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한창 꽃소식이 만발한 봄날이겠네요. 이곳 에인트호벤에서도 한국처럼 봄꽃의 여운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지리한 겨울을 보내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달 정도를 더 보내면 네덜란드 후기리그도 막을 내리게 되겠죠. 정말 시간이 참으로 빠르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요즘 한국 기자분들한테 조금 삐쳤어요. 지난번 왼쪽 무릎 부상을 두고 계속해서 ‘꾀병 의혹’ 운운하며 미확인 보도를 하셨는데 그 기사를 쓴 분에게 꼭 묻고 싶어요. 직접 네덜란드에 오셔서 제가 뛰는 경기를 보셨는지를.
구단 관계자나 제 주변 사람을 통해 인터뷰한 걸 두고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상상해서 기사를 쓰는 건 글 쓴 분의 자유의사겠지만 그 기사를 통해 마음에 상처를 받을 당사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셨나요?
히딩크 감독 입장에선 물론 제가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기를 바라셨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이 팀 전력에 한두 군데의 구멍이 생긴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감독님이 보내주셨다고 해도 제가 힘들었을 거예요. 왼쪽 무릎에 물이 찬 상태에서 출전했더라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행여 지금까지도 그런 의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더 이상 오해하지 마시라고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선수는 말이죠. 자기가 뛰어야 하는 경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라면 몸이 망가지거나 부서져도 꼭 뜁니다. 물론 경기 후의 부상 악화가 걱정될 수도 있겠죠. 그래도 현장에 서면 통증도, 고통도 자취를 감추고 오직 뛰고 싶은 열망만이 존재하거든요. 이천수가 경기 전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란전을 뛴 걸 보면 잘 알 수 있잖아요. 아마 저도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부상을 감추고 뛰었을 거예요. 제가 갈 수만 있었다면.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요, 요즘 에인트호벤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에인트호벤 관중들이 더 이상 저에 대해 야유를 보내지 않는다는 거죠. 엄청난 격려와 응원의 함성을 보내며 좋아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당황할 정도예요. 역시 운동선수는 실력밖에 없어요. 잘 생기지 않아도, 인간성이 그리 좋지 않아도, 여자한테 인기가 많지 않아도, 운동만 잘하면 ‘짱’이거든요. ‘얼짱’ ‘몸짱’보다 더 좋은 게 ‘실력짱’이라는 거 잘 아시죠?
그래서 전 축구를 하고 선수로 뛰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드립니다. 축구를 안했더라면 제가 과연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수나 있었겠어요? 여드름이 제 철 모르고 피어나는 얼굴임에도 그것마저 귀엽다고(?) 봐주시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박지성의 오늘도 있는 겁니다. ^.^
3월27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