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묶어놓고 금리인상 타진할 듯
가계부채·디플레이션·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기준금리를 결정할 변수가 많아 한국은행이 어떤 통화정책을 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요신문 DB
가계부채만 놓고 보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농후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주택매매거래량은 100만 8000건으로 같은 기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설 경기가 한창 좋던 2014년보다도 22.5% 급증한 수준이다. 빚을 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한국은행의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집 마련에 나선 것이다.
당연히 가계부채도 급증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0월 중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26조 9345억 원 불어났다. 역대 1~10월 주택담보대출 순증 규모로는 가장 많다.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487조 5378억 원. 대출금리가 1%만 올라도 연간 4조 8753억 원의 추가 이자가 발생한다. 한 달에 4062억 원꼴이다. 대출금리가 2% 오르면 위험 가구는 10.3%에서 12.7%로, 3% 오르면 14%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대출금리가 3% 오르면 하우스푸어는 112만 가구에서 152만 가구로 40만 가구나 불어난다.
이 같은 주택담보대출 증가는 곧바로 통화정책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가계부채 부담을 낮추고 금융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금리를 인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에 그치는 등 경기 하방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며,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 하단인 2.0%에도 한참 모자란다.
물가상승률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 점도 기준금리 인하 압력으로 작용한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이유는 국내 경기부진과 원유·곡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 탓이다. 2014년 2분기 배럴당 100달러(서부텍사스산 중질유) 안팎이던 국제유가는 같은 해 4분기 급락한 뒤, 지난해 내내 40달러 대에서 움직였다. 수입물가 하락은 생산비용을 낮춰 국내 경기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국내외 소비 부진으로 경기 활성화로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국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도했으나, 수요 부진을 극복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해도 저물가는 이어질 예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며, 국제원자재 가격은 오름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물가가 낮았던 기저효과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소폭 상승할 수는 있으나, 저물가 흐름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나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더욱 늘려 실물 경기 회복을 지원해야 할 필요가 커진 셈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결정 때마다 발표하는 ‘통화정책방향’에서 지난해 12번 모두 ‘성장세 회복’을 앞서 기술했다. ‘디플레파이터’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와 디플레이션 우려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키우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들 변수를 압도한다.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미국과 시장금리가 벌어지면 외국인 자금이 유출,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지난 12월 기준금리를 올린 미 연준은 연내 추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상반기 중 추가 인상과 연내 2~4회 인상을 점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양국의 금리차는 줄어, 자본유출이 심화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의 국고채(5년물) 금리는 1.945%로, 미 재무부증권(5년물) 금리 1.64%와 금리차는 0.305%에 불과했다. 두 상품의 금리차는 2013년 11월 1.867%, 2014년 11월 0.845%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곧바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미 간 금리 역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미국이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선다면 대응할 수밖에 없다. 또 기준금리를 섣불리 내렸다간 가계대출이 추가로 불어날 수도 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과 일정 시차를 두고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진 삼성선물 연구원 역시 “실물경제에 금리 인하가 미치는 영향이 불확실한 탓에 금리 인하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올해 한은의 통화정책은 금융안정에 맞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의 정책에 의존하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올해부터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을 시행키로 하면서 가계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심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정책 공조를 감안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1.5%의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라 추가 인하 여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정부, 감독 당국 등과 긴밀히 협조해 가계부채 문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지 않도록 유동성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14일 열리는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한국은행의 정책기조를 살펴볼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당장 1월 금통위에서는 동결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탓이다. 다만 이 총재의 발언 등 시장의 흐름을 유도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메시지에 이목이 쏠린다. 기준금리를 올리는 시점은 이르면 오는 4월 총선 이후, 늦어도 하반기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실제 금리가 오르는 시점을 경기회복이 기대되는 내년에 가시화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