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재편·경영승계…‘원샷 투킬’ 노리나
‘원샷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당장 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삼성전자·현대차·SK 빌딩 전경.
지난 1월 22일 야당의 입장 전환 이후 삼성, 현대차, SK, 3대그룹 총수가 대주주인 상장사 주가는 급등세다. 해외투자 부실 우려와 계열사 보유 지분 매물 부담으로 주춤한 삼성물산을 제외하면, 현대글로비스와 SK 등 총수일가가 직접 지분을 가진 종목들은 시장 대비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샷법 도입 취지는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이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분야나 방식을 변경하여 혁신을 추진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의 일반법의 각종 규제를 한시적으로 무력화시키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특별법’ 형태를 띠었다.
우선 소규모 분할과 합병을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결의만으로 추진하게끔 했다. 현행 상법도 소규모 분할과 합병 시 주총을 생략하지만, 피합병 회사 주주들에게 줄 돈이 합병 법인 순자산의 5% 이하인 경우만이다. 원샷법은 이 단서 조항을 없앴다. 사실상 소규모 합병은 모두 이사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기업분할 횟수도 제한이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조금씩 회사를 쪼개서 다른 회사와 붙이는 게 가능하다. 돈이 되는, 또는 지배구조에 핵심적인 자산을 이사회 결의만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20% 이상의 지분을 가져야 한다.
또 주총이 필요한 경우에도 주총소집 통고기간을 2주일에서 1주일로 단축하고, 이의를 제출할 기간도 한 달에서 20일로 줄였다. 경영진 측에서는 신속한 업무 처리가 가능하지만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과 채권자들로서는 대응할 시간이 줄어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원격 전자투표가 인정되지 않고 있는 데다, 해외투자자의 경우 서면으로 의사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감안하면, 이사회 결정에 반대하는 주주들을 결집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합병·분할과 함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른바 ‘역삼각 합병’ 허용이다. 현행 상법상 자회사(S)가 모회사(A) 주식을 피합병 법인(T)에 대가로 치르는 ‘삼각 합병’은 합법이다. 역삼각 합병은 이와 달리 다른 회사(T)의 모회사에게 A 사의 주식을 교부한다. 합병 주체도 S가 아니라 T다. 합병 대가로 모회사의 주식이나 현금을 지급할 수 있어 다양한 방식의 합병이 가능하고, 합병 대가를 지급하는 모회사는 주총 및 주식매수청구권 청구 없이 합병 절차를 진행할 수가 있다.
아울러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자본총액의 2배를 초과하는 부채액 보유 금지, 자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40%(상장 20%) 이상 보유, 계열회사가 아닌 국내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5% 이상 보유 금지, 순환출자 및 상호출자 해소 등의 제한도 적용 유예기간을 늘렸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총수일가가 가장 껄끄러워한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이를 상당부분 완화시킨 것이다.
원샷법 특혜 부여 여부는 사업재편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위원장 2인을 포함한 20인 이내로 구성되는데, 자격은 중앙행정기관의 1급 또는 이에 상당하는 공무원이나 사업재편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위촉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결정권자다.
현재 법안은 “사업재편계획의 주된 목적이 생산성 향상보다는 경영권 승계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고만 담고 있다. 승인해도 그만이란 뜻이다. 설령 경영권 승계를 불허하는 강제조항을 만든다고 해도 해당 기업이 사업재편이라고 항변하면 그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할 때도 다들 경영권 승계로 이해했지만, 당시 삼성 측이 내세웠던 명분은 사업합리화였다”면서 “심의위가 경영권 승계 목적을 이유로 대기업의 사업재편계획에 대해 승인을 안 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증권 전용기 연구원은 “당장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공급 과잉이 아니더라도 최근 CJ그룹과 SK그룹의 빅딜과 같이 그룹사들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발적 M&A의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그룹 내 혹은 지주회사 계열 내에서 계열사 간의 수평적 합병이나 수직적 합병, 기업 분할, 분할합병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며 “역삼각 합병 및 삼각 분할 합병은 자회사가 손자회사로 인수되거나 손자회사가 증손자회사로 인수될 때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삼성그룹에게는 자회사 격인 삼성전자 지배방안, 현대차그룹에게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지배방안, 롯데그룹에게는 지주회사인 호텔롯데와 자회사인 롯데쇼핑·롯데제과의 지배방안이 우선”이라며 “사업구조개편도 결국 자원의 재분배라는 점에서 지배구조 개편과 맞닿아 있는 만큼 (원샷법이) 내부적으로 사전에 준비해 놓은 지배구조개편의 윤활유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열희 언론인
삼성SDI, 삼성물산 주식 매각 묘수는?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 가능성 연합뉴스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해 합병 성공 이후 줄곧 15만 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증시가 부진했지만 자회사의 바이오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알린 덕분에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는 않았다. 지난 21일 여야가 원샷법에 합의하면서 지배구조 수혜주로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26일 삼성물산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대주주인 삼성SDI가 보유 지분 매각에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SDI의 지분 매각은 공정거래법에 쫓긴 까닭이다. 공정위는 지난 연말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신규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고, 이에 따라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약 500만 주(2.6%)를 처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매각시한은 합병일로부터 6개월 뒤인 3월 1일이다. 삼성은 공정위 가이드라인이 너무 늦게 나와 남은 2개월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삼성 측은 해당 주식을 처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인수 대상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들은 순환출자에 걸려 이 지분을 인수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그룹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을 외부보다는 이재용 부회장이나 외부 우호세력에 넘길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500만 주의 시장가치만 무려 7100억 원에 달한다. 블록딜(대량매매)로 넘기기에는 덩치가 너무 크다. 쪼개 팔 경우 주가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설령 이 부회장 등 개인 특수관계인이 매입한다고 하더라도 자금 부담을 줄이려면 주가가 하락할수록 유리하다. 이래저래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 셈이다. 심지어 이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의 1조 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미청약분이 발생하면 사재 3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주가가 최근 크게 하락하면서 유상증자 부담은 오히려 더 늘었다. 향후 상속 등에서 막대한 세금부담까지 안게 될 이 부회장이 이미 동생들과 합친 지분율이 30%를 넘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한 삼성물산 지분을 생돈을 들여 매입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한편 주가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자사주 매입은 고려할 만하다. 삼성물산의 이익잉여금이 6조 원에 달하는 만큼 순환출자 해소라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주이익을 고려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삼성물산은 현재 발행주식의 12.3%를 자기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3% 미만의 자기주식을 추가로 취득할 여지는 있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