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뽑겠다고? ㅋㅋ “작가님들, 새 주소로 드루와~”
경찰이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인 ‘소라넷’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과 공조해 사이트 폐쇄까지 추진 중이지만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은 양국의 범죄 기준이 달라 수사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2월, A 씨는 평소 즐겨 찾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했다가 한 게시물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몰카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담겨 있는 캠페인 게시물이었다. 여기엔 번화가, 버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몰래 찍은’ 일반 여성들의 사진 캡처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해당 사진들 틈에서 낯익은 빨간 스커트를 발견했다. 무릎 위까지 올라온 길이와 옆에 그려진 무늬, 주황색에 가까운 빨간색 스커트. A 씨가 확실했다.
A 씨는 사진 속 여자가 한 달 전 친구를 만나러 가던 자신임을 알고 수치심을 느꼈다. 길거리를 걷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몰카’라는 타이틀을 달고 보니 이야기가 달랐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보고, 평가하고, 또 좋아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쏟아졌다.
A 씨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사진에 ‘소라넷’이라는 사이트 이름이 적혀있는 점, 그리고 그 사진이 캡처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게시되고 있는 점을 신고했다. 경찰은 며칠 내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2주가 지난 뒤 돌아온 답변은 허탈하기만 했다.
경찰은 A 씨의 몸을 촬영해 최초로 소라넷 사이트에 올린 사람은 잡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대신 소라넷에 올라온 사진을 캡처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회원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해당 회원은 A 씨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몰카’를 조심하라는 경고성 게시물을 올린 회원이 처벌 받거나 사과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최초 유포자도 찾지 못한 채, 엉뚱한 회원에 ‘더 이상 게시물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소유예 처분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앞서의 ‘몰카’가 최초로 게시된 소라넷의 역사는 지난 199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에는 ‘소라의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주로 야설(야한 이야기)을 게시하고, 다른 성인 사이트 링크를 걸어놓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소라넷은 리뉴얼을 거치고 ‘국내 최초 성인 포털 사이트’로 ‘진화’한다. 자체 콘텐츠는 역시 야설 정도였지만, 리뉴얼 이후 누드사진, 성관계 경험담, 성관계 몰래카메라, 성인 만화, 유흥업소 정보 등 온갖 성인 콘텐츠가 난무하게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카페 형식을 빌린 게시판이 다수 생겨나 나름의 ‘웹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영향력을 키우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사이트로 성장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소라넷은 회원 수가 100만 명, 합성 누드 사진 200만 건, 음란 동영상 1만 건, 평균 조회수 5만 건을 기록하는 대형 사이트다. 최근 국내 유명 워터파크의 여자 샤워실에서 촬영된 몰카의 경우처럼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 음란물 제공을 대가로 금전거래가 이뤄진 사실도 밝혀져 음란물 유통 및 거래 ‘플랫폼’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소라넷의 운영자는 해외 국적의 외국인으로 알려졌다. 사이트 서버는 호주와 미국, 캐나다 등지에 다수 있다. 경찰이 앞서의 A 씨 ‘몰카’에 대해 최초 유포자를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은 이처럼 해외에 서버를 둔 탓에 국내법만으로는 게시물 삭제부터 게시자 추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과 2013년, 그리고 지난해 2월 일부 소라넷 회원이 음란물 유포 혐의로 덜미를 잡혔지만, 이들은 모두 게시물과 사진 등에서 신원이 특정돼 검거됐다.
최근 소라넷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수위’ 때문이다. 거의 모든 성적일탈 행위가 이 안에 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가뿐하게 넘나들고 있다. 누드 사진이나 포르노가 게시되는 것은 물론, 연예인을 대상으로한 악성 합성 사진도 올라온다. 게다가 기혼자들이 집단 성관계나 파트너 교환을 모의하기도 한다.
또 해당 사이트의 ‘훔쳐보기’라는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40여 건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조회 수는 게시물 당 평균 1만 회 내외다. 공공장소에서 찍힌 여자들의 전신사진, 특정 신체 부위 사진이 주를 이룬다. ‘와이프 저녁 준비 중’ ‘누나 거실에서’ 같은 제목의 글로 당사자 몰래 전신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흔하다. 적나라하게 찍을수록 ‘멋진 사진입니다’ ‘기술 배우고 싶습니다’ 같은 댓글이 달린다. 게시글을 올리는 회원을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신을 찍어 올리는 게시글의 경우 본인과 지인들이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신체와 얼굴이 드러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같은 소라넷을 불법 사이트로 분류하고 있다. 다만 소라넷은 해외 사이트이기 때문에 삭제나 이용 해지를 요구할 수 없고, 접속 차단만 가능하다. 이를 노리고 소라넷 운영자는 도메인을 주기적으로 바꾸고, 바뀐 주소를 소라넷 트위터를 통해 알린다. 방심위가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200여 차례에 걸쳐 접속을 차단했는데도 소라넷 사이트가 굳건한 이유다.
소라넷 홈페이지 화면 캡처. 소라넷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기존 주소를 차단하자 새로운 접속 경로를 만들어 공지했다.
하지만 경찰의 의지와 달리 소라넷 폐쇄 가능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다. 한 법률 전문가는 “소라넷 운영자는 국내에서 처벌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범죄라는 인식도 없이 지속적으로 서비스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소라넷 사이트 폐쇄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소라넷은 ‘포르노물’이 합법적으로 서비스될 수 있는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즉 소라넷은 한국어로 서비스되고 있을 뿐, 외국 서버에 외국인 운영자라 국내법을 적용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그동안 방심위의 접속 차단을 제외하고 법률적으로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률 전문가는 경찰이 미국과 협의해 수사하겠다는 발표에 대해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소라넷에 대해 국제 사법 공조 수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도 사실 쉽지 않다.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처벌 받을 수 있는 범죄에 대해서만 국제 사법 공조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세부적인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동 음란물 등 일부 범죄와 관련 있는 콘텐츠 등을 대상으로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라넷은 경찰 수사 발표를 비웃듯 지난 11월 25일 홈페이지 주소를 바꿨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소라넷에 대한 수사 의지를 밝힌 지 이틀 만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기존 주소를 차단하자, 새로운 접속 경로를 만들어 공지했다.
또한 소라넷 운영자는 같은 날 회원들에게 ‘21세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인의 볼 권리와 알 권리를 막으려는 시대착오적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단체 쪽지를 보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버 폐쇄와 운영진 검거가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회원들 사이에선 ‘성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내용의 서명운동과 기사 댓글 달기 운동을 펼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지난 24일 이후 소라넷에는 합성 게시판과 도촬 게시판이 사라졌다. 대신 동성애·트랜스 게시판으로 대체 됐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혹’을 잘라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해 확대 창설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을 바탕으로 외국기관과 협조해 380여 명의 전문 인력을 가동할 예정이다. 소라넷과 경찰의 16년간 이어진 숨바꼭질은 이번에 막을 내릴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린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