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월평동의 삼겹살집에서 송진우와 인터뷰 를 가졌다. | ||
곧바로 해명이 이어진다. 어린시절 소년체전에 출전하는 과정에서 나이를 한 살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비화였다. 대전 월평동 집 부근의 삼겹살집에서 이뤄진 ‘아름다운 남자’ 송진우(한화)와의 취중토크는 그렇게 나이에 대한 시비로 시작됐다.
시즌 막판까지 기아의 키퍼와 다승왕 경쟁을 벌였던 송진우는 1승 차이로 용병에게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래도 올시즌 동안 챙긴 승수가 무려 18승. 현역 최고령 나이의 투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솔직히 송진우와의 취중토크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없었던 게 아니다. 워낙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탓에 분위기 좋은 술자리가 서로에게 괴로운 시간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였다. 상대방이 너무 점잖다보니 자연스레 기자가 오버를 곁들인 칭찬과 호탕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살려나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고군분투였다.
먼저 학창시절의 송진우에 대한 궁금증을 꺼내놓았다. 운동하면서 숙소 이탈쯤은 관례화되는 것이 선수 생활인데 ‘모범생’ 다운 송진우도 그런 일탈을 감행했을까.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감독 말은 잘 들었어요. 단체로 숙소를 탈출할 때는 함께 행동했지만 개인적으로 도망치는 일은 없었어요. 보통 선배들한테 맞아서 도망치는데 난 맞아서 기절할 지경이 돼도 도망가지 못했어요. 이유요? 감독이나 선배 말을 잘 들었다니까.”
집이 있는 청주에서 학교가 있는 증평까지 20km를 버스타고 통학했는데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를 못했다고 한다. 매맞은 엉덩이에 통증이 와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던 것.
증평초등학교 재학중일 때 야구부가 창단됐다. 교장선생님이 송진우에게 야구부 입단을 권유했지만 축구를 좋아해서 야구에는 도통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결국 교장선생님의 설득에 마지못해 야구선수 유니폼을 입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교장선생님께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다.
송진우의 술 문화는 풍기는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정상적이다 못해 단조롭기까지 하다. 때론 폭주를 할 때도 있고 시즌중이라고 해도 다음날 등판 일정이 없을 경우 술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단 그 폭주의 양이 소주 2병 정도라나? 별로 놀라워하지 않자 원샷을 즐기고 잔을 돌리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다고 하면서 즉시 술잔을 넘긴다.
‘취중토크’라고 해서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원래 술이 한 잔 두 잔 돌다보면 어색한 분위기도 금세 화기애애해지고 선후배 사이가 형, 동생으로 바뀌는 법인데 송진우는 아무리 소주잔을 꺾지 않고 털어내도 표정이나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히려 상대하는 쪽에서 자꾸 웃음이 헤퍼지고 코맹맹이 소리가 되는 듯하다.
송진우가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변함 없는 체력과 화려한 구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야구를 그만두고 싶어했을 만큼 큰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97년과 98년에 6승씩밖에 못했어요. 주위에선 쑥덕거리고 난리가 아니었죠. 송진우도 드디어 맛이 갔구나 하는 표정들이었어요.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런 얘기를 전해들을 때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요. 정말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싶었으니까요.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쳐야할 것 같아 볼을 새롭게 개발했어요. 기존의 정통파에서 기교파로 패턴을 바꾼 거죠.”
원래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진 투수가 서클체인지업을 개발해 던졌다. 그런데 그 공이 컨트롤에 성공하면서 2년간의 슬럼프를 가뿐히 딛고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99년 한화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15승을 올렸던 기억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자리할 것이다. 선수협의회 1, 2대 회장을 맡아 활동했던 시절로 잠시 돌아가 봤다. 비록 회장직을 내놓기는 했지만 선수협에 대한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 ‘원샷’으로 주거니받거니 했지만 그의 행동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금의 선수협은 8개구단 공동 대표가 이끌고 있다. 왜 회장을 뽑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무도 회장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구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선수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평지풍파를 겪으며 선수협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송진우는 그 단체가 잘 진행돼야 한다는 바람이 누구보다 강했다.
화제를 바꿔보기 위해 사적인 질문을 했다. 첫사랑이 누구였냐면서. 한참 생각을 하길래, 지금의 와이프냐고 했더니 “거의 그렇죠”라며 껄껄 웃는다. 대학 때 대여섯 번의 미팅을 한 적이 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방위 복무 시절 만난 아내와 일년간의 교제 끝에 결혼했는데 워낙 숫기가 없어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혼한 지 10년째 됐다고 해서 큰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10살이요.” “10년째인데 10살이라구요?” “그게 아무래도 신혼여행가서… 정말 허니문 베이비 맞다니까요.” 일행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허니문 베이비를 주장하는 송진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술집을 나오는데 편의점 앞에 마련된 TV에서 한국시리즈가 중계되고 있었다. 순간 송진우의 눈길이 떨어질 줄 모른다. ‘야구쟁이’ 송진우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