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돌렸다” VS “사기쳤다” 그들만의 보물전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인 정 아무개 씨가 체포되는 모습. 연합뉴스
# 정 씨의 주장 “문현동 지하에는 보물창고가 있다”
1998년부터 부산 남구 문현동 일대 지하에 보물창고가 있다는 소문을 추적해온 다큐멘터리 작가 정충제 씨는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3일 조선총독부 명의로 이전된 문현동 1219-1번지(당시 한진중공업, 현재 거창산업 부지)를 수상히 여겨 2002년 3월 2일 발굴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지하 16m 지점을 뚫자 지하 수평 인공 굴이 발견됐다. 다이버 전문가를 통해 수중 촬영해 본 결과 30m에 이르는 지하 굴에서 5단 높이의 황토색 마대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정 씨는 황토색 마대 안에 금괴가 담겨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조수 김 아무개 씨(63)를 통해 추가 투자자 모집에 나선다. 투자자들과 발굴 관계자들은 같은 해 4월 29일 포세이돈 살베지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금괴 발굴 시 투자금 비율에 따른 해당 지분을 나눠 갖기로 서약한다.
하지만 5월 27일 스쿠버 전문가가 지하 굴을 탐사해본 결과, 황토색 마대 안에는 금괴가 아닌 돌과 흙 등이 담겨 있음이 증명됐다. 이에 투자자들은 정 씨가 찾아낸 수평 인공 굴은 4년 전인 1998년에 정충제 씨가 보물탐사꾼 박수웅 씨와 함께 팠다가 실패한 굴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금괴 발굴의 부푼 꿈을 안았던 투자자들은 정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으며 3년여의 법정다툼 끝에 44개월 징역형 선고를 이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 씨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곳은 박 씨와 함께 팠던 굴이 아닌 실제로 일제 강점기 어뢰공장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한주소금’이라고 적힌 허위 마대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투자자들을 와해시킨 후 대량의 금괴를 몰래 빼돌렸다는 것. 우선 1998년에 박수웅 씨와 함께 판 굴은 자신이 발굴한 굴보다 지하 2m 더 낮은 위치에 있으며 이미 매립돼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또 지하에 있던 마대에는 ‘한주소금’이나 ‘오성식’이라는 한글이 아닌 일본 강점기 때 군사 물품을 납품했던 일본 회사 ‘이등 충(伊藤 忠)’이 적혀 있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또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인 정충제 씨의 친동생 정 아무개 씨 역시 인질극을 벌이기 직전 형인 정충제 씨에게 편지를 한 통 남겼다. 동생 정 씨는 정충제 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뒤 발굴 작업에 투입됐다. 동생 정 씨는 당시 투자자들이 형을 사기범으로 몰아 구속시킨 점이 미안해 자신을 발굴 작업에 참여시킨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본인 역시 그들에게 속았다는 게 동생 정 씨의 주장이다. 당시 형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투자자들과 함께 발굴 작업에 참여한 게 미안해 동생 정 씨는 정충제 씨와 14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다고 하는데 인질극 직전에 형에게 그동안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에서 동생 정 씨는 발굴 작업 참여 당시 투자자 핵심인물로부터 “거듭 확인해 본 결과 지하에는 금과 은이 굉장히 많더라” “금의 양이 200조에서 400조 원 규모다” 등의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매일 아침 8시경 작업을 위해 현장에 출근하면 항상 잠수복이 젖어있어 수상히 여겼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는 정 씨에게 핵심 투자자들은 “밤에 작업할 게 있었다”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밤마다 몰래 금을 빼돌렸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투자자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이 당시 신용불량자였는데 지금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부자가 된 점과 그의 지인으로부터 “금을 몰래 빼놨으니 팔아달라는 부탁을 요청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점 등도 이미 금괴를 몰래 빼돌렸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는 투자자 핵심인물이 쓰레기수거차량 3대 분량의 금을 도굴한 후 일부는 소유하고 나머지는 제주도나 군산 앞바다의 침몰선(또는 양식장)에 숨겨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형제는 아직도 문현동 지하 어뢰공장에 상당수의 금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자자 핵심인물이 일곱 달 안에 모두 빼돌리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이 추정하는 금괴의 양은 200~400t이며, 문현동 1219-1번지를 다시 발굴하면 대량의 금괴와 국보급 보물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투자자들이 금괴를 빼간 시점을 2002년 5월부터 8월까지, 10월부터 12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정충제 씨는 “당시 해당 부지를 시가의 3배에 매입한 한 투자자는 발굴 이후 100억 원 상당의 빌딩을 매입하고 서울 서초구의 110평 규모 아파트로 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충제 씨가 언급한 투자자 당사자는 “사기범이 이번에는 황당무계한 말로 투자자들을 도굴범으로 몰고 있다”고 항변했다.
# 투자자들의 주장 “부경대학교 지하에 보물창고가 있다”
정충제 씨가 도굴범이라 지목한 투자자 핵심인물 3인은 정 씨가 발굴한 위치가 아닌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지하에 어뢰공장 통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지난 2002년 10월 26일 김성욱 지질학박사(지아이지반정보연구소 대표이사)의 도움으로 부산시 남구 일대의 지하를 물리 탐사해 본 결과,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인근 3곳의 해발 0m 지점에서 공기저항대가 실측됐다고 한다. 또한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내 5개 지점에서 어뢰공장 통로로 추정되는 페인트칠이 된 돌과 시멘트, 금속구슬이 박힌 콜타르, 폐광유 등이 나왔다. 해당 지점에서 9㎛의 초고순도 점토가 다량 출토된 것도 어뢰공장 통로로 추정되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이 점토는 어뢰공장에서 화약을 만들기 위해 쓰였거나 지하 통로의 지하수 새는 것을 막기 위한 덧칠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의 설명이다.
현재 투자자 핵심인물 3인은 부경대학교의 비협조로 발굴 작업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확신하고 있는 지점은 용당캠퍼스 내 종합복지관과 교양관 건물 사이에 있는 언덕의 오솔길 중간이다.
이들은 부경대학교 인근뿐만 아니라 부산시 남구 전역에 걸쳐 지하 어뢰공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어뢰공장에 다량의 금괴가 보관 중이라는 가정은 해방되기 3달 전에 극비 지령된 ‘긴노 유리’ 작전이 미 국방성에 보관 중인 문서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일부 투자자들이 보물창고가 있다고 주장하며 작성한 부산시 남구 일대 지하 어뢰공장의 추정 내부도.
이들은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동 지하 어뢰공장 추정 내부도’까지 이미 작성한 놓은 상태다. 일본대본영 미하라 도시오 중좌로부터 일본인에게 양자로 들어간 고 최종욱(야마시로 마사노부) 씨가 박수웅 씨에게 건넨 문현동 보물지도와 일제 강점기 때 병참기지사령부에서 근무했던 군인으로부터 확보한 지도 등 총 5개 지도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이 내부도를 살펴보면 어뢰공장 내부에는 중국에서 약탈한 금, 은, 보석, 수은, 비취불상, 금불상 36좌뿐만 아니라 탄약고, 공작기계고, 수리고, 정밀기계고, 지하 철도 등이 표시돼 있다. 어뢰공장 내부는 모두 지하 통로로 연결된 5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정 씨가 발굴했다고 주장하는 곳은 1지역의 해안에 맞닿는 부분이며, 이 지역에 표시된 금봉의 양은 58t이다.
투자자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은 “부산 남구 일대의 지하에 대규모 어뢰공장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정충제 씨가 발굴한 통로는 가짜였다”면서 “다큐멘터리 작가면 사실을 바탕으로 근거 있는 주장을 해야 하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말로 10년 넘도록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2년 3월 정충제 씨가 발굴한 굴을 촬영한 동영상 캡처. 황토색 마대 안에는 금괴가 아닌 돌과 흙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정충제 씨가 발굴한 굴을 촬영한 동영상 2편을 확보해 확인해본 결과 지하 통로에는 황토색 마대가 5층 구조로 쌓여 있었으며 마대에는 ‘오성식’, ‘농협 포대’ 등의 한글이 적혀 있었다. 투자자들은 “사비를 들여 정충제 씨가 발굴한 굴을 다시 발굴해보자고 제안을 해도 정 씨는 피하기만 한다”며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말로 이제는 전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문재인 이름 언급 까닭 “참여정부 때 금괴 도굴” 음모론 기막혀 문재인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인 정 씨가 지난 2014년 8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한 모습. 그렇다면 정 씨는 왜 문재인 대표가 금괴를 빼돌렸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정 씨의 친형인 정충제 씨는 “문재인 대표 측이 금괴를 몰래 빼돌렸을 정황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문현동 1219-1번지 발굴을 몇 년 앞두고 준비 중인 시점에서 당시 변호사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몇 차례 만난점을 비롯해 문현동 금괴 발굴과 관련된 검찰 내사 과정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표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정 씨 형제의 주장일 뿐이다. 반면 정 씨 형제가 몰래 금괴를 도굴해 갔다고 주장하는 대상으로 이들 형제와는 정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는 투자자 핵심인물은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정 씨 형제가 수년 동안 나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몰래 금괴를 문현동에서 발굴해서 가져갔다고 주장해왔지만 전혀 사실 무근인 터라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라며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문재인 대표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려고 그러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혁] |
소문만 무성한 ‘문현동 보물’ 60여년 전부터 ‘삽질 계속된다’ 1992년 10월 정충제 씨는 지리산 암자에서 수행 생활을 하던 최 아무개 도사의 소개로 박 씨를 만나게 된다. 마침 투자자를 찾고 있던 박 씨에게 1억 원을 투자해 보물을 찾게 될 시 10%의 지분을 받기로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1월 15일 부로 도굴작업은 중단되고 만다. 매장물 발굴 승인기간이 만료돼 부산 남구청으로부터 원상 복구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 씨는 박 씨가 발굴한 지점에서 20여m 떨어진 지점(문현동 1219-1번지)에서 별도의 발굴 작업에 착수하나 시추된 지하 통로로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혐의를 인정받아 44개월간 징역을 살게 된다. 정 씨의 투자자로 나선 핵심인물 3인은 지난 2002년부터 부산시 남구 일대에서 보물 탐사를 하고 있다.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지하에 공기저항대가 있는 점을 관측함으로써 지하에 대규모 금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뢰공장일 것으로 확신하나, 부경대학교와의 마찰로 10여 년이 지나도록 탐사 작업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