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녀인 줄 알았는데… 업소녀의 ‘스펙위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18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성매매 고객 명단이 담긴 엑셀 파일을 입수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13일 여론기획업체 ‘라이언앤폭스’ 김웅 대표가 ‘강남 성매매 조직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성한 고객 명단’이라며 이를 먼저 공개했다. 김 대표는 <일요신문>과 전화 통화에서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누가 줬는지 말할 수 없다”며 “공익을 위해 리스트 공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강남 성매매 리스트’에는 모두 6만 6385개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여기서 언급된 성매매는 대부분 조건녀라 불리는 성매매 여성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채팅을 통해 성매수자를 만나는 방식이다.
그런데 전체가 하나의 리스트는 아니다. ‘강남 성매매 리스트’에는 각기 다른 양식의 성매매 리스트 200여 개를 모아 놓은 것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성매수자가 모두 합쳐서 6만 6000여 명이다. 그렇다고 여기 등장하는 6만 6000여 명이 모두 성매수자라고 볼 순 없다. 리스트엔 성매수자와 조건녀의 만남이 불발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양식의 리스트가 200여 개인 까닭은 각각의 리스트마다 작성자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리스트의 양식에 따라 담겨 있는 내용도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성매수자의 신상이 담긴 정보와 채팅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매수자를 만난 채팅 사이트, 채팅 아이디, 휴대폰 번호, 화대, 개인 신상’ 등이 200여 개의 리스트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이다. 또한 대부분의 리스트는 성매매 브로커가 작성한 것으로 보였다.
날짜 별로 정리된 리스트들도 있었다. 짧으면 3개월에서 길면 6개월 단위로 정리돼 있었는데 대부분 연도는 표기돼 있지 않았다. 연도까지 표기된 리스트의 경우 대부분 2011년이었다.
어떤 리스트에선 만남 및 성매매 장소와 만남 지속 시간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심지어 ‘아무개 확인’ ‘아무개 못 봄’으로 정리된 문건도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아무개는 성매매 브로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확인’과 ‘못 봄’ 등의 단어는 성매매가 예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브로커가 직접 확인한 여부로 짐작된다. 이는 성매매 여성이 화대를 받지 못하거나 성매수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브로커가 숨어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0여 개의 리스트가 각각의 양식은 달라도 주된 내용은 성매수자의 개인정보였다. 특히 남성의 휴대폰 번호를 중심으로 차량과 차량 번호, 직업 남성과 연결된 성매매 여성의 이름, 만나기로 한 장소와 조건 내용 및 가격이 적혀있었다. 성매수자들의 이름은 대부분 기록돼 있지 않았지만 일부 리스트에는 이름과 나이 등도 적혀 있었다. 게다가 어떤 리스트에선 성매매 브로커들이 성매수자의 전화번호를 ‘구글링’해서 직업과 직장까지 알아낸 뒤 적어 놓은 정황도 포착됐다. 해당 리스트에 ‘구글 자료 B 건설 회사 근무’ 혹은 ‘구글 자료 없음’ 등의 내용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리스트에 등장하는 성매수자들의 직업도 눈길을 끈다. 우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100여 명에 이르렀고 경찰도 포함돼있었다. 특히 경찰의 경우 ‘경찰’ ‘경찰 아님’ ‘경찰 의심’ 등으로 구분해서 기록해 놓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경찰의 존재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건을 공개한 라이언앤폭스 김웅 대표는 “성매매 리스트가 온라인에서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성매수자들의 차량 정보가 기록된 리스트도 있었다. 여기에는 에쿠스, 벤틀리, 제네시스 등 고가의 차량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간혹 차가 없는 성매수자는 ‘뚜벅이’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성매수자의 행동 특성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성매매 리스트도 있다. ‘술 두 시간 먹고 감’ ‘길 몰라서 늦음’ ‘업소인지 의심 많이 함’ 등 성매매 여성을 만난 뒤 성매수자가 보인 행동의 특성을 기록해 놓은 것. 그런가 하면 ‘상큼한 오빠’나 ‘인테리어 공사 너무 큼’ 등 성매수자의 분위기나 신체적 특징을 적어놓기도 했다. ‘인테리어’는 성기 확대술을 뜻하는 은어다.
성매매 리스트에는 은어와 약어가 많았는데 가령 피임도구를 사용했을 땐 ‘콘’,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엔 ‘노콘’이라고 칭했다. 또한 ‘장기’라 하여 장기 만남을 요구하는 고객들에겐 따로 메모를 덧붙였다. ‘영희M 미희M 선희C 사진이랑 달라서 C’ ‘인상 험하다 우리 쪽에서 C’ ‘간 보는 나쁜 아이 M 확률 없음’ 등의 메모도 눈길을 끈다. 여기 등장하는 영문 이니셜 C와 M의 의미를 유추해볼 때 ‘M’은 ‘만남’(Meet)을 뜻하고 ‘C’는 ‘만남 취소’(Cancel)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대는 1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에서 형성돼 있었는데 ‘긴 밤’을 보낼 경우엔 100만 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성매매 리스트에 등장하는 성매수자 가운데에는 브로커들이 블랙리스트로 기록해 놓은 이들도 있었다. 메모에 ‘블랙’이라는 표시가 돼 있는 성매수자들인데 우선 특이한 잠자리 요구사항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메모에선 ‘변태 소변 달라함’ ‘스타킹 페티쉬’ 등의 표현이 발견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인테리어’가 메모된 성매수자의 경우도 대부분 ‘블랙’으로 메모가 돼 있다.
또한 ‘사고’를 일으킨 성매수자들도 ‘블랙’으로 메모됐다. 한 윤락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란 성매매 이후 화대를 미리 정한 액수보다 적게 지불하거나 아예 지불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또한 성매매 여성이 폭행을 당한 경우에도 사고로 분류된다고 한다. 블랙으로 표기된 성매수자의 경우 ‘잡지 말 것’이라는 추가적 멘트가 붙는다. 이는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강남 성매매 리스트’는 대부분 조건만남 형태였다. 결국 이는 요즘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성매매의 주류가 채팅을 통한 조건만남임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조건만남은 조건녀라 불리는 성매매 여성이 개인적으로 성매수자를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번 성매매 리스트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성매매 브로커의 주도 하에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위 보도방이라 불리는 곳에 소속된 윤락 여성들이 조건만남에도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한 윤락업계 관계자는 “과거 보도방이 윤락업소에 윤락여성들을 보내는 일만 했다면 요즘에는 오피스텔을 활용한 불법 성매매나 조건만남 등에도 투입하고 있다”며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업소녀가 싫다며 조건만남을 시도하는 남성들이 많은데 결국은 그들도 업소녀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번에 공개된 성매매 리스트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
또한 성매수남과 채팅을 한 당사자는 해당 조건녀가 아닌 브로커 내지는 보도방 내근 직원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성매매 리스트에는 채팅 ‘내용을 요약해서 기록해 놓은 내용도 많은데 이는 브로커가 조건녀라 불리는 성매매 여성에게 성매수자를 만나러 가기 전에 간략하게 채팅 내용을 알려주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채팅 내용을 보면 대부분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을 일반인 여성인 척 속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한 나이와 숙지사항 등을 메모해 놓은 것. 결국 이는 성매매를 위해 만났을 때 말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성매매 리스트에 기록된 채팅 내용 요약 메모에 ‘여자 지혜로 알고 있음’ ‘여자 이름 지혜 공무원 준지 9급’ ‘25살 학생 유아교육학과 소개’ ‘대학원 가려다 돈 필요해’ 등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매수남들이 채팅을 통해 조건만남을 시도하는 까닭은 윤락여성이 아닌 일반인 여성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이번에 공개된 성매매 리스트는 대부분의 경우가 윤락여성임을 보여준다. 성매수자들도 어느 정도는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매매 리스트에는 ‘강남이라 하니 업체냐고 화냄’ ‘시간 많이 끌고 업소인지 의심 많이 함’ ‘논현동 쪽은 직업여성 많은 거 아니냐며 만나기 꺼려함’ 등의 메모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성매매 리스트가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문건을 공개한 ‘라이언앤폭스’의 김 대표는 “성매수자를 유인하기 위한 영업적인 목적도 있지만 성매수를 내세워 접근하는 인물들의 신상도 사전에 파악해 단속과 수사를 피하기 위해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런 성매매 리스트가 온라인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려줬다. 김 대표는 “이런 데이터베이스는 수익률과 신뢰도가 높은 경우 100만 원 정도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장부 왜 만드나 “취향 파악·경찰 구별 위해” 지난 2015년 일명 ‘1억 오피녀’가 화제가 됐을 당시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 글이 하나 있다. 오피녀를 관리했다는 전직 실장이 쓴 글인데 여기에서도 문제의 성매매 리스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해당 글에서 전직 실장은 “일부 성매매 업소들은 광고할 때 ‘저희 업소는 장부 작성이나 번호 저장 안 합니다’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100% 거짓말이며 꼭 장부를 작성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성매매 리스트 작성 이유에 대해 “첫 번째 이유는 손님 취향 파악하기 위해서고 두 번째 이유는 전화 건 사람이 손님인지 경찰인지 구별하기 위해서”라며 “일단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오피스텔에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면 경찰은 아니라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전화가 왔는데 손님인지 경찰인지 헷갈린다면 장부 엑셀을 검색해본다”고 밝혔다. [민] |
성매수자 취향을 저격하라 돈 필요한 유아교육과 휴학생 행세 강남 성매매 리스트를 살펴보면 조건만남을 위한 채팅에서 성매수자들이 좋아하는 조건녀의 ‘스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신체적 특징은 신장 165~167㎝ 사이, 체중은 47~48㎏ 정도였다. 조건녀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자주 활용하는 자기소개는 휴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었다. 특히 대학에서 ‘유아교육과’ ‘패션학과’ ‘미용학과’ 등을 전공하고 있거나 전공했다고 소개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래도 여성적인 성향이 강한 대학 전공을 통해 ‘여대생’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기 위함으로 보인다. 왜 조건만남에 나서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이는 업소 등에서 일하는 윤락여성이 아닌 일반인 여성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리스트에는 ‘공부하고 싶은데 학비가 비싸서 일한다고 함’ ‘네일아트 학원 다닌다고 함’ ‘반포 살고 고모 집에 거주한다 함’ 등의 메모가 적혀 있다. 대부분 ‘~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채팅을 한 사람과 조건만남에 나가는 조건녀가 동일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조건만남에 나가는 조건녀들이 브로커를 통해 리스트에 적힌 채팅 내용 메모를 전달 받고 나가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조건녀의 흡연 여부나 문신에 대한 메모도 있다. ‘흡연 안한다고 함’ ‘몸에 문신 있는 거 싫어함’ 등이 적혀 있는 것. 이는 브로커가 손님의 취향을 고려해 조건녀를 파견할 의도로 해석된다. [민] |
접선 핫플레이스 신논현역 A매장 앞에서 만나 B모텔로 간다 강남역도 성매수남과 조건녀가 접선하는 장소로 자주 언급됐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일요신문DB 그렇게 만난 뒤 성매매가 이뤄진 장소로는 신논현역 인근인 B 모텔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확인 결과 만남이 가장 자주 이뤄진 신논현역 A 매장 앞에서 B 모텔은 도보로 약 1분 거리였다. 결국 조건녀들이 짜여진 동선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성매수자들은 이런 조건만남이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브로커들이 숨어서 그 과정을 다 체크하고 있다. 결국 신논현역 A 매장 앞에서 만나 인근 B 모텔로 향하는 동선이 가장 많았다는 의미는 그곳이 브로커가 숨어서 그 과정을 몰래 지켜보기 좋은 포인트라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강남역 논현역 교대역 등이 자주 언급됐다. 심지어는 강남 소재의 한 대형 교회 앞에서 성매수자와 조건녀가 만나는 경우도 자주 눈에 띄었다. 교회 앞에서 만나 교회로 들어가는 대신 인근 모텔로 가는 동선이다. 한편 조건녀들이 강남을 떠나 비교적 먼 지역으로 출장을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천안 이동’ ‘차비 준다고 원주로 와달라함’ 등의 메모가 발견된 것. 이렇게 지방으로 가능 경우 화대는 서울 지역보다 2배에서 3배까지 높았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