숙원을 푼 것”이라고 말했다. 삼표는 그동안 외부의 다수 업체로부터 시멘트를 사와야 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아무리 젊은 오너 3세들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다른 기업을 인수하려 해도 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추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젊은 후계자들이 강하게 의지를 보인다 해도 아버지의 최종 판단이 필요하고 최소한 아버지의 묵인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M&A와 해당 기업의 실적이 기업을 이어받을 후계자의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