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한 문제 매듭” vs “우릴 무시한 처사”
지난 12월 30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뒤 처음 열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성준 인턴기자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굽이굽이 들어가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는 ‘나눔의 집’. 이곳은 생존해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며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주위엔 슈퍼 같은 부대시설이 없었고 영하 7도의 날씨 탓인지 집 밖에 나와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침부터 나눔의 집에는 삭막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도 비어 있었다. 이날 오후 정부 관계자의 방문 소식이 알려진 터라 하나둘 취재진이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적막감이 깨져가고 있었다. 1층 거실에선 기자들이 나눔의 집 관계자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그렇지만 나눔의 집 관계자들은 “정부에서 공식적 입장은 없었다”는 정도 선에서만 대답을 해줄 뿐이었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날씨 탓에 할머니들은 각자의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외무대신을 통해 아베 총리의 사죄를 전했다. 또한 일본 정부 예산으로 하는 위안부 재단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적 배상이 아닌 기금 지원, 위안부 소녀상 철거 등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일본 측이 집요하게 요구한 문제들을 너무 쉽게 내줬다는 비판도 불거졌다. 다음 날인 29일에는 ‘나눔의 집’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6개의 위안부 관련 단체가 공동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역시 급히 차관을 임성남 1차관과 조태열 2차관을 각각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방문토록 조치했다.
오후 2시 30분에 외교부 조 차관 방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2시가 다가오자 나눔의 집 주변은 수십 명의 취재진으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외교부 조 차관과의 만남은 나눔의 집 거실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다. 약속시간을 앞두고 방에 있던 할머니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해 2시 20분 정도에 대부분의 할머니가 거실에 나와 자리를 잡았다. 조 차관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적막감과 긴장감이 흐르는 시간이 이어졌다. 조 차관은 약속 시간을 조금 넘긴 2시 40분 정도에 나눔의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조 차관이 드디어 거실에 들어서 할머니들을 마주했다. 여전히 할머니들은 굳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조태열 차관을 기다리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 고성준 인턴기자
조 차관은 “회담 결과와 그 내용을 말씀 드리러 왔다”며 “의논하지 않은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 또한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합의의 주된 성과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점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최초로 공식 사죄라는 점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한다는 점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아베 총리의 공식 입장을 외무대신이 전달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현재 외교부는 할머니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이 마이크를 이어 받아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합의문 내용을 전달 받은 것은 없었다. 할머니들 또한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며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합의 내용을 전달해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특히 전날 “정부가 하는 대로 따르겠다”던 유희남 할머니를 인식한 듯 “유 할머니는 눈이 좋지 않아 합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안 소장은 우선 피해자가 생존해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합의를 한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일본을 대표해서 총리 자격으로 사과가 이뤄진 것인지 총리가 개인 자격으로 사과를 하는 것인지 불명확한 점 등을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또한 재단 설립에 관해선 “지금 정부로부터 충분히 지원 받고 있는데 무슨 혜택을 더 준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드디어 할머니들도 입을 열었다. 이날 할머니들의 주요한 입장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그에 따른 ‘응당한 배상’이다. 유기남 할머니는 정부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보상해 준다고 해서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단 설립부터 보상까지 오랜 기간이 걸릴 텐데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며 분개했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유 할머니는 “구걸합니까?”라고 반문하며 “생명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금자 할머니는 “40여 명의 할머니가 남아있는데 우리를 무시한 처사나 다름없다”며 “합의를 하되, 합의를 그렇게 했어야 됐냐”며 합의 방식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할머니들의 입장을 차분히 들은 조 차관은 “시급한 문제였기에 시간이 중요했다. 100%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공개 석상에서 책임 인정을 받은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요구 사항을 도출하면 그것을 최대한 반영시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완전히 회복되는 데까지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은 없고 정부는 시간에 쫓기듯 일처리를 해버렸다. 같은 시간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평화의 우리집’을 찾은 임성남 외교부 1차관 또한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어떻게든 결말을 지으려고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1시간가량의 방문이 끝난 후 조 차관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할머니들과 남아 있는 기자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공식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이옥순 할머니는 “우리가 어느 나라 딸이냐? 대한민국의 딸이다”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일출 할머니는 “우리 당한 거 속 안 아파요?”라며 “후생을 위해 이 나라를 똑바로 지켜라”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유희남 할머니는 재단 설립에 대해 “치사하고 더럽다”며 “차라리 친일파 재산 몰수한 돈을 받겠다”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우리 자식도 내 신분을 알까봐 전전긍긍 산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고 쓸쓸함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취재진 사이에서 밀려 문가에서 서성이던 학생이 눈에 띄었다. 수원에 위치한 유신고등학교 문화역사답사반에서 온 3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었다. 김현동 군(17)은 “할머니들이 걱정돼서 왔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졌으면 좋겠고 이 문제가 재조명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를 입은 시간, 피해를 잊는 시간, 피해를 응당 보상 받는 시간들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지 또 김 군이 이야기한 것처럼 위안부 문제가 재조명될지 또한 이번 한·일 합의가 정말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