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힘으로 안되면…국민의 힘 빌릴까
우리은행 매각이 수차례 무산되자 최근 금융연구원에서 “국민주 매각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우리은행 본점. 일요신문 DB
이 주장이 새삼 관심을 끄는 까닭은 정부기관에 가까운 곳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융연구원에서 나온 데다 우리은행 매각 방식 중 하나로 국민주 매각 방식이 이미 심도 있게 논의됐지만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적절하다고 폐기된 방식을 정부기관에서 다시 들고 나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우진 연구위원은 “공적자금 관리에 이자비용 등 제반 비용은 고려되지 않으므로 분할납입, 배당 확약 등 유인책을 제공하더라도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다시 한 번 국민주 매각 방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 매각과 그 방식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지는 이유를 지난 7월 추진한 과점주주 매각 방식이 정부가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민영화 방안으로 고집해오던 일괄 매각 방식이 네 차례나 무산되자 정부는 지난 7월 우리은행 자회사들을 떼어 매각하고 예금보험공사 보유 우리은행 지분 51.04%는 4~10%씩 쪼개 파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는 중동 국부펀드 등과 협상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래 옛 우리금융의 지방은행(경남·광주은행)과 우리증권은 매물로서 가치가 있었다”며 “문제는 가장 덩치가 큰 우리은행인데 금융산업이 어려운 터라 은행의 매력이 더 떨어져 매각 작업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과점주주 매각 방식은 우리은행의 경영권과 관계없이 단순히 지분 투자만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힘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과점주주가 임명하는 이사회와 집단지배체제, 지분 10%에 사외이사 1인 추천권 부여 등 주주를 끌어 모으기 위한 정부 측 방안 역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리은행 경영권을 포함한 매각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힘들다. 우리은행 경영권을 얻기 위해서는 예보가 갖고 있는 지분 51.04% 중 최소 30%를 인수해야 하는데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2조 5000억~3조 원의 인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쪼개 판 지방은행계열과 우리증권계열이 빠지면서 우리은행의 무게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그만큼 자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가 문제”라며 “2조 원대로 알려져 있는 대우증권 인수전에는 여러 금융사가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있지만 그보다 조금 비싼 우리은행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정부의 우리은행 매각 의지가 퇴색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0월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가 공자위 신임 민간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우리은행 매각 작업 궤도가 수정된 것 아니냐는 것. 하지만 윤 위원장은 취임 후 여러 경로를 통해 “과점주주 매각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중동 국부펀드와 실무진 간 관련 서류를 교환하고 조만간 예비실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매각 의지와 방식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쉬이 거두지 않는 까닭은 윤 위원장 스스로 민영화 3대 원칙 중 두 가지인 ‘조기 민영화’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가 이미 의미를 잃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구 은행장
윤 위원장은 3대 원칙 중 나머지 하나, ‘금융산업 발전’에 기반해 무턱대고 매각하기보다 좋은 주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윤 위원장의 이 같은 신념은 우리은행 매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다른 쪽에서는 매각 의지에 변화가 있다기보다 매각 방식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을 내보이기도 한다. 윤 위원장은 매각 방식에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앞서 언급한 금융연구원의 ‘국민주 매각 방식’ 주장이 나왔으니 주목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윤 위원장이 금융연구원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한편에서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