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톱클래스 골퍼이면서도 LPGA 행렬에 뛰어들지 않 았던 정일미가 마침내 ‘출사표’를 던졌다. 갈 필요성을 이 제야 느꼈다는 그녀는 한편으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연말 강수연마저 LPGA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고 떠났을 때는 남아 있는 그가 외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국내 무대만을 뛰는 그한테 한때는 ‘국내용’이란 오명도 따라다녔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때가 되면 가겠죠”라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그의 진심이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 그가 7월9일 미국으로 떠난다. 물론 LPGA 무대에 승선하기 위해서다.
출국 전 ‘취중토크’를 통해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 그는 다름 아닌 국내 여자 프로골프 무대의 톱스타 정일미(31·한솔홈데코)였다. 지난 6개월 동안 “술 한잔하자”는 거듭된 유혹에도 불구하고 끄덕도 하지 않다가 떠나기 전 ‘옛 정’을 잊지 않고 인터뷰에 응한 그는 웨이브진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나타나 한층 성숙된 아름다움을 물씬 풍겼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삼성동 부근의 한정식집에서 만난 정일미는 골프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결혼 이야기, 그리고 ‘길치’ ‘음치’ ‘몸치’이기까지한 ‘끼’ 없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엄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아버지를 의식해서인지 정일미는 술자리(또는 ‘밥자리’?) 앞에서 너무 진지했다. 술을 넘기면서도 마치 강의를 하듯 자신의 골프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성공엔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골프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전 그런 고비가 거의 없었어요. 중학교때 골프를 시작했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랭킹이란 게 없었어요. 백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으니까. 그런 사람이 고3때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는 거예요. 그후 바로 국가대표에 발탁이 됐죠. 제가 들어가기 전에 상비군이 없어졌거든요. 일이 풀리기 시작하니까 정말 술술 풀리더라고요.”
“5년 전인가? 애니카 소렌스탐과 한 조가 돼 라운딩을 펼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제 플레이가 끝날 때마다 ‘굿 샷’ ‘굿 퍼팅’ 등 계속 분위기를 띄우는 거예요. 당시만 해도 소렌스탐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죠. 자기 플레이나 신경쓰지 남이 잘하든 못하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정말 완성된 골프를 치려면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플레이할 때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런데 이것도 몸에 배지 않으면 힘들어요. ‘나이스 샷’을 외치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거든. 칭찬해주려고 정신 팔다 보면 감각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정일미는 최근 한 골프대회에서 만난 구옥희(47)에 대해 거듭된 존경심을 나타냈다. 국내 그린에 적응이 안돼 형편없는 스코어가 나왔지만 후배들한테 절대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예의를 갖춰 배려해줬던 것. 골프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절로 고개를 숙이게끔 만드는 카리스마를 느끼고 정일미의 목표는 보다 확실해졌다고 한다.
너무 상투적인 질문일 것 같아 생략하려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꺼낸 질문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내용이었다. 거듭 술잔을 부딪치던 정일미가 순간 한숨을 푹 내쉰다.
정일미는 골프에 관해서는 완벽주의에 가깝지만 생활면에서는 거의 정리가 안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건망증에 관해서는 후배들도 두손 두발 다 들었을 정도이다. 자가 운전자이면서도 길 찾는 건 포기 상태라 음식점이나 미용실도 가본 데만 간다. 상호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약속을 잊어버리는 게 부지기수다(실제로 ‘취중토크’를 약속해 놓고 정일미는 전날에 확인 전화를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 친한 후배가 평소 메모 좀 하고 살라며 새해 선물로 수첩을 선물했는데 그마저 잊어버렸다고.
“컴퓨터 용량이 안되나봐요. 칩을 바꿔야하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골프채는 절대 안 잊어버린다는 거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마음을 감추고 웃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가끔은 ‘징·그·럽·다’고 생각한다는 정일미. 인터뷰 말미에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커진다며 속내를 내비쳤다.
“남들이 가서 나도 가는 게 아닌, 정말 갈 필요성을 이제야 느낀 거죠. 퀄리파잉스쿨에 통과를 해야 시드 배정을 받지만 탈락할 거라곤 0.01%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래도 마음 한켠엔 지금 생활도 행복한데 굳이 미국에 가서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래서 옆집에 마실가는 기분으로 ‘살짝’ 갔다 오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