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PGA에 진출해 2승을 거둔 ‘탱크’ 최경주 가 이번엔 유러피언 투어에서 첫 정상에 올라 세계랭킹을 16위로 껑충 올렸다. | ||
미국 진출 첫해인 2000년 말 랭킹 2백34위에 불과했던 그는 2002년 5월 컴팩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1백 위 이내로 진입했고 두 번째 우승 후 50위권, 그리고 독일 마스터스의 우승으로 지난 23일 세계랭킹 16위에 랭크됐다. 그 전 주(37위)보다 무려 21계단을 뛰어오른 것이다. 지난 25일 새벽(한국시간) 기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 ‘연습벌레’라는 별명답게 그는 벌써 자신의 ‘스위트홈’이 있는 텍사스로 돌아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국 발레로텍사스오픈에 대비해 맹연습중이었다.
“처음으로 유럽 투어에 참가한 것이 운 좋게도 메이저대회였다는 것, 그리고 그런 큰 대회에서 우승한 걸 보면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기분이요? 물론 좋죠. 제 골프 역사가 날마다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왜 안 좋겠어요,”
최경주는 독일로 건너가기 전까지만 해도 린데저먼마스터스의 규모나 분위기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엄청난 규모의 PGA무대에 단련된 탓에 유럽 대회는 한 템포 쉬어 간다는 느낌으로 참가했던 것.
“유럽 마스터스대회 우승이 이런 굉장한 변화를 가져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한 대회 우승으로 세계 랭킹이 21계단이나 올라가네요. 하하.”
PGA 투어 생활 초기에는 ‘힘들다’ ‘어렵다’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는 최경주. 랭킹 1백위 안에 드는 건 감당할 수 있는 ‘몫’이었지만 50위 진입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처럼 수월치 않았다고 한다. 톱 클래스에 포함된 선수의 출전 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을 상대해서 랭킹을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 가끔은 빅 스타들이 빠진 대회를 ‘골라서’ 출전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PGA 진출 후 가장 큰 고비를 맞았던 순간에 대해 최경주는 2000년 퀄리파잉스쿨(Q스쿨) 통과를 꼽았다.
“PGA투어 1년차 성적이 1백위권을 벗어나는 바람에 2000년 다시 Q스쿨을 거쳐야 했어요. Q스쿨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아 초긴장 상태에서 마지막 6라운드를 치렀는데 다행히 4언더파를 몰아치는 바람에 간신히 35위(35위권까지 진입해야 다음 시즌 PGA투어 시드대기권을 획득한다) 안에 들어갈 수 있었죠. 마지막 홀에서 마지막 퍼팅이 안 들어갔더라면 전 지금쯤 일본 투어에서 PGA를 동경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때의 그 마지막 퍼팅 성공으로 무명의 한국인 골퍼는 미국 캐디와 골퍼들 사이에서 ‘눈칫밥’과 보이지 않는 무시, 타향살이의 설움 등을 겪으면서 PGA 무대를 ‘느리지만 빠른’ 스텝으로 밟아 나갔다. 최경주는 지난 유럽투어 우승 후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통역 없이 영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렇다면 이젠 ‘영어 완전 정복’이 이뤄진 것일까.
“어떻게 영어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겠어요. 아직도 잘 몰라요. 알아듣기도 하고 못 알아듣기도 하고. 보통 물어보는 내용이 늘상 비슷하기 때문에 대답하기는 수월하죠.”
강한 인상과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붙은 별명이 ‘블랙탱크’ ‘호크아이’ ‘필드의 타이슨’ 등이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을 꼽아달라고 하니 ‘탱크’라고 말한다.
“2년 전 LA대회에서 어느 갤러리가 말하길 밀어붙이는 제 골프 스타일이 마치 ‘탱크’ 같다고 해서 ‘탱크’라는 별명이 시작된 건데 이상하게도 언론에선 제 외모를 별명과 많이 비유해서 내보내더라고요. 그래도 전 ‘탱크’란 별명이 좋아요. 물론 차갑고 딱딱하며 다소 무식해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친근감이 가거든요.”
마지막으로 요즘 골프계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남녀 성(性)대결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다.
“여자와 남자는 구조적으로 다르잖아요. 다르면 다른 대로 해야지 왜 자꾸 대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노는 물’이 다른 건데.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각자의 ‘물’에서 놀자는 거죠.”
오랫동안 스윙 교정에 매달렸던 최경주. 이제 ‘탱크’는 거의 수리가 됐고 완전한 가동을 위해 미세한 부분을 연습과 시합 참가로 조금씩 보완 수정 중이라는 그한테도 가장 무서워하는 ‘지뢰’가 있었다. 바로 컷오프 탈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