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유적 등록 늦어 재개발 직격탄에…
2009년 미사보금자리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개발의 바람이 결국 179년 역사의 구산성당 문턱까지 불어왔다.
하남시 망월동에 소재한 구산성당의 입구를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주변이 다 공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공사가 끝난 아파트단지가 있는가하면 건물을 쌓아올리는 데 한창인 곳도 많았다. 구산성당 팻말이 붙어 있는 좁은 뒷문 앞에는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예전에는 한식당, 수산물센터 등이 즐비해 있었다지만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갈아엎은 듯한 흙밭을 지나니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가 달린 건물이 보였다. 2009년 미사보금자리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택지개발지구 내 모든 건물들이 철거됐고 개발의 바람이 결국 성당 문턱까지 불어왔다.
구산성당 관계자는 “2009년부터 신자들이 다 함께 철거 반대를 했었지만 아직도 철거 위기에 처해있다”며 “그래도 아직 어떤 결정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존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성당 안은 시끄럽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바깥세상과는 딴판이었다. 넓은 뜰에 200여㎡ 상당의 성당, 사제관, 현대식 주택 등이 펼쳐져 있었다. 200여 년간 구산에 복음을 전해 온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구산성당의 ‘구산’은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뱃길의 길목을 뜻하는 지명에서 나온 것이다. 구산은 천주교 성인으로 시성된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해 동생 등 9명의 순교자들의 출생지로 일찍부터 천주교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구산성당은 본래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생가 터였다. 이곳에 179년 전에 처음 성당이 지어졌으며 지금의 성당 건물은 지난 1979년에 지어진 것이다. 김 안토니오 성인은 천주교 박해가 절정에 달했던 1800년대 당시 구산 토박이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당시 엄격한 유교를 실천하던 양반집 자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산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례를 받는 파격 행보를 걷는다. 김 성인은 세례를 받은 후에도 가족은 물론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믿을 수 있도록 선교 활동을 벌이다 결국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 성인이 교수형을 당하는 등 수많은 천주교 교인들이 세상을 떠난 당시의 사건을 역사는 기해박해라고 적어 두고 있다. 기해박해는 신유박해에 이은 제2차 천주교 박해사건이다.
한편 LH 관계자는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예외 없이 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주변 절과 교회는 이미 철거를 했기 때문에 구산성당만 예외로 봐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존치는 어렵고 인근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복원을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LH와 수원교구는 현재 위치의 구산성당을 허물고 다른 곳에 다시 짓는 재공급을 위한 가격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비록 지금의 성당 건물은 1979년에 지어진 것이지만 이곳은 이미 179년 전부터 성당이던 곳이다. 게다가 김 성인의 생가에 지은 성당이라 천주교에선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유적지 보존 차원에서 재개발을 진행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로 구산성당의 인근에 위치한 구산성지는 재개발되지 않고 보존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구산성지는 김 성인의 묘지가 안치돼 있는 곳으로 지금도 순교자들을 기리고 순례하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구산성지도 구산성당과 마찬가지로 재개발택지 안에 포함돼 있지만 예외적으로 보존이 결정됐다. 구산성지는 이미 하남시 향토유적 4호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구산성당 역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면 재개발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구산성당은 이미 재개발택지로 지정된 이후에 향토유적으로 등록하려 한 탓에 지정이 무산됐다. 성당이 향토유적으로 등록되려면 해당 부지가 종교부지여야만 한다. 그런데 향토유적 등록을 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성당 부지는 도시지원시설로 용도가 변경돼 있었다. 재개발택지로 지정되면서 해당 부지의 용도가 도시지원시설이 된 것.
하남시 관계자는 “조금 더 빨리 향토유적 신청을 못한 부분이 매우 아쉽다”며 “구산성당 존치 요청이 많았던 터라 문화재청을 통해 혹시 땅에 문화재가 묻혀있지 않은지 매장문화 조사까지 벌였지만 발견된 것이 없어 결국 재개발 추진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산성지는 재개발사업이 결정되기 전인 2001년 하남시 향토유적 4호로 신청해 등재가 가능했다.
LH와 하남시 등에 따르면 구산성당 자리에는 도시형공장이 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를 위해선 먼저 성당 부지가 매각돼야 하고 이후 토지개발계획이 구체화돼 매수가 진행돼야 한다. 그렇지만 해당 부지는 7년째 답보상태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