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나면 두동강…‘이유 따로 있었네’
페라리 488 GTB
아벤타도르, 488 등은 사진으로 봐도 멋있지만, 직접 보면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차인가 싶을 정도로 특이한 모양새를 갖고 있다. 이렇게 특이한 외관을 갖춘 이유는 뭘까. 답은 너무나 간단해서 싱거울 정도다. 보통의 승용차는 실내공간을 먼저 설계하고 외관을 설계하지만, 슈퍼카들은 외관을 먼저 설계하고 실내공간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에서는 가끔 “자동차들 디자인은 바퀴 네 개에 문짝 몇 개로 다 똑같이 생긴 거 아니냐”고 하는 글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F1 경기용 자동차를 보면 편의성 따위는 다 내던지고 오로지 달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일반 승용차와는 다른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네 바퀴는 몸통 밖으로 돌출된 형태로, 1인승이며 시트에 앉으면 몸을 가눌 수도 없고 지붕 또한 없다. 슈퍼카들은 그런 경주용과 승용차를 절충한 개념이다. 앞서 언급한 미드십(MR) 슈퍼카들의 경우 일단 뒷좌석이 없는 2인승이다. 완벽한 무게중심을 위해 엔진을 운전석 바로 뒤에 놓다 보니 뒷좌석을 놓을 공간이 없다. 또한 각종 편의장치도 다 제거된다. 수억 원대의 슈퍼카를 샀는데, 시트 조절은 수동이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1g이라도 무게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타고 내리는 것도 거의 곡예 수준이다. 시트가 거의 바닥에 붙어 있고 루프가 낮으니 ‘기어 들어가는’ 수준이다. 남자들의 로망과는 다르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는 슈퍼카를 타기 어려울 수 있다. 운전도 불편하다. 차체가 납작해서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데다, 사이드미러도 일반 승용차의 2분의 1 수준이고, 뒤쪽 창문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안락함을 위해서 타는 차가 아니기 때문에 승차감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노면상태를 읽으면서 드라이버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서스펜션이 도로의 요철을 상쇄시켜 주진 않는다. 또한 엄청 시끄럽다.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이 등 뒤에서 요동치고 있으니 당연하다. 시속 300㎞를 7200rpm(분당 회전수)으로 달릴 때 실린더 한 개에서는 초당 60회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12기통이면 그 자동차의 엔진룸에서는 초당 720회의 맹렬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엔진음은 소음이 아니라 ‘사운드’다. 1970년대 F1 경기를 무대로 전설의 라이벌을 다룬 영화 <러시: 더 라이벌>(2013)에서는 이 사운드를 두고 “What music(얼마나 멋진 음악인가)!”이라고 감탄한다. 그만큼 슈퍼카의 사운드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최근에는 슈퍼카들도 터보엔진을 차츰 도입하는 추세지만, 2010년 전까지 슈퍼카들이 자연흡기 엔진을 고집한 이유도 바로 엔진 사운드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터보차저를 통해 배출되는 엔진음을 ‘코맹맹이 소리’로 비유하곤 한다. 터보차저를 쓰면 엔진 무게를 줄이고 연비도 상승하겠지만, 오로지 그 사운드 때문에 무겁고 연비 떨어지는 자연흡기를 고집해 왔다. 최근에는 머플러의 형태를 연구해 터보차저의 배기음마저도 ‘뮤직’으로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 슈퍼카에도 터보엔진을 도입하고 있다.
미드십 슈퍼카는 FR(전륜구동) 차량보다 더 비싼데 그 이유는 CFRP(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수지강화탄소섬유) 때문이다. 흔희 ‘카본 파이버’라고 하는데 이 물질 자체는 섬유이므로 질기긴 하지만 형태를 유지하지는 못한다. 카본 파이버에 플라스틱을 침투시켜 딱딱하게 만든 CFRP는 철과 비교해 무게는 4분의 1이지만 강도는 6배 이상이다.
최근의 양산형 자동차는 차체(Chassis)를 만들 때 90% 이상 기계가 용접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오로지 기계가 일할 수 있도록 부품을 작업대에 올려놓는 역할과, 기계가 하기 어려운 프런트 펜더 장착, 그리고 기계가 닿지 않는 안쪽 일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는 심지어 문짝도 기계가 조립할 정도로 자동화가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CFRP는 사람이 일일이 섬유를 잘라서 틀에 맞게 붙여야 한다. 이후 오토클레이브라 불리는 오븐에 구우면 수지가 녹아서 섬유에 침투하면서 철보다 단단한 구조물이 나온다.
일반적인 미드십 슈퍼카의 구조. 운전석을 감싸는 콕핏은 CFRP(수지강화탄소섬유)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A). 엔진룸을 감싸는 프레임과 콕핏의 접합부는 측면 충돌 시 분리되도록 설계 되어 있다(B).
몸값 비싼 이탈리아 숙련공들이 하루 종일 겨우 몇 대 이내의 콕핏(Cockpit·운전석)을 만든다. 말 그대로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이니 비쌀 수밖에. 같은 미드십 스포츠카라도 아우디 R8이 아벤타도르의 반값인 이유는 콕핏을 포함한 전체 프레임이 알루미늄이기 때문이다. 물론 R8의 프레임도 기계가 아닌 숙련공이 직접 용접하므로 가격은 2억 원이 넘는다. CRFP는 일정한 모양으로 매끈하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어 슈퍼카의 외관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다. 콕핏을 특별히 CFRP로 만드는 이유는 미드십 카의 경우 엔진이 운전자 뒤에 위치하므로 후드가 짧아 전면 충돌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미드십 스포츠카의 또 다른 특징은 측면 충돌 시 콕핏 뒷부분이 떨어져 나가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CFRP로 완벽히 감싸져 있는 콕핏과 엔진룸 프레임은 10개 이하의 접합부위로 연결된 상태로, 측면 충돌 시 충격량이 전달되지 않도록 분리된다. 사고 동영상에서 슈퍼카들이 두 동강 나는 것은 차체가 약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다.
이런 슈퍼카들의 유지비는 얼마나 될까? 국내 시판 차량 중 가장 비싼 아벤타도르 로드스터(지붕 개폐형, 7억 원)의 자동차보험료는 연 900만 원(자차 포함)이 넘는다. 다른 유지비까지 합하면 일반 직장인 월급에 육박할 것이다.
우종국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