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싸움’ 커질수록 ‘신당개업’ 힘 받는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11월 18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작은 사진은 날선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의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야권 발 정계개편은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단 딱 내년 1월까지다. 그 이후엔 통합이든, 분열이든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하위 20% 현역 의원 물갈이 20%’를 골자로 하는 새정치연합 공천도 그때 마무리된다. 비노계 반란설의 정점인 전당대회 개최 여부도 그 시점에 결정된다. 천정배(무소속 의원) 신당도 비슷한 시기에 창당한다.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야권 변수가 내년 1월 ‘헤쳐 모여’ 식의 정계개편을 단행하는 셈이다. 이것이 ‘1월 빅뱅설’의 핵심이다.
핵심 관전 포인트는 제1야당의 향배다. 이제 간판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제1야당의 리더십은 바닥을 쳤다. 모래알 조직들이 서로 지지고 볶는 싸움을 수개월째 반복하고 있다. 당 안팎에 ‘누가 나와도 안 된다’라는 패배감이 전방위에 깔렸다. 이른바 ‘구원투수론’ 얘기도 쏙 들어갔다. 간판의 중요성이 한층 떨어진 셈이다. 당 주류의 장기집권이든, 비주류의 역습이 성공하든 그건 핵심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야권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내부결속 시도조차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권의 승리 방정식인 야권연대 등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야권 복원의 핵심 키워드는 ‘차별화’를 통한 내부결속이다.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도 중요하지만 기존 야당 체제와의 차별화가 더 중요하다.
새정치연합 중도그룹 한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는다”면서 “친노(친노무현)계는 문재인 사수만, 비노계는 문재인 사퇴만 요구한다”며 “퇴로가 없다. 범야권 지지층이 총결집한 18대 대선에서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도 패했는데, 어쩌자는 것이냐. 내부결속을 해야지 천정배 신당과, 진보정당과 통합이든 연대든 논의할 것이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가 20대 총선 캐스팅보트인 수도권과 충청권 등 중부권이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포가 아니다. 미완의 단일화에 그쳤지만, 범야권이 총결집한 18대 대선 당시 득표율을 보면 서울은 문재인 후보가 51.4%(322만 7639표)로, 48.2%에 그친 박근혜 후보(302만 4572표)를 제쳤지만, 경기와 인천에선 박 후보가 50.4%(352만 8915표), 51.6%(85만 2600표)로 문 후보(경기 49.2%·344만 2084표, 인천 48.0%·79만 4213표)를 꺾었다.
충청권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는 충북에서 56.2%(51만 8442표), 충남에서 56.2%(69만 2515표), 대전에서 50.0%(45만 576표) 등을 기록했다. 문 후보는 세 지역에서 43.3%(39만 8907표), 42.9%(52만 8417표), 49.7%(44만 8310표)를 얻는 데 그쳤다. 중부권 6개 지역에서 문 후보의 성적은 1승 5패였다. 야권이 중부권에서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사실상 내년 총선 승리는 어렵다.
전통적인 여권 텃밭인 대구·경북(TK)은 요지부동이다. ‘문·안’의 마이웨이로 남부민주벨트 요충지인 부산·경남(PK)에서도 40% 이상 득표는 쉽지 않다. 호남은 천정배 신당과 무소속 바람으로 야권 분열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사실상 이길 수 있는 지역이 없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는 필패다.
전선 수정이 불가피하다. 뼛속까지 친노, 비노를 벗고 범야권 지지층 결집을 위한 비상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당 주류 관계자는 “문 대표나 안 의원은 1996년 총선 상황에서 비상적 대책의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며 “이를 실기할 경우 1987년 김영삼(YS)과 김대중(DJ)의 양김 분열 이상의 분파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DJ 정계복귀 논란이 변수로 떠오른 1996년 총선 직전, 야권의 구심점은 이기택 민주당 총재였다. 하지만 이 총재는 당시 동교동계를 끌어안기는커녕 계파 지분에 매몰돼 ‘측근 심기’를 일삼았다. 동교동계 이훈평 등이 이 총재와 결별하면서 DJ 정계복귀의 명분을 만든 결정적 이유였다. DJ는 통합적 행보에 실패한 이 총재를 밟고 ‘준비된 대통령’ 슬로건으로 1997년 대선까지 거머쥐었다.
‘마이웨이’를 펼치는 문·안이 물리적 화합을 넘어 ‘화학적 통합’을 꾀하지 않을 경우 양김 분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월 빅뱅설이 야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벌써부터 호남 의원들은 저마다 ‘8인회’, ‘15인회’ 탈당그룹을 만들어 1주일에 한두 번씩 회동하면서 탈당 타이밍을 보고 있다. ‘저승사자’ 조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의 객관적 공천과 호남그룹의 탈당 여부 등에 따라 1월 빅뱅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 당 주류와 비주류 등 당직 사퇴 및 총선 불출마를 포함,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는 쪽이 1월 빅뱅설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천정배 신당의 향방도 변수다. 새정치연합의 문·안 갈등이 현실화되자, 천 의원은 공개적으로 안 의원에게 신당 합류를 제안했다. 안 의원이 ‘11월 반란설’에 불을 붙인 다음 날(11월 30일)이다. 11월 반란설은 안 의원의 화약고와 천 의원의 부채질로 마무리됐다. 또한 천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적 국민정당(가칭)’ 창당추진위원회 회의에서도 “야당이 살아나기 위해선 해체 수준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친노계 핵심 의원들의 2선 후퇴를 촉구했다.
천 의원 측은 ‘문·안·박’ 공동 지도체제 무산을 언급하며 “야권 복원 대안은 신당 창당을 통한 주도세력 교체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친노계든 비노계든 야권의 승리 방정식 마무리 단계에선 천정배 신당의 합류가 절실하다. 역으로 천 의원은 야권 빅뱅이 극에 달할 내년 1월까지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과 호남 적자 경쟁 등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1월 빅뱅설이 빅텐트로 귀결될 경우 천 의원은 ‘뉴 DJ 플랜’을 완성할 수 있는 지분을 노릴 수 있다. 반대로 야권 분열로 총선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야권 패배에 대한 부담은 제1야당에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천 의원에게 문·안 싸움 등 야권의 원심력은 꽃놀이패인 셈이다. 천 의원 측은 새정치연합 공천 탈락자는 물론, 박주선 신당 등 외곽 조직을 규합해 수도권은 연대, 호남은 일대일 구도로 치른다는 전략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배만으로도 안 되지만, 천정배 없이도 안 된다’는 것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다.
다만 천정배 신당이 내년 1월까지 조직력을 규합한 채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최근 천정배 신당의 전북그룹 중 일부 인사는 천 의원과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의 공보라인 구축 등을 담당했던 전북그룹의 구심점 약화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경우 시·도당 구축 등 창당을 위한 법적요건 구축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1월 빅뱅설의 판도라 상자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문·안·천’의 주판알 튕기기는 이제 시작됐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