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8년 LG 세이커스 감독 시절 작전지시를 하는 장면. | ||
침체 위기에 빠진 고려대 농구부의 부활을 위해 ‘개혁’을 단행하려 했던 체육학과 교수들과 기존의 정광석 감독 유임을 주장했던 체육위원회와의 한판 승부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진진하게 벌어졌던 것.
결국 양측의 ‘파워게임’에 오락가락했던 한승주 총장이 지난 13일 최종적으로 개혁파 교수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정광석 감독을 앞세운 체육위원회의 반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농구 감독 인선을 놓고 ‘투쟁’을 불사했던 교수파와 체육위원회의 갈등 속사정과 이충희 감독의 입장, 그리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고려대는 연세대와 함께 대학 농구의 자웅을 다툴 만큼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었다. 그러나 30년 동안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했던 박한 감독이 물러나고 코치였던 임정명 감독에 이어, 2001년 정광석 감독 체제로 바통이 이어지는 동안 고려대 팀이 연세대는 물론이고 다른 대학 팀한테마저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자 학교측에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선봉에 섰던 이들이 박영민 체육과 교수 등 5개 운동부 보직 교수들. 박 교수 등은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지난 12월31일자로 계약이 만료된 정광석 감독 대신 아시아 슈터로 명성을 날린 모교 출신 이충희 감독을 영입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체육위원회(위원장 임수길)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충희 감독은 그동안 학교를 위해 공헌한 것이 없고 대인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던 것. ‘정광석 감독에게 좀 더 기회를 주자’는 게 위원회측의 의견이었다.
농구 감독 임명 문제가 ‘개혁파’ 교수와 ‘보수파’ 체육위원회와의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자연 최종 결정권자인 한승주 총장한테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총장이 처음에 개혁파의 손을 들어줬다가 나중엔 슬며시 체육위원회쪽의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내분이 증폭되고 말았다. 마침내 5명의 체육과 교수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했고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체육위원회와 관련된 문제점 등을 폭로하겠다고 밝혀 한 총장을 사면초가에 빠트렸다.
▲ 동네북으로 전락한 고려대가 이충희 감독의 조 련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진 은 지난 98년 1월 연고전. | ||
이 배경엔 1월12일 2002∼2003농구대잔치 한양대와의 예선전에서 고려대가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당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한 총장의 발표를 하루 앞둔 시점이라 체육위원회와 체육과 교수들은 ‘동상이몽’의 심정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는데 결국 정광석 감독이 이끄는 고려대가 한양대에 무릎을 꿇자 개혁파가 힘을 받게 됐고 보수파들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는 것.
고려대 사태를 흥미롭게 지켜봤던 각 일간지에서는 바로 이충희 감독 영입이 최종 결정됐다고 보도했고 체육과 교수들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체육위원회에서는 기자들의 확인 전화에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말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다툼의 한가운데에 섰던 이충희 감독은 모교 감독으로 임명된 사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 감독은 학교로부터 정식 임명장을 받기 전까지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학교측의 ‘파워게임’에 잘못 대응했다가는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도 있기 때문. 특히 총감독으로 물러난 정광석 감독은 예전 현대전자에서 선수로 뛸 때 감독과 제자 사이로 만났던 터라 더 더욱 곤란한 입장이다.
또한 이 감독은 그동안 대학 농구보다는 프로팀 사령탑으로의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문과 교수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발 물러나 사태를 지켜봤었다. 고려대 감독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발표가 난 13일에도 골프 관련 방송 녹화차 제주도에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체육위원회를 자극시키기도 했다.
이충희 감독이 최종 사인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팀을 이탈해 있는 선수들을 불러모으고 ‘실패작’으로 끝난 스카우트 문제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다. 또한 유임된 이민현 코치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게 될지도 관심 사항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화려한 생활을 영위한 이충희 감독이 자세를 낮추고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을지의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