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치용 감독은 삼성화재를 맡은 뒤로 선수단이 흔들리는 세번의 고비를 모두 ‘폭탄주 카드’로 정면돌파했다고 회고했다. 임준선 기자 | ||
창단 이후 7년 연속 배구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한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47)과의 만남은 예상치 않은 ‘술병’으로 인해 술잔을 건네기도 전에 취하는 분위기였다. 강력한 카리스마에다 ‘독종’으로 불릴 만큼 강한 인상을 지닌 신 감독은 처음부터 신선한 충격 요법으로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하나씩 허물어트리기 시작했다.
술 얘기부터 꺼냈다. 감독 치고 술 못 하는 사람이 없지만 신치용 감독은 술과 엄청난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선수단을 장악하는 데 있어 술은 ‘명약’ 중의 ‘명약’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내가 술을 잘 마시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만약 술을 못마셨더라면 지금처럼 유명 감독이 되지 못했을 걸. 성적이 안나거나 팀워크에 문제가 있을 때는 선수들과 때론 소주를 ‘크라스’(글라스)로, 양주는 스트레이트로 원샷하며 마셔댄 덕분에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술을 천천히 마실 경우 밤새 마셔도 끄떡없다는 이야기에 ‘소주 10병 정도는 마시냐’고 묻자 대뜸 “소주 10병을 어떻게 밤새 마시냐”는 ‘항의’가 돌아왔다. “10병 정도는 맥주잔으로 ‘후다닥’ 마시면 금세 없어진다”는 설명과 함께.
“어떤 선수가 도망을 갔어. 워낙 연습을 힘들게 시키니까 한두 번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고. 난 선수가 도망치면 절대 안찾아. 코치들한테도 연락하지 말라고 지시하지. 선수 입장에선 하루이틀 지나면 불안해지게 돼있거든. 며칠 뒤엔 반드시 나한테 전화를 해.
그렇게 시작해 양주에서 맥주로 주종이 바뀔 때쯤이면 비로소 신 감독의 자상함이 묻어나오는 순간이다. “그래 너 힘들었제. 그래도 사내 자슥이 치사하게 도망을 가노”하면서 따뜻하게 감싸준다고 한다. 대신 한 번은 용서하지만 두 번째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신 감독의 철칙이다.
“취중토크라서 그런지 계속 술 이야기만 하게 되네. 3년 전 겨울이었어. 준결승을 3일 앞두고 있는데 선수들 하는 거 봐선 절대로 결승에 진출할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비장의 카드’를 꺼냈지. 매니저한테 숙소 앞 술집을 통째로 빌리라고 말한 뒤 선수들에게 엄청 술을 먹였어. 폭탄주가 숱하게 돌고 맥주로 입가심한 뒤 서로 웃통 벗고 노래를 불렀지. 새벽 2시쯤 됐나. 숙소까지 선수들과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면서 얘기를 했어. ‘사람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지금 우린 내리막에 걸렸는데 심기일전하자.’ 준결승전날 보니까 선수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더라고. 분위기가 업 돼서 막 날더구먼.”
이런 ‘비장의 카드’는 삼성팀 맡은 이후 세 번 정도 사용했다고 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상태에서 엄청난 ‘도박’을 벌였고, 만약 잘못될 경우엔 선수단 전체가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세 번의 카드는 모두 적중했다.
신 감독처럼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한테는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뒤따른다. 특히 신 감독은 찬사보다 비난을 더 많이 받는 편이다. 즉 삼성화재가 배구판을 독식하고 있고 삼성화재의 독주로 인해 배구팬들이 흥미를 잃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신 감독은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이젠 그런 비난에 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단련돼 있지. 우리가 일곱 번 우승했다고 욕해도 난 규정을 어기거나 남을 등쳐먹은 적이 없기 때문에 떳떳해.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 날 욕할 시간 있으면 연습에 더 충실하라고 충고하고 싶어. 물론 스타 선수들을 데리고 있으면 우승할 확률이 높지. 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야.”
어떤 질문에도 청산유수였다. 경상도 사투리가 의리와 신의를 중요시하는 신 감독의 이미지를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전력에서 15년간 코치로 지내면서 현대자동차나 고려증권을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다. 삼성화재에서 창단팀 감독직을 제의했을 때 정과 미련이 남았던 한전을 떠난 이유는 오직 하나. 지는 게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지원 아래 ‘빵빵한’ 선수들을 스카우트해서 번듯한 팀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한몫했다.
결국엔 꼴찌팀 코치를 창단 감독으로 스카우트한 삼성화재의 배짱에다 채 피어나지 못했던 신 감독의 ‘근성’이 더해지면서 그는 창단 이후 ‘우승 제조기’의 명성을 날리며 ‘감격시대’의 주인공으로 탄생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선수들이야. 선수들이 날 등지면 난 기댈 데가 없어. 그래서 선수들을 존중하고 선수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끔 회사를 상대로 열심히 싸우기도 하지. 내가 아무리 욕을 하고 닦달해도 내 마음을 알기 때문에 뭐라 하는 선수들이 없어. 우린 아버지와 아들 사이거든.”
가져온 술 두 병이 바닥을 보일 때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신 감독의 가족들(농구선수 출신 아내 전미애씨와 큰딸 혜림양)이 옆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눈 뒤 돌아서는데 신 감독이 이렇게 소리친다. “다음엔 포장마차야. 그땐 각오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