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윗선개입 의혹…막장 정치판 꼭 닮았네
연세대 학생회관에는 총학생회장이자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송 아무개 씨가 사퇴 이유를 밝힌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고성준 인턴기자
“하물며 20대 싸움이 이 정도인데…. 우린 현실 정치판 욕할 처지도 아니다.”
지난 9일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이 학교 사회학과 학생(12학번)의 말이다. 국제대 학생(12학번)도 “이번이 제일 X판이었던 거 같다”며 “중앙선관위원장이 갑자기 사퇴하는 바람에 친구들이 투표를 못했다. 투표 중단은 사상 처음이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요신문>이 연세대 학생회관을 찾았을 당시, 덕지덕지 붙은 대자보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대자보의 주인공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송 아무개 씨. 송 씨는 “제가 선거관리위원의 특정 선거운동본부 지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성 발언을 해서 중앙선관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 대자보 내용대로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는 중앙선관위의 애매한 판단이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1월 18일, A 후보와 C 후보가 후보 등록을 마치고 연세대는 총학생회 구성을 위한 선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유세기간이 끝나고 투표가 시작된 이틀째인 지난 2일, 중앙선관위는 뜻밖의 제보를 받았다. 음악대학 선거관리위원장 김 아무개 씨가 음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 독려를 빙자해 A 후보 지지 유도 행위를 했다는 것. 음대 선관위장의 ‘선거개입’ 의혹은 연세대 학생들 사이에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는 총여학생회장 정 아무개 씨. 당시 중앙선관위원이던 정 씨는 제보를 받은 뒤 중앙선관위원장 송 아무개 씨에게 ‘음대의 총학 투표함 폐기, 음대 선관위원장 사퇴, 음대 선관위의 재구성’을 촉구했다. 3일 오전 9시경 정 씨는 사퇴 선언을 하며 “중앙선관위장은 제게 ‘총학선거가 무산될 수 있다’며 음대 사태를 공론화하지 않고 그냥 ‘묻고 싶다’고 말했다”며 “공정한 학내 선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 씨의 폭로 후 송 씨도 개표를 몇 시간 앞두고 중앙선관위원장과 총학생회장 직을 돌연 사퇴했다. 다른 사회학과 학생(12학번)은 “무책임한 사퇴였다. 선관위는 문과대와 국제대 투표구가 잘못된 것도 공론화시키지 않고 묵인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음대생들의 표는 전부 무효 처리됐고 음대 선관위장 역시 사퇴했다.
선거 파행 위기 속에서 3일 오후 8시경 총학생회는 긴급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었다. 중운위는 중앙선관위를 새로 구성했지만 ‘막장’ 투표관리는 여전했다. 또 다시 ‘잡음’이 일었기 때문. 4일 국제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투표함에서 무더기로 무효표가 나왔다. 지정되지 않은 투표용구를 사용한 것. 중앙선관위는 ‘무효’표 처리 결정을 내렸지만 문과대 외솔관 투표함에서도 같은 문제로 무효표가 나오자 상황이 급변했다.
이 과정에서 A 후보 측은 “유권자의 의지를 꺾지 말아 달라, 유효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는 갑론을박 끝에 국제대와 문과대의 표를 ‘유효’ 처리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선거함이 단과대학으로 넘어가면 그 쪽 선관위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선거 세칙이 있다”며 “문과대와 국제대의 선관위장은 논란이 있는 표들을 유효표로 인정했고 우리는 그 의견을 존중했다”고 해명했다.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는 결국 C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부정선거 논란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에선 학교의 노골적인 ‘후보매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동덕여대 인문관에는 ‘양심선언 합니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기획국장 홍 아무개 씨가 그 주인공, 홍 씨는 “지난달 학교는 내게 몇 가지 공약과 함께 총학생회장 후보로 입후보할 것을 제안하고 뒤에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나를 설득했다”고 밝혔다.
홍 씨에 따르면, 동덕여대는 홍 씨에게 ‘제안’ 자체를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당시 학교가 제시한 공약은 ‘아빠와 함께하는 교내 활동, 영화관과 극장을 빌려 학생들에게 문화생활의 기회를 제공, 학생복지시설(수선집) 입점 등’이었다. 홍 씨는 총학생회 선거가 시작된 뒤 다른 후보의 공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학교로부터 제안 받은 공약들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중앙선관위는 홍 씨의 양심선언 직후 “학교가 분명히 총학생회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며 선거 ‘무산’을 결정했다. 9일 기자와 만난 이소연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양심선언 내용은 전부 진실이다. 총학생회는 총장, 학생처장과 일주일 전 면담을 진행했다. 선거 개입에 대한 공식 사과, 자치 침해 방지, 양심선언을 했던 학우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여전히 변한 건 없다”며 “면담에서 학생처장은 다른 2명에게도 후보직을 제안했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총장은 홍 씨가 입후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 개입은 아니었다는 황당한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밝혔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총학생회장 후보에 아무도 출마를 안 해서 선거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다. 학생처장이 학생들을 지도한 것으로 선거 개입은 아니다”며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고 학생한테 은밀하게 나가라고 한 일도 없다. 학생처장이 해명 대자보도 붙였다. 은밀하게 제안했던 선거운동본부 쪽이 당선되도록 유도한 일도 없다”고 해명했다.
성신여대는 학교의 개입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사진은 성신여대 총학생회 게시판. 고성준 인턴기자
성신여대는 ‘윗선’의 개입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지난 1일 중앙선관위는 투표 기간 중 갑자기 ‘위캔성신’ 박유림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고 학교 측에 선거 중단을 요청했다. 학칙이 ‘학생단체의 장 및 임원은 전체 학기 평점이 2.3 이상이어야 한다’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김 후보가 애당초 학생회장 자격이 없다는 것.
하지만 지난 9일 기자와 만난 박유림 후보는 “지금껏 후보등록은 학생세칙과 선거세칙에 따랐다. 학칙은 사문화됐다. 원래 학칙대로 했으면 저는 처음부터 불가였다. 등록할 때는 말이 없다가 개표 전에 갑자기 후보 박탈을 시켰다”며 “1일 오후 5시에 중앙선관위원장이 안건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회의를 소집해 회의 시작 30분 만에 출석 인원 11명 중 6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어떻게 이렇게 일사천리로 후보자격을 박탈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김 후보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중앙선관위는 부랴부랴 후보 박탈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학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성신여대는 전자투표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기에 학교가 시스템을 열지 않으면 학생들은 투표를 할 수가 없다. 성신여대 관계자는 “중앙선관위에서 후보 자격 여부에 대해 확인 요청을 하면 확인을 해서 선관위에 자료를 보내주곤 했다. 다만 후보에 대한 사전 심사는 아니다”며 “중앙선관위 측이 다시 김 후보에 대한 박탈 결정을 취소했지만 학교는 학칙에 위배된 사항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시 전자투표시스템을 열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 학교 한 자연과학대 학생(15학번)은 “선거는 선거세칙에 따라 해야 한다. 그런데 학칙 들먹이면서 위배된다고 하더니 중앙선관위가 독단적으로 학교에 공문 보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자연과학대 학생(15학번)도 “학교의 노림수다. 선관위장이 학교와 연결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여자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는 당선된 후보가 선거시행세칙 위반으로 ‘당선 무효’ 결정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 W 후보는 지난 11월 28일 58.27%의 득표율로 36.78%를 얻은 상대 후보를 눌렀다. 하지만 2일 중앙선관위는 W 후보가 선거비용 사용내역을 5시간 늦게 제출했다는 이유로 W 후보에게 ‘당선 무효’를 통보했다. 중앙선관위는 “당선자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선거지원금 사용내역을 24시간 내에 올리는 것”이라며 “당선됐다고 해서 세칙 위반을 방관하는 것은 학우들을 위한 일이 아니다”고 근거를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여대 총학생회 페이스북에는 학생들의 엇갈린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한 언론영상학부 학생은 “당선무효화는 너무 큰 처벌이다”며 “고작 서류 제출이 미뤄졌다고 당선 무효화라니, 학우들을 기만하는 처사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엄밀히 따지자면 선거법 위반이다. 세칙이 하루이틀일도 아니고 대대로 지켜져 오던 것인데, 당선 무효라고 적혀 있는데도 시간을 엄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어물쩍 그냥 사과문으로 넘어갈까”라고 반박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