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싸움에 ‘개미’ 등만 터질라
(주)동양이 법정관리 상태를 조기 졸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현 경영진과 인수를 노리는 유진기업·파인트리 간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고 있어 투자자의 피해가 우려된다. 일요신문 DB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는 “㈜동양이 미변제잔액까지 모두 변제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채무를 갚았다”고 밝혔다. 파산이 우려됐던 동양이 실질변제율 100%를 초과 달성한 것은 “대한민국 기업 회생 절차의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며 재계와 회사채 시장 등을 뒤흔들었던 ㈜동양이 법정관리에 돌입한 지 2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까닭은 보유 계열사 지분을 성공적으로 매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양은 동양매직 지분 100%, 동양파워 지분 19.99%, 동양시멘트 지분 54.96%를 모두 매각해 1조 2000억 원가량을 확보했다. 특히 동양매직과 동양시멘트는 시장평가액보다 높게 매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동양은 채무를 전부 변제하고도 5000억 원이라는 현금이 남아 현재 보유하고 있다. 이 현금은 새 주인을 끌어오는 데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동양이 하고 있는 레미콘·섬유사업도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한데 현금까지 5000억 원이 있으니 법정관리만 졸업하면 새 주인을 맞아들이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레미콘 부문 강자로 통하는 유진기업과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 일부 사모펀드가 ㈜동양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유진기업과 파인트리자산운용은 지난해부터 ㈜동양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엎치락뒤치락 최대주주 등극 싸움을 펼쳐가며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1일 현재 각각 8.86%(유진기업+유진투자증권), 9.15%를 보유하고 있다. 유진기업이나 파인트리나 지분 매입 목적을 “단순 투자”라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인수를 위한 지분 확보 경쟁’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최근 ㈜동양 인수전에 급제동이 걸렸다. 동양이 법원의 동의를 얻어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사옥 매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양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나라종금빌딩 매입을 추진한 바 있다. 비록 나라종금빌딩 매입은 무산됐지만 최근 서울 삼성동 삼성금융프라자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과 동양이 사옥 매입에 뜻을 같이 하는 이유는 ‘회사를 투기자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5000억 원의 현금을 노리고 ㈜동양을 인수한 후 현금을 동양의 발전과 관련 없는 곳에 사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옥 같은 부동산에 투입하겠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라며 “다만 이로 인해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주주들의 이익과 권리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동양은 또 선임 가능 이사 수를 16명에서 10명으로 줄여 사내이사 7명,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된 이사진을 새롭게 꾸렸다. 현 경영진이 임기 3년의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설사 새 주인이 들어온다 해도 이사회를 장악하기 힘들게 한 것이다. 더 이상 ‘우리 편’ 이사를 선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사회를 장악하려면 기존 이사진을 해임하기 위해 ‘우리 편’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데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이사해임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동양 경영진이 사옥 매입과 이사회 구성에 손을 댄 까닭은 경영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자산을 양도·처분하지 못하게 하고 이사회를 흔들지 못하게 한 것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동양이 새 주인을 맞아들이기보다 사원주주회사를 지향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법정관리에서 졸업하기 전, 새 주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쳐놓고 시간을 벌면서 임직원들이 차차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회사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지분만 매입하면 된다는 생각 같다”며 “3년 동안 전 임직원이 매달 조금씩 사 모으면 가능하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300여 명의 동양 임직원이 시가총액 6000억 원이 넘는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11일 동양의 ‘최대주주 변경’ 공시에 따르면 9.15% 지분으로 최대주주에 오른 파인트리의 보유 주식 수는 2178만 4794주다. 경영권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지분 30%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6000만 주가 넘는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300여 명의 직원이 3년 동안 확보해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동양의 현 경영진과 동양을 노리는 유진기업·파인트리 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면서 피해는 또 다시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000억 원에 이르는 현금을 부동산에 묶어두고 이해당사자 간 계산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동양의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2013년처럼 또 투자자들만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법정관리 조기졸업, 풍부한 유동성, M&A(인수·합병), 실적 개선 등 주가가 오를 수 있는 재료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이해당사자 간 싸움 탓에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 M&A 전문가는 “동양은 사옥 매입이 결정되고 계약이 이뤄지는 순간 투자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며 “풍부한 현금이 묶이면서 인수 후보들이 인수를 포기하고 지분을 털어낼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부에서는 현금을 활용하지 못한 채 새 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실질변제율 100%를 초과한 법정관리 조기졸업의 성과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동양, M&A 힘든까닭 대주주·기관 없어 지분 확보 ‘골머리’ ㈜동양에는 이렇다 할 대주주나 기관투자자가 없다. 전체 중 80%가 넘는 주주가 지분 1% 미만의 소액주주다. 공시 의무가 있는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는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진기업과 파인트리자산운용뿐이다. 매각을 기다리고 있는 동양레저 지분은 3.03%. 다시 말해 개인투자자들이 ㈜동양의 대부분 주주다. 일부에서는 삼표 등 동양을 노리는 기업들이 공시 의무가 없는 5%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삼표 관계자는 “㈜동양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회사 및 계열사 어디서도 동양 주식을 매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주주 지분을 블록딜(대량매매) 형태로 한꺼번에 인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양을 인수하려면 현실적으로 장내매수·공개매수 등의 방법밖에 없다. 동양 경영권을 확실하게 가지려면 산술적으로 50% 지분을 확보하면 된다. 그래야만 정관을 변경하고 이사회를 다시 꾸릴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하지만 50% 지분을 확보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장내매수·공개매수 형태여야 하는 까닭에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동양의 주가가 얼마나 치솟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동양을 관리하고 있는 법원 입장에서는 놔두자니 과열될 것이 뻔한 일을 방치하게 되고, 적극 개입하자니 기업가치와 주주권리를 훼손하는 일이 된다. 현재 법원은 “원칙적으로 회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법정관리 중인 회사의 결정은 결국 법원이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법정관리 조기졸업 후 ㈜동양의 운명이 결정된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