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미녀 치어리더의 동작을 따라하는 기자의 몸짓이 어째 어설퍼 보인다. 임준선 기자 | ||
치어리더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긴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에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독특한 응원문화는 분명 세계 어느 경기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 응원 코드’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남 모를 땀과 눈물이 동전의 뒷면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과연 이들이 춤을 추며 바라본 세상은 어떤 것일까. 기자가 직접 치어리더의 세계를 두드려 봤다.
지난 15일 기자가 설레는 발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부산 메리트 무용단의 연습실. 바로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들이 연습장소로 이용하는 곳이다. 김민정씨(25)와 정지원씨(22)가 ‘몸치’로 보이는 기자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미리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오늘의 ‘1일 교관’이다.
“신체 조건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평균 170cm이상의 키에 리듬감각과 타고난 끼를 갖고 있으면 좋겠죠. 체력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항이고. 어느 정도 노출되는 의상을 소화해야 하니 건강한 몸매도 기본이죠.”
기자와 비슷해 보이는 키. 하지만 다리 움직임부터가 달랐다. 민정씨가 머리까지 다리를 가볍게 올리며, 겨우 허리와 가슴 사이를 힘들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자를 초반부터 주눅들게 한다.
▲ 김민정씨 | ||
지원씨가 신세대답게 다음(Daum) 카페에 2백40명이 넘는 팬클럽을 갖고 있다면 민정씨에게는 5년 동안 변함 없이 지켜봐 주는 골수팬들이 상당하다.
시즌 전엔 하루 6시간 이상씩 연습하는 강행군이 계속됐단다. 시즌 중엔 팀원들 간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곡으로 안무를 개발하는 데 치중한다고.
사근사근하던 두 미녀들은 기자의 유연성과 리듬감각을 간단한 기본동작으로 파악해 보고는 곧바로 하드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평소엔 손끝 하나, 발의 위치까지 통일되기 전까지는 무한대로 연습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이 손과 발이 ‘따로국밥’으로 노는 기자의 율동을 용서할 리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픈 다급한 마음에 질문부터 던졌다. “혹시 ‘사인’을 보내는 선수들은 없었나요?”라고.
“전화번호 달라는 선수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선수들이 자신을 스포츠 스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작은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죠. 서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보니 글쎄요, 결국 외부의 기대(?)에 못 미치게 되는 건가요.”
하지만 이들 역시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다만 ‘환상’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볼 때로 한정할 뿐이라고.
땀으로 한 차례 목욕을 하자 이번엔 본격적인 율동 배우기에 들어갔다. 먼저 음악 없이 카운트를 하며 호흡을 맞추는 ‘박자 익히기’ 훈련이다. 이렇게 몸을 풀고 나서야 비로소 음악이 동반된다. 미나의 ‘꿈은 이루어진다’가 경쾌하게 깔리고 현란한 동작이 눈앞에 펼쳐진다. 엇박자, 반박자로 계속 어긋나는 기자였지만 어설프게라도 어느새 몸은 웨이브를 그리고 있었다.
▲ 정지원씨 | ||
땀을 닦으며 꺼낸 지원씨의 말에는 치어리더를 보는 세상의 시각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아직 싱글인 민정씨 역시 부모님이 직접 경기장에서 노출이 심한 복장을 보신 후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던 기억을 떠올렸다.
여자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아직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정서. 일부이긴 하지만 명함을 건네며 ‘연락하라’거나 ‘술 한잔하자’며 끝까지 쫓아오는 관중들의 거침없는 행동은 치어리더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변해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직업관은 의외로 탄탄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고 일해요. 남들의 시선만 의식하고 자신의 상품성과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중도에 탈락할 수밖에 없겠죠.”
치어리더의 수입은 율동만큼 화려하진 않다. 연봉이나 월급제가 아니라 대부분 일당으로 주어지는데 한 경기당 5만∼15만원 선. 실제로 단상에 오르는 경기를 따지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이벤트 도우미나 무용단원으로 ‘외도’에 나서기도 한다.
관중이 떠난 야구장처럼 경기 후에 치어리더들이 맞이해야 하는 ‘현실’도 공허하기만 하다. 탈의실조차 갖춰지지 않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씻을 곳이 없어 땀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일쑤. 하지만 그들에겐 어려움을 이겨내는 당당한 자부심이 있다. 바로 민정씨와 지원씨 같은 치어리더들의 미소가 매력적인 이유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