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팍이 살해된 방식과 판박이 ‘혹시…’
25세에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비기. 그의 죽음에 사람들은 6개월 전 같은 방식으로 숨진 투팍 샤커를 떠올렸다.
1997년 2월, 비기는 LA 지역을 돌고 있었다. 3월 25일에 나올 예정인, 결국 의미심장한 제목이 된 앨범 <Life After Death>(죽음 뒤의 삶) 홍보와 뮤직 비디오 촬영을 위한 일정이었다. 3월 5일엔 샌프란시스코 지역 라디오 인터뷰를 했는데 “항상 여러 명의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다니는 것은, 동부와 서부 사이의 힙합 전쟁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유명인이어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월 8일 LA에서 열린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즈’ 시상자로 참석해 토니 브랙스턴에게 트로피를 건넸는데, 이때 객석 일부에서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비기가 투팍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비기는 바이브 매거진과 퀘스트 레코드에서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다. LA의 윌셔 대로에 있는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에서 열렸고, 아내인 페이스 에반스와 배드 보이 레코드의 퍼프 대디 그리고 가수 알리야 등이 함께 있었다. 이후 목격자에 의하면 당시 파티 장소 근처엔, LA의 갱단인 ‘블러즈’(Bloods)와 ‘크리프스’(Crips)의 몇몇 멤버들이 보였다고도 한다. 3월 8일이 넘어 3월 9일 새벽 12시 30분이 되었을 때, 비기는 일행들과 함께 쉐보레 밴에 나눠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파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근 지역이 소란스러워지자 소방 당국이 파티를 중간시켰기 때문이다.
자동차에서 그는 조수석에 앉았다. 차 안엔 동료 힙합 뮤지션들이 있었다. ‘디-록’이라 불리던 데미언 버틀러, 랩 그룹 ‘주니어 마피아’의 멤버인 릴 시스 그리고 ‘지-머니’ 그레고리 영. 운전대는 그레고리 영이 잡았다. 퍼프 대디는 세 명의 보디가드와 함께 다른 차에 타고 있었고, 그 뒤엔 배드 보이 레코드의 안전 총괄 책임자가 따라왔다. 새벽 12시 45분, 거리는 파티를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비기가 탄 차는 파티 장소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대로에서 신호 대기중이었다. 이때 어두운 색의 쉐보레 임팔라 세단이 비기가 탄 SUV 옆에 차를 댔다. 세단의 운전자는 푸른 슈트에 보타이 차림의 흑인이었다. 그는 갑자기 창문을 내리더니 9밀리 권총을 겨누었고, 네 발을 발사한 후 황급히 달아났다. 뒤차에 타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달려왔고 근처에 있는 시더스-사이나이 병원으로 옮겼지만, 비기는 30분 만에 사망했다. 1997년 3월 9일 새벽 1시 15분이었다.
2012년이 되어서야 발표된 부검 결과에 의하면, 네 발 중 한 발이 치명적이었다. 이 총알은 오른쪽 둔부로 들어가 결장, 강, 심장, 폐 등을 파괴하고 왼쪽 어깨에 머물렀던 것. 당대를 주름잡던 25세 래퍼의 죽음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사람들은 6개월 전 같은 나이에 같은 방식으로 죽었던 투팍 샤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또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제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위는 투팍. 원 안은 비기 죽음의 배후로 지목된 투팍 레코드사 창립자 슈그 나이트.
이에 대해 <LA타임스>는 설리번의 글에 대해 “조잡한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 1990년대 말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던, LA 경찰 강력반 부패 스캔들과 비기의 죽음 사이에 관련이 있을 거라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70여 명의 LA 경찰이 갱단과 결탁하고 갖가지 비리로 돈을 챙겼던 사건인데, 그들 중 니노 더든, 데이비드 맥, 라파엘 페레즈, 케빈 게인스 등의 경찰은 슈그 나이트와 밀접한 관계였다. 나이트는 그들이 비번일 때 사적으로 고용해 투팍의 공연이나 행사에 안전 요원으로 배치하곤 했으며, 그 대가로 거액을 건넸다. 뇌물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페레즈와 맥은 비기가 피살당할 때 사건 현장 근처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는데, <LA타임스>는 부패 경찰을 통해 고용된 킬러가 비기를 죽였고, 이것은 투팍의 죽음에 대한 나이트의 복수라고 주장했다. 저널리스트인 캐시 스콧은 <비기 스몰의 죽음>이라는 책에서 데쓰 로우와 배드 보이, 두 음반사의 자작극이라는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두 사람은 새로운 앨범 발매를 앞두고 피살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죽었을 때 앨범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어이없는 가설이었다.
한편 이 사건을 계속 지켜보며 수사를 이어나갔던 전직 LA 경찰 그렉 캐딩은 비기가 ‘푸치’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갱인 워델 파우즈에 의해 죽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비기가 투팍을 죽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슈그 나이트는 애인인 테레사 스완을 통해 파우즈를 고용했고, 투팍의 복수를 위해 비기를 죽였다는 것이다. 파우즈는 2003년 오토바이를 타다가 누군가가 등 뒤에서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는데, 그렉 캐딩은 이것이 비기의 소속사 대표인 퍼프 대디의 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투팍과 비기의 죽음에 대해선 수많은 추측들이 있을 뿐, ‘공식적으로’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