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상장’ 전 주가 올리기 작업 한창
▲ 지난 1월23일 ‘미래와 경제 연구모임’ 창립 발기인 총회에 참석한 고건 전 총리. 고 전 총리의 지지그룹인 ‘한미준’이나 ‘미경연’ 은 신당 창당에 앞선 ‘애드벌룬’이라는 평이 일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먼저 그는 지난 1월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에 대한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해 정치권의 시선을 바짝 끌어당겼다. 뒤이어 고 전 총리 지지그룹인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 창립 대회가 개최됐고, 또 그 사흘 뒤에는 고 전 총리의 지인들이 총출동해 만든 조직인 ‘미래와 경제 연구모임’(미경연)의 창립 발기인 총회도 열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고 전 총리가 신당 창당과 기존 정당 입당 사이에서 고민하다 신당 창당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미준’이나 ‘미경연’은 본격적인 신당 창당에 앞선 일종의 ‘모델하우스’라는 비유도 나온다. 고 전 총리의 정치적 행보를 신당 창당의 관점에서 풀어보았다.
2006년 1월14일 저녁. 서울 명륜동 J레스토랑. 고건 전 총리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예의 그 ‘호프 모임’을 열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화제는 자연스레 고 전 총리의 정치적 장래에 모아졌다. 한 지지자가 충심 어린 고언을 던졌다.
“총리님,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는 지역주의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쌓은 경제적 업적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역주의만큼은 그 시대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총리께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손을 잡아 동서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두 분이 손을 잡으십시오.”
그런데 지지자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고 전 총리는 대뜸 “박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잡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고 전 총리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고 전 총리는 박 대표가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면 언제든 함께할 의사가 있음을 처음 밝힌 것 아닌가. 이는 정·부통령제로 개헌을 할 경우 러닝메이트로 박 대표와 손을 잡든지, 아니면 향후 정계개편 구도에서 박 대표와 연대를 할 수도 있다는 고 전 총리의 속내라고 볼 수 있다. 평소 심중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고 전 총리가 향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살짝 드러낸 것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박 대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고 전 총리는 뒤 이어 자신이 내무부 새마을 과장에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영’을 받아 새마을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일화를 지지자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옛 시절을 회상하면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 딸인 박근혜 대표에 대한 남다른 인연을 강조했다고 한다.
사실 고 전 총리로서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 ‘무혈입성’해 대권도전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박 대표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고 전 총리의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고 전 총리의 그러한 ‘속내’를 엿보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에게 ‘충고’를 한 것일 수도 있다.
한 대표는 지난해 말 “아무리 쌀이 남아돌아도 같이 밥을 지어먹어야 우리 식구지. 다 차려놓은 밥만 먹겠다고 하면 우리 식구가 아니다. 고 전 총리도 스스로 농사지어서 식량을 마련하는 게 대통령 되기가 빠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고 전 총리의 소극적 정치적 행보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사실 고 전 총리로서는 정치권에 이렇다할 조직이 없기 때문에 내부 경선을 치르도록 돼 있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으로의 입당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카드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만약 입당하더라도 여야의 막강한 대권 주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고 전 총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과 함께 하는 3자 연대나 신당 창당 정도다. 그런데 3자 연대는 민주당과 호남 지지 구도가 겹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신당 창당은 고 전 총리가 ‘고육지책’으로 선택해야 하는 카드로도 볼 수 있다.
▲ 박근혜 대표. | ||
사실 고 전 총리는 그동안 구체적인 정치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해왔다. 그런데 지난 1월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례적으로 신당 창당 가능성을 내비쳐 정치권의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등의 영입 제의 수락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국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판단할 예정이며 새 당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던 것.
하지만 신당 창당도 쉽지 않다. 여야의 다른 대권주자들은 현역 의원들의 지지와 전국적인 조직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 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에 비하면 고 전 총리는 빈털터리에 가깝다. 원내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금이나 전국 조직도 없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모델하우스론’이다. 고 전 총리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 가능성을 내비치고 나흘 뒤 그의 지지그룹인 ‘한미준’이 창립대회를 가졌다. ‘한미준’ 창립 대회 사흘 뒤에는 고 전 총리의 자문그룹인 ‘미래와 경제 연구모임’(미경연)의 발기인 대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한미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 전 총리측과 예전부터 우리 모임 창립에 대해 조율을 해왔다. 한미준은 정치조직으로, 미경연은 경제연구를 중심으로 한 정책조직이나 싱크탱크로 만들 계획이었다. 올해 초 고 전 총리측에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창당을 추진하라고까지 얘기했다. 여론 조성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 3, 4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고 전 총리에게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한미준’이 지방선거를 거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지그룹을 모두 모아 신당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인사는 “고 전 총리는 애초 한미준 창립대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가 행사 사흘 전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불참을 통보해왔다. 그 전에는 ‘고건 대통령 만들기’ 플래카드를 내건다고 해도 좋다고 했다가 갑자기 입장이 바뀐 것이다. 아마 현 시점에서 정치적으로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날 대회에 고 전 총리의 맏형인 고석윤 변호사가 참석해 고 전 총리가 우리와 완전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석윤 변호사는 “한미준과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초청장이 와서 참석했다. 달리 할 말이 없다”고만 밝혔다.
‘한미준’의 이 관계자는 또한 “거듭 밝히지만 고 전 총리로서는 현재 신당을 만들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한미준)를 통해 신당을 만들게 한 뒤 이것이 성공하면 고 전 총리도 합류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본 집을 짓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먼저 짓게 한 뒤 그것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본격적인 새 집 짓기에 나선다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미경연’도 이런 관점에서 고 전 총리가 본격적인 대권 도전에 나서기 전까지 정책 개발과 새로운 인사 영입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한미준’의 ‘주장’에 대해 “아직 ‘상장’(출마선언)조차 하지 않은 상황인데 신당 창당 시기까지 못박을 수 있겠느냐”면서 ‘한미준’과의 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정했다. 측근 김덕봉 전 총리 공보수석도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는 단계일 뿐”이라며 너무 앞서나가는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이 고 전 총리의 생각이다. 결국 지방선거 후 본격 추진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고 전 총리 중심으로 여야와 시민단체까지 포괄하는 ‘헤쳐모여’식 신당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한미준’과 ‘미경연’ 그리고 강운태 전 의원이 조직중인 ‘파퍼스포럼’(PARFUS FORUM) 등은 신당 창당이라는 새 집으로 가는 과정에 만들어진 일종의 ‘모델하우스’인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고 전 총리로서는 아직 대권 도전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행보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의 관망에서 벗어나 보다 명쾌한 행보를 보여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