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사표로 개업 걸림돌 제거하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서울변회는 11월 25일 심사위원회를 열어 김 전 차관에 대한 변호사 등록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회 관계자는 “김 전 차관에게 변호사법 제8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지 검토한 결과,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위가 ‘위법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변호사법 제8조 제1항 제4호는 ‘공무원 재직 중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형사소추(과실범으로 공소제기되는 경우는 제외) 또는 징계처분(파면, 해임 및 면직은 제외)을 받거나 그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퇴직한 자로서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로 변호사 등록 심사에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조항이다.
하지만 김 전 차관에게 해당 법을 적용시키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김 전 차관이 형사처벌이나 징계처분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3월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 아무개 씨(54)로부터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무부 차관에 취임한 지 6일 만에 사퇴했지만 따로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이후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2013년 11월 ‘성접대 동영상’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조사할 피해여성이 없다며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또 지난 1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김 전 차관을 고소해 재수사가 진행됐지만 검찰은 “동영상 속 등장인물이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으로 특정되지 않는다”며 재차 ‘무혐의’ 처분했다.
때문에 서울변회 내부에서도 심사과정에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갈린 것으로 파악된다. 접대나 유착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해 증거가 없으므로 등록거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과, 접대나 유착관계에 대해 검찰이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관한 추가 조사와 함께 김 전 차관의 소명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 것이다.
공방 끝에 결국 서울변회는 김 전 차관에게 추가자료 제출과 소명을 요구하고 그 내용을 참작해 오는 10일 재논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재논의가 끝나면 서울변회 상임이사회에서 심사위원회 회의결과를 참작해 12월 15일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의 소명에 따라 변호사 등록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법조계에서는 변호사 등록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물의를 일으켰지만 법망에 정확히 걸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변회에서의 심사 결과는 변호사 등록 최종 권한을 가진 대한변호사협회로 넘어간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아직 서울변회에서 넘어 오지 않았기에 속단하긴 이르다”면서 “대한변협에서도 신중한 심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길거리 음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두 번에 걸친 등록신청 끝에 변호사 개업에 성공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김 전 차관에 앞서 물의를 일으킨 판검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그리 어렵지 않게 했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9월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지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재직 중인 지난해 8월 ‘길거리 음란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김 전 지검장을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로 처분했다.
이후 잠행을 이어가던 김 전 지검장은 지난 2월 서울변회에 변호사 등록 신청을 냈지만 ‘자숙을 하라’는 서울변회의 지적에 신청을 철회했다. 하지만 6개월 후인 지난 8월 다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2차 도전에선 ‘치료내역 및 진단서’가 함께 포함됐다. 결국 서울변회는 심사를 통과시켰고 대한변협도 최종 등록을 결정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당시 여러 논란이 많았지만 자숙할 시간을 가졌고, 치료가 완료됐다는 진단서까지 제출했기에 심사를 통과시킨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지검장이 심사에 걸리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의원면직’이다. 면직은 통상 의원면직과 징계면직, 직권면직으로 나뉜다. 사표를 내는 경우는 의원면직에 속한다. 의원면직일 경우 향후 변호사 등록이나 공무원 연금을 받는 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 전 지검장 역시 김 전 차관과 마찬가지로 사건 발생 6일 만에 사표를 던져 의원면직 처분을 받았다. 논란에 중심에 섰을 때 빠른 사표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모양새로 비춰지지만, 한편으로는 향후 밥그릇을 지키는 ‘보험’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러한 꼼수는 물의를 일으킨 판검사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쓰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11년 서울고등법원 황 아무개 판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황 전 판사는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사표를 제출해 수리됐다.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은 비리로 수사를 받거나 징계에 회부되면 사직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지만, 대법원은 “직무관련 위법행위가 아니라 개인 비리여서 사직 제한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황 전 판사는 피해 여성과 합의해 처벌까지 면했다. 변호사 개업에 아무 걸림돌이 없었던 황 전 판사는 3개월 만에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물의를 일으킨 판검사들이 주로 서울변회에 변호사 등록 신청을 하는 등 눈길이 쏠리자 지방으로 ‘우회 등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A 전 부장검사는 지방 변호사회에서 등록을 마친 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A 전 부장검사는 지난 5월 서울에서 근무할 당시 회식 후 후배 여검사에게 음식을 빗댄 성희롱 발언으로 감찰을 받게 되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A 전 부장검사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어려워 보이자 지방에서 개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밖에 화상경마장 업자에게 뇌물과 성접대를 받고 유흥주점을 출입한 혐의로 2013년 면직처분을 받은 B 전 검사는 지난해 변호사 등록에 성공, 자신이 근무했던 검찰청사 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입방아에 올랐다.
2011년 자신이 조사하던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던 C 전 검사의 경우 최근 법원에 개명을 신청해 입방아에 올랐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C 전 검사가 변호사 등록을 하기 위해 개명을 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결국 물의를 일으킨 판검사들이 잠행 후 은근슬쩍 변호사로 ‘신분세탁’을 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변협 한상훈 대변인은 “그러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최근 변호사 숫자도 상당히 많이 늘어서 심사 과정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