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청문회 준비팀 저격수 ‘박남매’ 흉내까지…
한상대 전 총장(왼쪽)은 청문회준비팀과 박영선·박지원 의원(위)의 예상질문을 뽑아 실전에 버금가는 리허설을 했다.
김 후보자가 10월 30일 차기 총장 후보에 내정된 후 인사청문회준비단이 대검찰청에 구성됐지만, 긴장하는 분위기는 거의 읽을 수 없었다. 김 후보자가 워낙 말을 잘하는 스타일인 데다, 주변 관리도 깔끔하게 한 덕분에 위장전입이나 탈세 등 그동안 청문회 쟁점이 됐던 문제들이 김 후보자에게선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김 후보자도 컨설턴트를 불러 조언을 듣고 몇 차례에 걸쳐 리허설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만의 시각으로 청문회를 준비했을 때는 여론의 경향을 잘못 읽을 수 있고, 이미지 메이킹에도 실패할 수 있어 컨설턴트의 조언을 듣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김 후보자도 조언을 받았고, 준비단과 함께 리허설도 두어 번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컨설턴트를 초빙하거나, 리허설을 하는 것은 검찰 내에선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주로 리허설 하는 날 컨설턴트를 불러 앉혀놓고 리허설 과정을 보여주면 그 과정에서 느낀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답변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어떤 표현을 피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손동작, 얼굴 표정, 의상 스타일 등 다양한 지적들이 나올 수 있다.
평소 공개석상에서 안경을 잘 쓰지 않던 한상대 전 총장이 인사청문회에 안경을 쓰고 나온 것도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른 것이란 후문이다. 위원들이 질문을 할 때는 메모하는 것처럼 보이고, 답변을 할 때는 위원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얘기하라는 등의 조언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당시 한 전 총장은 청문회준비팀과 함께 실전에 버금가는 리허설을 했다고 한다. 당시 청문회 준비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우리는 그걸 ‘각개모사’라고 불렀는데, 준비팀원들이 당시 야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이나 박영선 의원 등 청문위원들과 거의 똑같은 말투, 표정, 행동을 재연하면 한 총장께서 거기에 맞춰 답변하는 형식이었다”며 “그런 식의 리허설은 한 총장 이전이나 이후에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전 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박영선 의원 등의 질의는 매서웠다. 한 전 총장이 SK그룹 오너 일가와의 사적 친분 때문에라도 총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전 총장은 컨설팅과 ‘각개모사’ 리허설의 힘이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한 전 총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지난 2012년 한 전 총장은 당시 횡령 혐의 등으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하려는 일선 수사팀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할 것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이 강력하게 반발했고, 그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 전 총장이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는 하나의 도화선이 됐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한 전 총장을 총장감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만큼 자신감이 많이 부족했을 것”이라며 “각개모사 방식으로 리허설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얘기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한 전 총장은 컨설턴트의 조언이나 리허설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그만큼 충실하게 따랐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한 전 총장과 달리 이제 임기를 일주일 정도밖에 남겨놓고 있지 않은 김진태 총장의 경우 컨설턴트나 청문회준비팀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청문회준비팀이었던 한 인사는 “컨설턴트를 한 번 정도 불러서 리허설을 했는데 본인이 하도 짜증을 내면서 ‘그만하자. 니들이 나한테 무슨 질문을 하느냐’면서 말을 잘 안들었다”며 “그때는 컨설턴트를 부르나마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김 총장 못지않게 정상명 전 총장도 컨설턴트의 조언을 무시한 경우다. 정 전 총장의 한 지인은 “내가 알기로는 그때 컨설턴트가 푸른 빛깔 넥타이를 하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고 곧 죽어도 붉은 빛깔로 한 것으로 안다”며 “그랬더니 그때 초빙된 컨설턴트가 ‘원래 검찰 관계자들이 컨설팅을 해보면 제일 말을 잘 안 듣는다. 이런 조직은 정말 처음 봤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채동욱 전 총장의 경우 컨설턴트를 초빙하고 리허설까지 했지만, 전문가의 조언이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고 여유 있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준비팀에 소속됐던 한 검찰 관계자는 “채 전 총장은 컨설턴트가 별로 얘기해줄 게 없었다”며 “본인이 평소에 하던 대로 했는데도 별 다른 지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전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초기에는 이런 컨설턴트 비용을 검찰 예산으로 충당했지만, 여론의 지적이 잇따르자 언제부턴가 후보자 본인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컨설턴트 한 사람을 한번 부를 경우 1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한 번 부르는데 100만 원 이상 준비해야 한다는 건 비용이 적지 않다는 얘기인데 비싼 만큼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러나 정상명 전 총장이나 김진태 총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사실 100만 원 이상 주고 컨설팅을 받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본인들 의사대로 했으니 사실 비용 대비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다고 봐야겠지만, 불안하니깐 후보마다 해보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