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전 전패요? 글쎄, 정확한 기록이 기억나진 않지만 한 번도 못 이겼으니까. 무척 괴로웠던 모양이에요.”94히로시마아시안게임과 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심권호(30)와 북한의 강영균 선수(24·그레코로만형 55kg급)와의 인연이 화제다. 95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조결승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후 98방콕아시안게임 결승전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전에서도 맞붙었으나 모두 심권호의 승리로 끝났다. 7년 동안 국제대회에서 경기를 벌일 때마다 심권호의 일방적인 우세로 결론 났지만 심권호는 강영균에게 친동생과 같은 애정을 느꼈고 강영균도 번번이 심권호를 형처럼 따르고 좋아했다.
“하루는 경기 마치고 둘이서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어요. 외국에 나가면 대부분 북한 선수들과 한 호텔에 묵게 되거든요. 그때 영균이가 술 마신 핑계로 하소연하더군요. 매번 지는 바람에 정말 괴로웠다고. 영균이의 솔직함으로 인해 더욱 친해질 수 있었어요.”예전엔 국제대회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날 때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바라보기만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전혀 거리낌없이 한데 어울려 식사를 나누며 정보 교환을 하는 등 활발한 접촉이 이뤄진다고 한다.심권호는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는 한 북한 선수에게 축의금을 전달한 적도 있다. 우연히 국제대회에서 만났다가 북한 선수가 곧 결혼할 거라며 축의금 내라고 농담 삼아 한 말을 심권호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서 ‘봉투’를 내밀었다고.
“레슬링은 복싱이나 태권도처럼 치고 받는 경기가 아니라 몸을 부대끼며 하는 경기라 정이 들 수밖에 없어요. 특히 북한 선수들은 피부도 언어도 같은 한민족이잖아요.”아무리 친해도 체제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또 남쪽 선수들이 옷 신발 용돈 등을 선물로 주는데 ‘동정’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심권호는 얼마전 북한 레슬링 감독을 만나 이런 부탁을 했다. “감독님, 저 여자 좀 소개시켜 주세요. 장가 좀 가게. 응원단들 보니까 되게 이쁘대요.” 〔영〕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