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나라 물려주고 싶어 가입했어요”
홍승희 씨(맨왼쪽)를 비롯한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친구들이 1월 6일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여해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의 문구를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고성준 인턴기자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주를 이뤘던 수요집회에 머리가 희끗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평화어머니회에서 활동하는 윤수애 씨(여·64)였다. 윤 씨는 “아들을 둔 평범한 엄마지만 본인의 아들과 자식들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에 SNS를 통해 평화어머니회에 가입하게 됐다”며 “오늘은 수요집회에 와서 피켓시위를 하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미군대사관 앞에서 1인 반전시위를 한다”고 말했다. 평화어머니회는 이화여대민주동우회와 함께 ‘대한민국할머니연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수요집회에 참여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해서 일본을 용서하자’는 엄마부대를 향해 ‘어멈, 아범아 알바 뛰다 혈압 터질라, 어여 집에 드루와’라고 적힌 피켓으로 시위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동안 엄마부대와 어버이연합 등이 여당으로부터 소액의 활동비를 받고 움직인다는 뒷말이 무성했던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평화어머니회는 한의사인 고은광순 씨(여·61)가 사회 활동을 하며 지난해 5월 만든 진보적 성향의 단체이다. 이들은 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반전시위를 하며 몸집이 커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이화여대민주동우회 회원인 터라 자연스레 연합하게 되면서 대한민국할머니연합이 생겨났다. 4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해 엄밀히 말하면 대한민국엄마연합이 맞을 듯싶다. 평화어머니회를 만들고 혼자 활동을 시작한 고은 씨는 “평화어머니회는 반전시위를 하며 생겨난 것”이라며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없애고 화목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란 취지에서 매주 화·목요일에 시위를 하고 있다. SNS를 통해 참여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한민국할머니연합은 이름처럼 여성들로만 구성돼 있다. 배외숙 이화여대민주동우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이화여대민주동우회는 지난 1987년에 생겨 그동안 사회민주화에 앞장섰고 피해를 받는 약자들의 편에 서왔다. 평화어머니회는 아들들을 군대 보내는 엄마들이 의기투합해 특정한 조직을 갖추기보다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며 “특정 단체에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의 상처를 보듬기는커녕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 분개했고 수요집회에도 나섰다”고 말했다.
할머니연합이 있다면 효녀연합도 있다. 효녀연합은 20대 여성들로 이뤄진 모임이다. 효녀연합을 만든 홍승희 씨(여·27)를 수요집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수요집회가 끝난 다음에 진행할 살풀이 퍼포먼스를 위해 수요집회 내내 한복차림으로 추위를 버티고 있었다.
홍승희 씨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앞에서 시위를 해 유명해졌다.
효녀연합은 홍 씨를 포함한 7명의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친구들이 만든 모임이다. 홍 씨와 친구들은 수요집회가 끝나면 이날처럼 짧은 공연을 한다. 홍 씨는 지난 1월 6일 있었던 수요집회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 코앞에서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서 있어 유명해졌다. 홍 씨는 “손 팻말에 적은 것은 평소에도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며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은 저희를 보면 ‘너희들이 일제시대를 알아, 6·25를 알아?’와 같은 말만 하셔서 말로 해서는 얘기가 안 통할 것 같아 팻말을 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밝히기 위해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기 위해 퍼포먼스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해 왔다.
효녀연합은 3차 민중총궐기 당시에도 소요문화제에서 이들은 살풀이 퍼포먼스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난 9일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무효선언 국민대회’에서 시민들에게 꽃을 나눠주기도 했다.
홍 씨는 그동안 사회에 목소리를 냈지만 소녀상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효녀연합을 만들게 된 계기라고 전했다. 그는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친구들과 처음에 소녀부대로 할까 생각도 했지만 다 같이 효녀니까 효녀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정했다. 처음부터 효녀들로만 구성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여성분들이 주로 가입 신청을 하고 계시다”며 “페이스북에서 주로 함께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와 각종 집회, 시위에서 신나게 참여해 세상을 바꾸자고 모집을 받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단체들처럼 조직화할 계획은 없고 SNS를 통해 연락해서 불시에 모여 플래시몹을 이용해 즉흥적인 예술 행위를 할 생각이다. 아직 어떤 계획도 없다”며 “예전에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것은 맞지만 이미 없어진 당인데 효녀연합이 정치활동의 연장이라고 말하시는 부분은 난감하다. 지금 하는 활동을 새로운 형태의 놀이 문화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1만 3000여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효녀연합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효녀연합에 이어 효자연합, 누나연합, 아빠연합 등 비슷한 시민네트워크가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SNS를 통해 뜻이 맞는 소수의 여성들이 모여 일정한 활동을 하고 이를 본 시민들이 합세해 연합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연합을 만들고 있다. 효녀연합에 이어 효자연합도 생겨난 것. 지난 7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효자연합’ 페이지를 개설한 광주중앙고 3학년 이한수 군(19)은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운동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소녀상 앞에서 일장기를 찢는 것보다는 풍물 연주나 피케팅과 같은 퍼포먼스로 젊은 층의 목소리를 내려고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