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과 빼닮은 남성의 정자 원해요”
정부가 수년 전부터 불법 정자매매에 대한 단속에 나섰지만 온라인을 통한 대리부 불법 거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전혀 관련 없다. 연합뉴스
“금방 내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A 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딸의 얼굴을 봤다.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부와 어린이집 교사의 양해를 구해 창문 너머로 아이를 찾았다. 열 명 남짓의 아이들 사이에서 그는 한 여자 아이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신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그동안 부부와 연락 없이 지내다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나 하고 부부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는 답장을 받았다. 한번은 꼭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 A 씨의 부탁을 부부는 거절했지만, 수차례 사정한 끝에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왔다고 한다.
아이는 5년 전, A 씨가 대리부에 지원해 태어난 아이였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불임부부를 만났다. 수년간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남편의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가 올린 구구절절한 사연을 보면서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정이 있었던 불임부부, 선의로 그들을 돕고자 했던 A 씨의 거래는 불법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5년 마련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을 보면, 돈을 받고 정자나 난자를 팔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제2절 제23조 3항에는 누구든지 금전, 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배아나 난자 또는 정자를 제공 또는 이용하거나 이를 유인하거나 알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대리부 불법 거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대리모 대리부 불법 사이트 적발 현황’을 보면, 지난 2013년 62건, 2014년 90건으로 45.2% 증가했다. 특히 대리부 알선이 95건(65.2%)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대리모(76건, 50%)였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대리부 알선 사이트를 적발하면 해당 글을 삭제하는 것이 전부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금전을 요구하는 대리부 지원자들의 소개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이들은 그동안 알려진 바와는 달리, 포털 사이트의 카페, 커뮤니티 등보다는 블로그를 개설해 지원하고 있었다.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해당 블로그에 올려둔 게시물이 검색되는 방식이다. 카페와 커뮤니티 등은 관리자들이 있어 금방 대리부 지원 글이 삭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블로그를 통한 광고가 늘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올라온 대리부 지원자들의 자기소개는 마치 입사지원서를 연상시킬 정도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조건 및 집안내력 등을 거론하면서 신체적으로 ‘우성’임을 강조한다. 병역사항 및 집안 병력, 대머리 유전 여부, 준수한 외모, 비흡연은 필수 항목이다. 일부는 해병대, 카튜사 등 특수부대 출신임을 내세우기도 했다.
게시글 가장 아래에는 공통적으로 ‘금액’이 적혀있었다. 10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계약금 명목으로 30~40%를 먼저 받고 성공하면 나머지를 받는 경우부터 선불금을 받고 성공했을 경우 사례비로 일정금액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까지 사례도 다양했다. 자신을 명문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지원자의 글에서는 “아이에게 우성인자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돈이 좀 들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하셔야 한다”며 대놓고 가격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게시글에도 ‘추후 협의’ ‘조율 가능’ ‘수고비’ 등 금전 거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기자가 접촉한 한 대리부 지원자는 처음 “어려운 사정을 잘 안다. 돕고 싶다”며 선뜻 “정자를 건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외고와 서울 4년제 명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아버지와 누나 모두 명문대 출신임을 강조하며 요구하는 증빙 서류는 모두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붙임성 좋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가리는 음식도 없다”며 성격과 식습관 등도 소개했다. 이어 “대리부에 대해서는 임신이 잘 되는 편이라 피임에 대해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됐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금액에 대해서는 “직접 만나 조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대리부 지원자들의 자기소개는 마치 입사지원서를 연상시킬 정도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조건 및 집안내력 등을 거론하며 신체적으로 ‘우성’임을 강조한다.
또 다른 지원자는 “자연수정 및 인공수정이 가능하다”며 “자연수정의 경우 성공 경험도 2번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자연수정이란 정자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성관계를 말한다. 그는 “임신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겠다”면서 “나중에 적당한 수고비만 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의 명문대 출신 지원자와 자연수정에 대해 설명한 지원자는 증빙 서류 등을 내세우며 기자를 설득했지만, 이들의 조건과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신뢰도가 낮아도 대리부가 늘어나는 이유는 이들을 찾는 일부 불임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조사한 ‘불임진료 환자현황’을 보면 지난 2014년 기준 불임환자는 21만 1184명으로, 최근 5년간 13.5% 증가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10년부터 정자은행들이 확보한 정자보다 ‘시술하는’ 정자가 많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139곳에 정자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출산을 원하는 불임 부부들을 위해 정자를 제공받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한 병원은 정자를 직접 공여한 건은 71건이었으나, 불임 부부가 직접 가져온 것은 두 배가 넘는 191건이었다. 또 다른 병원은 정자 공여 건수가 하나도 없었으나 정자 피공여 건수는 65건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병원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집계해보지 않았지만, 매년 정자 기증은 줄어들고 있지만 불임부부가 직접 가져오는 정자의 숫자는 줄지 않았거나 조금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처럼 불임부부가 직접 가져오는 정자 가운데 불법적으로 확보한 정자가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불임부부가 대리부를 찾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정부는 모자보건법 제11조에 근거해 만 44세 이하로 소득수준이 전국가구 월 평균소득 150% 이하 여성에게만 인공수정 3회, 체외수정 6회를 지원하고 있다. 체외수정 시술비의 경우 회당 19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시술비는 회당 500만 원 정도여서, 정부지원을 받아도 개인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리부의 신상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도 불임부부가 불법 정자 매매에 눈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공여받을 경우 혈액형을 제외한 기증자의 정보는 모두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한 대리부 지원자는 “한 불임부부는 남편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의 지원자를 찾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혈액형이나 아버지 집안 쪽 체형을 물었고, 머리색이 완전 흑색인지, 직모인지 곱슬인지, 광대뼈가 나왔는지 등 얼굴 특성도 꼼꼼하게 따져 봤다”고 말했다. 아버지 쪽 사람들이 하나같이 머리숱이 없는데 무조건 머리숱이 많은 대리부를 구한다거나, 얼굴형이 다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의 한 산부인과 원장은 “무상으로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하는 것보다 온라인 불법 매매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는 것 같아 우려된다”며 “검증된 양질의 정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기증자에 대한 현실적 보상방안과 기준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별로 거점 정자은행을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의뢰인과 대리부의 만남 때론 성관계가 목적인 늑대도… 대리부와 의뢰인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기자가 접촉한 대리부 지원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계약이 성사된다. 서로 비밀을 요하고 의뢰인의 요구 조건은 까다롭다. 인터넷상에서는 크게 두 가지 만남 방식이 있다. 대리부 지원자가 블로그 등에 광고 글을 올리면, 의뢰인은 메일을 통해 1차 상담을 한다. 답장을 통해 대리부 지원자가 연락처를 보내오면 전화로 2차 상담을 한다. 이 과정에서 사진 등을 재차 요구해서 먼저 외모 검증을 거치는 의뢰인도 있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계약을 맺고 사례를 한다. 이때 ‘임신 후 절대 연락하지 말 것’ ‘비밀 지켜줄 것’ 등에 대한 각서를 서로 작성하기도 한다. 그런 후 병원 등에서 정자를 채취한 후 여성의 몸에 착상한다. 착상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정자를 제공해야 한다. 자연 수정, 즉 성관계를 통해 임신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에는 여성의 배란기 등을 따져 성관계를 갖는다. 임신에 성공할 경우 비로소 계약이 끝난다. 의뢰인은 대리부에게 약속한 형태로 사례를 한다. 일부는 별도의 특별 사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만 일부 대리부의 경우 정자 기증이나 판매 목적 보다는 자연 수정을 빌미로 한 성관계를 목적으로 한다고 알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