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하자마자 “불법시위 엄단” 정권과 한목소리...언론서도 기대감 대신 우려 표명
김수남 검찰총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런 냉랭한 분위기는 다음날 조간신문에서도 이어졌다. 통상 사정기관 수장인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1면이나 종합면 등에 전진배치하던 관행을 깨고 <조선일보>를 제외한 모든 조간들이 사회면 등에 짧게 처리했다. <조선일보>의 경우에도 김 총장 취임사가 아닌 다른 내용으로 1면 기사를 채웠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김 총장의 취임은 별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한겨레>에서는 김 총장 취임 관련 기사를 단 한 꼭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언론들은 기사를 ‘찌그러트리는’ 것 외에 사설을 통해 ‘김수남 총장, 진정한 검찰 중립 겸허하게 고민하길<국민일보>’, ‘김수남호 중립 약속 지켜 국민신뢰 얻어야<서울신문>’, ‘정치적 외풍에 좌고우면하는 검찰은 보고 싶지 않다<중앙일보>’, ‘검, 정치적 중립과 수사역량 강화가 우선 과제다<한국일보>’ 등의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 총장 체제에 거는 기대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결국 김 총장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여론이 조간신문들의 지면을 통해 확인된 것 같다”며 “지금은 검찰 밖 여론이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검찰 내부 여론도 결코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지적처럼 취임 초기 김 총장의 행보는 아슬아슬하다. 검찰 내에서조차 “오직 한 사람(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고 움직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 총장 취임 다음날인 지난 3일 대검찰청이 2차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 ‘공무집행방해사범 엄정 대응 방침 시행’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무리한 방침”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복면 착용은 공소사실에 반드시 기재하고, 단순 참가자로서 직접적 폭력행사가 없더라도 원칙적으로 구공판(재판회부)을 하고 △공무집행방해사범 양형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복면을 착용한 단순 집회 참가자가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는데도 폭력을 행사할 것이란 예단을 깔고 구공판에 넘기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집회 참가자가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서 복면을 쓸 수도 있는데 그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복면을 쓰면 폭력을 행사할 것으로 단정하고 구공판으로 넘긴다면 ‘지나친 비약’이 아닐 수 없다”며 “복면을 쓴 이유, 폭력을 행사한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법집행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권한 남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무집행방해사범의 양형기준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검찰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공무집행방해사범에 대한 양형인자가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수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월 7일부터 공무집행방해사범에 대한 강화된 양형기준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달 만에 다시 양형기준 수정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양형을 강화한 지 한 달 만에 또 다시 기존 안보다 더 강화하는 수정안을 내려는 발상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실현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정권이 원하니까 안부터 내고 보자는 생각이 아니면 저런 행보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 취임 전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김 총장은 취임 전부터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수원지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대검찰청 차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인 행보가 검찰의 중립성을 충분히 훼손시켰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번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적 중립이 집중적으로 질의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그 같은 우려를 하는 청문위원들을 향해 “개개 구성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바르게 처리하겠다는 소신이 중요하다”며 “의사 결정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내부 의사결정시스템, 인사시스템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김 총장 체제 향후 2년은 그가 취임 직후 이틀간 보인 행보로 모든 것이 결정 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지금은 곧 있을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 신경 쓰느라 조용하겠지만 레임덕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박근혜 정부 집권 후반기에 김 총장이 계속 청와대만 바라보면서 일하다가는 큰코다칠 수가 있다”며 “취임 초기 이틀간 행보에 대한 여론의 싸늘한 분위기를 김 총장이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