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친선경기인 ‘고연전’ 에는 두 학교의 자존심이 달려 있어 더 치열 하다. 사진은 지난 27일 고연전 럭비 경기 모습. 임준선 기자 | ||
국내 스포츠인맥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두 대학 출신 스포츠인들은 고연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연세대 74학번으로 지난해까지 16년간 모교 농구부 감독으로 재직했던 최희암 감독(울산 모비스)은 “1년 팀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연고전에 맞춰져 있고, 신인 스카우트에도 연고전을 염두에 둔다”며 “연고전이 다가오면 감독들은 압박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양교 정기전에 임하는 양팀 운동부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지난해 정기전에서 고려대는 3승1무1패로 압승을 거뒀다. 정기전 뒤 곧바로 축하 리셉션을 열어 김병관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 승리한 야구·축구·럭비부에 각각 3천만원씩, 총학생회와 응원단에 1천만원씩 모두 1억2천만원의 거액 격려금을 직접 지급한 것만 봐도 그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연대 최희암 | ||
이러한 양교의 분위기 탓에 선수들의 부담감은 상상 이상이다. 고려대 90학번인 이임생(부산 아이콘스)은 지난 1994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소집훈련 중 고연전에 출전하기 위해 대표팀을 무단이탈했다가 무기한 자격정지의 처벌을 받은 적도 있다.
연대 출신인 이상민(전주 KCC)은 “경기도 힘들지만, 신입생 때는 연세찬가 맥주찬가 등 낯선(?) 노래 40곡을 외우는 것도 고역”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연고전 기간에 이동하거나 응원하는 중에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 보면 자기 최면에 빠져드는 느낌”이라며 “승리하고 학교로 돌아갈 경우 이화여대 앞에서부터 응원단의 목말을 타고 개선장군처럼 행진하는데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렸다.
고대 출신 주희정(삼성 썬더스)은 “승리하면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야구장으로 이동해 함께 야구부를 응원하며 맘껏 승리감을 맛볼 수 있지만 질 경우 소리 없이 사라져야 한다”며 “지금도 팀 내에서 장훈이형(서장훈, 연대 출신) 주도로 양교 출신 선수들끼리 고연전 승패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고려대 89학번인 이상훈 선수(LG 트윈스)는 재학 4년간 4번 모두 고연전에 출전했다. 성적은 2승2패. “이길 때와 질 때의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에 다른 경기는 다 져도 고연전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게 선수들의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 연대 이상민(왼쪽), 고대 주희정 | ||
지난해 차두리가 분데스리가로 진출할 때에는 고려대가 이적동의서를 내주지 않아 애를 태웠다. 그 원인도 사실 고연전에 있었다. 차두리가 분데스리가와 계약하면 고연전 출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 또 고려대 축구부 조민국 감독은 고연전을 앞두고, 청소년대표팀에 차출된 최성국을 데려오기 위해 직접 파주 NFC를 찾아 당시 박항서 감독에게 읍소작전을 펴기도 했다.
한편 고연전 막후에서는 운동선수들만의 별도의 정기전도 치러진다. 이른바 ‘나이트게임’. 술자리에서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이 ‘나이트 고연전’과 관련해서는 프로야구 조계현의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 조계현은 연세대 재학시절 신입생 대표로 고려대 신입생 대표와 술 실력을 겨뤘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쉬지 않고 마시는 것이 룰. 조계현이 4병째 연속해서 들이켰고, 이에 질세라 고대 신입생도 거푸 병을 비웠다. 결국 고대 신입생이 4병째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피를 토했고, 승부(?)는 거기서 판가름났다고 한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