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5일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뒤 포장마차에서 소주 러브샷. 하지만 정몽준 후보는 투표 10시간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에 공조 철회를 통보한다.
정몽준 당시 후보의 지지 철회는 투표를 하루 앞둔 18일, 노무현 후보와의 마지막 공동 유세 현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장소는 종로 제일은행 본점 앞. 문제의 발단은 정 후보와 국민통합21일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피켓이었다. 피켓 내용은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
이 피켓을 본 노무현 후보는 특유의 직설을 쏟아냈다. 그는 이날 “국민통합21에서 나온 분 같은데 속도위반 하지 말라”며 “다음 대통령은 경쟁을 통해서 올라와야지 그냥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 사실상 차기 대권을 정 후보에게 손쉽게 물려줄 생각은 없음을 알렸다.
노 후보는 이어 “내 주변에는 젊은 개혁적 정치인들이 많은데 내가 흔들릴 때 행여나 검은돈 받으려고 할까 내 멱살을 붙잡고 말릴 수 있는 대찬 여자 추미애(秋美愛) 최고위원도 있고 나와 함께 끝까지 국민경선을 치러준 정동영(鄭東泳) 의원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노사모 회원들은 추미애와 정동영의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이어 노 후보는 “이런 분들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서로 경쟁해서 원칙있는 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쐐기를 박았다.
이 말이 끝나자 마자 유세장은, 특히 정몽준 지지 진영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순간 정몽준 후보의 얼굴도 차갑게 일그러졌다. 곧바로 정 후보는 종로 4가 한 음식점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단일화 정신은 노무현 스스로 깼다”라고 공조 철회를 결정했다.
곧바로 정몽준 후보는 평창동 자택으로 칩거했고, 김행 당시 국민통합21 대변인은 공조 철회를 공식화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정 후보 집 앞에 찾아갔지만, 그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노무현의 드라마는 당시의 위기를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13년이 지난 오늘, 노무현 대통령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여권의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잠시 휴지기를 갖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