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로 아깝게 패했던 한·일전 소식에 대해 들었어요. 정말 아쉽더라구요. 축구팬들의 실망은 더했겠지만 직접 경기를 치른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허탈감에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3년 전 일본에서 벌어진 한·일전에 처음 출전했던 당시 저도 엄청난 부담감과 긴장감으로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우왕좌왕했었거든요. 한·일전이 갖는 역사적인 무게감 때문이었죠.
3년 전의 일본전 출전은 태어나서 태극마크를 두 번째 달았을 때의 일이었어요. 첫 번째는 꿋꿋이 벤치만 지키다 끝났고 두 번째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김상식 선배가 퇴장당하는 바람에 다른 선수가 빠지고 내가 김상식 선배 자리에 투입이 됐던 거죠. 10명으로 11명을 상대하다보니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마음은 펄펄 나는데 몸이 마음대로 안따라주는 것.
일본선수들은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편이에요. 내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이런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약한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죠. 일부러 터프한 척, 강한 척, 센 척 등 있는 ‘척’은 다했던 기억이 나요. 일본축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거죠.
요즘 우리나라 축구계에선 쿠엘류 감독의 포백 시스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포백은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전술(물론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에 포백을 구사했지만 나중에 스리백으로 돌아섰죠)이라 당연히 적응하기 힘든 건 사실일 겁니다.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습시간으로는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을 소화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그러나 좀 더 시간을 갖고 하나둘씩 만들어 간다면 포백이 우리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축구 스타일은 아니라고 봐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고 앞으로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좀 더 여유를 갖고 지켜볼 수 있는 태도가 쿠엘류 감독한테는 큰 힘이 될 거라고 봐요.
사실 뛰지도 못하는 내가 이곳에 앉아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나 누구보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나 축구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쿠엘류 감독이 한·일전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부족한 연습시간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난 선수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고. 무릎 수술 후 여전히 재활훈련중인 난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나도 감독님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의 축구팬들도. 뛸 수 있는 그날까지 날 잊지 말고 꼭 기다려 주세요. 네?”
4월17일 에인트호벤에서 정리=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