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구에 도전한 10년 역사 동안 박찬호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성실한 훈련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어려운 상황들을 타개해왔다. 그러나 올 시즌 첫발을 내딛는 모양새가 이전과는 달리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과연 박찬호한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가. 박찬호의 현재와 미래를 긴급 진단해본다.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박찬호의 부진 이유는 투구폼의 기술적인 문제와 심리적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자신감 결여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7일 시애틀전에서 박찬호의 구위는 5일 전 애너하임과의 경기 때에 비해 월등히 좋았지만, 제구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올 시즌 5⅔이닝 동안에 볼넷 6개에 사구가 3개다. 매 이닝 1.5명 이상을 그냥 걸어서 내보냈을 정도로 최악의 성적이다.
벅 쇼월터 감독은 박찬호의 부진 원인을 투구폼에서 찾았다. “작년에 부상을 당한 후 생긴 다리 쪽의 나쁜 버릇이 종종 나타날 때가 있다. 그래서 잘 던지다가도 제구력이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정신적인 중압감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책임감이 유난히 강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레인저스의 팬들과 자신에게 투자한 구단주 등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좋은 경기를 보이겠다는 의욕이 항상 앞선다. 최근 박찬호와 단 둘이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는 쇼월터 감독은 “때론 너무 원하는 것이 강해서 힘들 때가 있다”는 표현을 했다. 7일 경기 이후 박찬호가 “편안한 마음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힌 것처럼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 일이 급선무다.
그보다는 원활하지 못한 대인 관계가 조금은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래도 사고방식이 다르고,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동료들과 매끈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면이 있다. 박찬호의 경기를 보다보면 동료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거나, 실수가 빈번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박찬호 입장에선 지금보다 더욱 많이 동료들을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팀에선 리더의 역할을 원하는데, 홀로 외톨이처럼 지내서야 팀 플레이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부상이다. 본인은 부상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허리 통증이 가끔씩 찾아온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허리나 다리가 아니라 ‘팔’이다. 박찬호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팔꿈치나 어깨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팔이 혹사당했다는 걸 의미한다. 혹시 팔에 어떤 이상이 있어서 구속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중대한 문제가 되지만, 아직은 추측만 있을 뿐 의학적으로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 경기에서 구위는 첫 등판과는 확연히 구분될 만큼 좋았다. 그러나 제구력 난조로 결과는 마찬가지였는데, 조속한 시일 내에 코칭 스태프가 박찬호의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이미 참을성을 잃은 팬들은 물론 동료들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물론 쇼월터 감독의 말처럼 단 한 번의 뛰어난 등판이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박찬호의 자신감과 팬들과 동료들의 신뢰를 금방 되찾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두 번의 등판이 더욱 중요해졌다.
박찬호는 4월 안에 자신을 둘러싼 ‘미스터리’들을 잠재워야할 의무가 있다. 만약 회복되지 않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회생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안타깝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