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부터 ‘무늬만 부부’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연녀와 혼외자식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했다. 2003년 9월 22일 보석으로 풀려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부인 노소영 씨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를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만남은 30년 전인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 경제학 학사를 거쳐 같은 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중이었다. 노 관장은 1980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일부에서는 노 관장이 ‘쿠데타 주역 괴수의 딸’이라는 질타가 괴로워 국내에서 학교생활을 하기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으로 떠난 노 관장은 윌리엄앤드메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대기업 회장의 장남과 정권 최고 실세이자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람의 딸로 만난 것이 아니라 시카고대 대학원 경제학 전공 선후배 사이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머나먼 타국에서 두 사람이 서로 아무 정보도 없이 개인적인 사이로 만났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은 테니스 등을 함께 하며 데이트를 하고 타국생활의 외로움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세련되고 지적인 모습에, 노 관장은 최 회장의 겸손하고 검소한 모습에 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대기업 총수의 장남, 다른 한 사람은 곧 대통령 취임이 유력한 최고권력자의 딸이었다. ‘정략결혼’,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최태원 회장 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은 “본인들의 뜻”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 최종현 회장은 “대통령이어서 사돈을 맺자고 했던 것이 아니었고, 또 대통령이라고 해서 굳이 사돈을 맺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며 “배우자 선택은 당사자 스스로 하는 것이지 자식들을 정략의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최태원-노소영 커플은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지 7개월 만인 1988년 9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SK는 최태원 회장의 결혼을 계기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고 최종현 회장은 거듭 “본인들의 뜻”이라고 강조했지만 SK그룹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8~1993년을 중심으로 전후 몇 년간 크게 발전했다. 오늘날 SK그룹이 재계 3위에 오르는 데는 이 기간의 성장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허가,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의 과정은 ‘살아 있는 권력의 사위’이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2011년 12월 1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두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SK는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을 설립하면서 이동통신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1992년 6월 대한텔레콤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이동전화 부문 사업허가를 신청, 두 달 후인 8월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현직 대통령 사돈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리면서 자진 반납했다. 대신 SK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현 SK텔레콤으로 이어왔다. SK그룹 성장사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결혼 초기부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989년 장녀 윤정 씨, 1991년 차녀 민정 씨, 1995년 장남 인근 씨를 차례로 출산하며 겉으론 금실을 자랑했지만 두 사람 주변에서는 늘 불화설이 맴돌았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파경 조짐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최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2012년.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별거 상태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며 사실상 이혼 절차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혼에 합의하고 별거 상태에 들어간 지는 사실 10년여 전”이라며 “그동안 무늬만 부부로 살아왔다”고 전했다.
2013년 1월에는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한 이혼청구소송 소장을 작성하기도 했다. 소장에서 최 회장은 “결혼 초부터 성장 배경의 차이, 성격과 문화 차이, 종교의 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고 토로했다. 1998년 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이 작고해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그룹 회장직에 오른 것, 어렵게 얻은 장남이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고 살아야 하는 난치병에 걸린 것, 2008년 분식회계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것 등으로 심적 고통을 받은 최 회장은 결혼생활을 통해 위로를 받기는커녕 더 큰 고통을 받았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부부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는 있다.
최 회장이 ‘마음의 위로가 되는’ 여인을 만난 것도 이혼을 결심하게 된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2009년부터 노 관장과 별거에 들어간 최 회장은 2010년 한 여인을 만났고 이 이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얻자 이혼 소송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러나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하기 직전 법정구속되면서 최 회장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채 오랜 영어의 생활로 들어갔다.
소송 제기가 무산된 지 약 3년 만인 최근 최 회장은 또 다시 노 관장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법적 절차가 아닌 언론 공개 방식을 택했다. 내연녀와 혼외자식이 있는 최 회장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므로 소송을 제기해봐야 노 관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뜻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숱한 화제를 뿌렸던 대기업 총수 장남과 대통령의 딸의 결혼생활은 27년 만에 결국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