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새끼손가락 ‘민주를 약속해줘…’
미얀마 총선 압승을 이끈 아웅산 수지가 양곤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에게 보라색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보라색 새끼손가락은 선거가 끝났다는 의미이며 12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지금 양곤 시내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외국인들이 의아할 정도입니다. 선거 날은 젊은 청년들이 고향으로 대거 돌아가 거리가 한산했습니다. 선거결과 발표가 느린지라 수지의 지시로 상대 정당에 자극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자고 한 까닭입니다. 압승은 했지만 이 나라의 민주화 일정은 몇 가지 험난한 길이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내년 3월 간접선거로 선출합니다. 그런데 야당 지도자인 수지는 후보로 출마할 수 없습니다.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 국적이면 후보가 될 수 없는 헌법조항 때문입니다. 657명의 상하원 의원 중 과반이 넘는 329명이면 집권은 가능하지만 헌법 개정은 75%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의석의 25%가 군부에 배정되는 제도라 군부가 사실 거부권을 갖고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미얀마의 봄’을 맞기 위해선 군부와 협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5년 전 1990년 총선에서 높은 투표율로 수지의 야당이 80%가 넘는 지지율로 압승했지만 군부에 의해 무효화되고 되레 수지가 가택연금된 바 있습니다. 여기 국민들은 이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런 분위기인 것입니다.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 흐테이 우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한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고, 민 아웅 훌라잉 군최고사령관은 “군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나라에선 25% 의석을 장악한 군부가 주요 입법정책을 주도합니다. 게다가 군최고사령관이 내무, 국방, 국방경비장관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습니다. 군부와 협력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정부를 이끌기가 힘듭니다. 대통령도 상원, 하원, 군부에서 각각 1명씩 3명의 후보를 내고 투표하여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을 뽑습니다.
그래서 수지는 두 가지 카드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군부에 일정한 권한을 주고 개헌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미얀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 이상의 인물’로서 국가와 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 준비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카드입니다. 이 카드는 사실 문제가 많은 선택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수지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지 ‘수지가 지명한 대통령’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서방언론은 지명자가 될 인물에 관심이 많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이 문제가 화약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틴 우 NLD 부의장은 군부 출신으로 10년간 수지를 보필하며 충성했다. 양곤 미아다공 지역 아낙네들이 선거 후 보라색 손가락을 보이며 자랑하고 있다. 지지자들이 ‘아메 수’를 외치고 있다.
만일 군부와의 개헌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후보를 내야 합니다. 그래서 두 인물이 해외언론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름도 거론됩니다. 틴 우(Tin Oo)와 윈 흐테인(Win Htein). 틴 우 NLD 창립멤버이자 부의장은 전직 군사령관 출신입니다. 강제로 퇴역당한 뒤 10년간 수지를 보필하며 충성한 사람입니다. 서로 깊이 신뢰하는 사이지만 88세의 고령입니다. 윈 흐테인 NLD 중앙집행위 위원은 수지와는 오랜 동지이자 친구입니다. 민주화운동이 정점에 이르던 1989년 투옥되어 20년 이상 옥살이를 한 사람입니다. 수지가 오랜 가택연금이 해제되던 2010년에 석방되었습니다. 2012년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올해 73세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안으로는 135개 부족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어려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고,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 속에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하는 숙제도 있습니다. 북부의 코캉 부족은 독립을 요구하며 지금도 내전이 발생하고 있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 로힝야 부족은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부족이어서 아직도 난민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미얀마 경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액은 약 260억 달러, 미국과는 약 2억 달러 수준으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중국과는 현재 댐 건설, 송유관 공사, 중국국경의 철도공사들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지난 6월엔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수지가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한편 미국은 새 정부에 바라고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지 여사의 자택. 외국인들은 굳게 닫힌 문이 언제 열린 것인지 궁금해한다.
양곤 미아다공 지역. 아낙네들이 모여 보라색 새끼손가락을 치켜올립니다. 선거가 끝났다는 표시입니다. 선거를 했다는 걸 자랑합니다. 그것은 곧 ‘아메 수’에게 찍었다는 걸 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개표가 이뤄지는 밤에는 양곤에 정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보라색이 다 지워지고 사람들이 모여 나라 걱정을 합니다. 다른 부족들의 얘기도 합니다. 수지에 대한 지난날들도 얘기합니다. 그간 이 나라 사람들은 정치 얘기를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주변에서 끌려가기도 하고 피해를 본 사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외국기자들이 출국하는 공항에서 카메라나 비디오를 검색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좀 자유로워졌습니다.
아웅산 수지와 NLD. 일명 ‘8888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탄생한 이름들입니다. 1988년 8월8일을 뜻합니다. 이 시기에 시위 군중 수천 명이 사살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잠시 귀국했던 아웅산 수지는 이 시기를 거치며 인생의 행로를 바꿨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처럼 자신을 조국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녀의 인생은 젊은 날도 결혼생활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암살당하고 열여섯 살에 어머니를 따라 인도 뉴델리로 떠나서, 영국 런던으로, 미국 뉴욕 유엔본부로, 결혼해서는 부탄에서, 네팔에서 다시 영국으로. 조국을 떠나 떠돌이처럼 살았습니다. 노벨평화상은 가택연금 상태라 수상식에 가지도 못했고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의 장례식에는 두 아들만 참석했습니다. 학자였던 남편 마이클은 평범하게 살길 원했던 그녀에게 용기를 준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와 긴 시간을, 자신의 집을 감옥으로 삼고 살아야 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그래서 수지 여사를 서슴없이 ‘아메 수’라고 부릅니다. 어머니처럼 헌신한 인생을 알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아메 수’가 아웅산 장군처럼 슬픈 마지막이 되지 않고 평화의 시작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선교 Mecc 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고아를 위한 NGO Mecc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