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 ‘방탄국회’ 뚫어라!
검찰이 4차례 소환에 불응한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왼쪽은 김수남 신임 검찰총장. 박은숙·최준필 기자
검찰은 그동안 이 의원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모두 4차례 통보했다. 비공개로 2회 통보한 뒤, 불응하자 언론에 알린 뒤 공개소환으로 전환해 2차례 더 불렀지만 이 의원은 “4월 총선에 나가기 위한 당내 경선이 불과 1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환하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표적수사’”라며 끝내 불응했다.
검찰은 이병석 의원의 출석 불응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대응했다.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불체포 특권(국회의원은 회기 중에는 현행범이 아닌 이상 체포·구금하려면 국회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도 검찰이 신중하게 대응한 이유였다.
시간을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9월로 돌려보자. 이 의원의 구체적인 혐의가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었을 때는 국회 국정감사 시즌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심지어 이병석 의원이 검찰의 국정감사를 담당하는 법사위 소속이었던 탓에 검찰은 국감을 앞두고 칼날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나온 ‘이병석 포스코 비리 연관 포착’ 기사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후에도 신임 검찰총장 임명이 있었던 탓에 이병석 의원에 대한 수사는 수면위로 드러내지 않았다. 2차례 비공개 소환 통보 후 언론에 공개할 때 역시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가 적지 않게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도 수사의 한 방법”이라며 “원치 않는 방법으로 수사 기사가 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이병석 의원의 경우 내부에서 많은 고민 끝에 일부 언론에 흘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개소환으로 전략을 바꾼 뒤에는 이동열 신임 3차장이 직접 “서면 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강제수사도 그 중 하나”라며 이 의원을 압박했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검찰 고위관계자는 “당연히 영장을 쳐야했을 내용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금액부터 볼까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이미 억대 아닙니까. 수백만, 수천만 원도 아니고 억대의 금품 수수 혐의자를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건 불가능하죠. 혐의 금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점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이병석 의원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했죠.”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던 것도 냉정히 보면 명목상 끼워놓은 옵션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물론 서면조사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런데 금품수수 정치인을 서면조사로만 마무리하면 우리 국민이 검찰을 납득하고 신뢰하겠느냐”며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다. 서면조사가 그런 정도인데 만에 하나 조사하지 않고 기소한다고 하면 정치인 봐주기를 비판이 아마 쇄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엔 수사를 담당한 검사의 설명이다.
“앞선 사례들을 보면 사실 체포영장을 칠 수밖에 없다는 게 아주 명백한 사례였죠. 앞선 사례와 비교하지 않아도, 사실 검찰이 부담스러울 것은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방탄국회라는 비판을 직면했던 국회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방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방탄으로 자기들끼리 서로 똘똘 뭉친다고 해도 그 여파와 비난은 모두 국회로 가겠죠. 체포영장 청구는 검찰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검찰이 국회의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던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국회의 후안무치’라는 비판이 가장 많이 쇄도했던 일이 지난 2014년 9월에 벌어졌다. ‘철피아’ 비리 관련 송광호 새누리당 당시 의원에 대해 여야는 하나로 대동단결했다. 총투표 수 223표 가운데 찬성 73표, 반대 118표, 기권 8표, 무효 24표.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야당 의원들도 적지 않은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는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때였음에도 체포 동의안 부결에서는 한 뜻이었다.
방탄국회는 10년 전에도 똑같았다. 심지어 지난 2003년에는 본회의를 열어 그동안 보류됐던 여야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상정해 처리했으나 여야가 힘을 합쳐 전원 부결시키는 ‘철벽 공조’를 선보였다. 당시 각각 다른 혐의로 체포영장이 청구됐던 이는 박재욱 박주천 최돈웅 박명환(당시 한나라당), 박주선 이훈평(민주당), 정대철(열린우리당) 의원 등 7명.
2003년 12월 말 체포동의안은 부결시켰으나 7일 뒤 회기가 끝나 체포가 가능해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회의원 검거팀이 만들어졌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검찰의 신병 확보를 피해 기도원으로 잠적하거나 쓰러져 병원으로 입원하는 소동도 있었다.
물론 검찰이 모든 의원을 다 조사하고 기소하는 것은 아니다. 18대 총선을 앞둔 당시에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조사 없이 재판에 넘겨졌다. 문 의원은 이수원 창조한국당 재정국장과 공모해 이한정 의원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주는 대가로 재정지원을 요구해 이 의원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6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문 대표가 9차례에 걸친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자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아 공소시효(9일)를 감안, 조사 없이 문 대표를 기소했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해 조사 없이 기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회의원의 출석 요구 불응은 오랜 기간 이어진 ‘트렌드’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과 김한길 무소속 의원도 몇 달째 검찰의 소환을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로비를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비난 여론이 높았음에도 이들은 끝내 소환에 불응했고, 검찰은 혐의 액수가 적은 탓에 강제수사로 전환하지 않았다.
이들의 경우 곧 치러질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소환 및 기소 가능성이 거론된다. 두 의원이 다시 한 번 금배지 수성에 성공할 경우 소환 불응이 이어지겠지만 의원직 유지에 실패할 경우 강제 소환 가능성도 높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솔직히 국회의원일 때와 아닐 때 태도 차이는 엄청납니다. 국회의원이 아닐 경우 그냥 긴급체포를 해도 되고, 그런 걸 알다보니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면 알아서 잘 나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특혜 속에 호의호식하는 걸 인정하는 꼴인데 문제가 많죠.”
방탄국회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체포동의안이 과반을 넘기는 데 실패했다. 19대 국회 들어 이병석 의원까지 체포동의안이 청구된 것은 모두 11번. 이 중 본회의까지는 7건밖에 올라가지 못했고 그 중 4명의 체포 동의안만 가결됐다. 앞서 언급한 송광호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2명은 끝내 부결됐다(박지원 무소속 의원의 경우 본회의 상정 직후 체포 동의안이 철회돼 표결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19대 국회 후반기로 갈수록 국회의원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박기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여론을 통해 중형을 선고 받은 제가 무슨 면목으로 유권자에게 표를 호소할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우리 국회가 저로 인해 비난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눈물을 보이며 방탄국회를 반대했고 체포동의안 가결을 거쳐 끝내 구속됐다.
남윤하 언론인
이병석, 검찰 치켜세우기 까닭 수사 대상 되더니…“최고의 두뇌들” 급칭찬 “최고의 두뇌들이 검찰 조직을 받들고 있고, 거기서 만들어낸 혁혁한 검찰 수사의 여러 공적들이 검찰을 신뢰할 수 있게끔 만들고….”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과 국회 본회의장(왼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시즌이 한창이던 10월 2일. 서울고검과 산하 지검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중 발언권을 가진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이 난데없이 검찰을 치켜세웠다. 첨단수사부 소속 한 부장검사를 일으켜 세운 이 의원은 “올해의 검사상을 받은 훌륭한 검사”라며 낯 뜨거운 칭찬을 늘어놓더니 예산과 인력 지원을 약속하기까지 했다. “필요하면 예산 지원을 하고 인력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많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한번 (예산안을) 내십시오.” 당시 이 의원은 포스코 비리 의혹과 관련해 수사선상에 올라 있었던 상황. 이 때문에 이 의원의 상식 밖 국정감사 태도를 놓고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 받을 때 봐달라고, 자기는 검찰을 챙겨줬던 사람이라는 얘기하려고 저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