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허재. 술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인생의 후반전 또한 밝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의 등번호는 영구결번 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17일 여의도의 한 복집에서 만난 허재는 전날 과음했다고 말하면서도 소주가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기꺼이 술을 마셔 주었다. 결국 탄력을 너무 ‘쎄게’ 받은 나머지 강남으로 건너가 녹음기를 끈 채 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허재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흔이 다 된 나이에 허재처럼 귀엽고(?) 친근하게 어필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중토크’의 진수를 보여준 ‘미워할 수 없는 천재’, 허재와의 술자리 데이트를 소개한다.
허재랑 대화를 나누다보면 정치, 경제, 문화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론은 술 이야기로 끝난다. 무궁무진한 술 에피소드로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끝이 없었던 것. 그 중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하루는 서장훈이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가 된 후 TG와 연습경기를 치르는 날이었다.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서장훈을 본 허재가 한 마디했다. “야, 장훈아, 넌 아무 것도 아니야. 난 광화문 <조선일보> 옥탑 광고에 나온 사람이야. 한국에서 제일 큰 텔레비전에 나온 형도 있는데 그 정도 갖고 사내 새끼가 그렇게 기가 죽냐!”
허재가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을 때의 장면이 광화문 대로변의 멀티비전에 생중계된 일화를 놓고 허재가 서장훈을 위로한답시고 던진 말이다. 이런 얘길 전한 허재가 기자한테 한마디 덧붙인다.
“이상한 건 장훈이 음주운전 기사에 왜 내 ‘과거’가 더 크게 나오냐고. 그래서 내가 후배들한테 부탁하는 말이 있잖아.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음주 사고만 내지 말라고. 그러면 꼭 내 이름이 거론되니까.”
합숙생활을 하다보면 감독의 통제를 받게 되고 특히 ‘주당’ 허재는 한동안 ‘통제 대상 0순위’에 오를 만큼 코칭스태프들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았기 때문에 숙소 생활에서 벌어졌던 술과 관련된 추억담은 기기묘묘하다. 이런 사례도 있다.
▲ 가족 사진 | ||
허재가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하는 후배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허재의 큰아들’로 불리는 김주성은 허재한테 여러 가지의 의미를 부여한 선수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중앙대와 기아 시절 김유택, 한기범 등 한국 농구의 최고 장신 선수들과 운동을 해봤잖아. 장신이 센터를 볼 경우 그 편안함의 맛을 알거든. 그래서 프로가 된 후 늘 키 큰 선수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 그래서 주성이를 간절히 원했던 거야. 트라이아웃하는 날 어땠는지 알아? 정말로 목욕재개 했다니까. 원주 치악산 밑에 자리한 사우나에서. 누가 시비를 걸어도 꾹 참고 모든 걸 주성이한테 집중했지. 왜 그런 말 있잖아. 간절히 원하면 복이 온다고. 25%의 확률밖에 없었는데 무조건 우리한테 달라고 빌고 또 빌었어. 그런데 우리가 주성이를 뽑은 거야. 사실 그동안 나 우승해도 만세 부른 적 없거든. 그런데 주성이 번호를 뽑았을 때는 ‘가오’ 떨어지게 만세까지 불렀다니까. 그러니 내가 안 예뻐할 수 있었겠어?”
허재는 농구계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 인정할 만큼 ‘후배 사랑’에 얽힌 비화가 많다. 특히 몸이 허약한 김주성을 위해 보약과 뱀탕을 아내 몰래 빼돌릴 만큼 허재는 김주성을 좋아했고 팀 우승을 목말라 했다. 그래서인지 허재는 농구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지난해 원주 TG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을 때를 꼽는다.
“한마디로 감격시대였지. 꿈을 이뤘으니까. 물론 대학 때나 실업팀에서 밥 먹듯이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꼭 원주에서 다시 한번 그 맛을 느끼고 싶었거든. 사실 작년에 우승하고 은퇴하려고 했어. 더 이상 뛸 힘도 없었고. 그런데 삼보 회장님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한 해 더 하게 됐는데 후회도 미련도 없어. 물론 내 은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1, 2년 더 뛰라고 성화지. 하지만 내가 계속 머물러 있으면 후배들이 크질 못해. 그래서 떠나는 거야. 사실 걱정도 많아. 선수로선 장수했는데 앞으로 지도자로서도 장수할 수 있을지. 성적 안 좋으면 ‘농구 대통령’ 이란 명성이 무슨 소용 있어. 그냥 잘리는 거잖아.”
허재는 농구 지도자가 꿈도 아니고 또 끝도 아니었다. 마지막은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가 돼 행정가로 나서고 싶은 야망이 숨어 있었다.
항상 대접만 받고 농구 생활을 했던 터라 지도자로 생활하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얼마나 잘, 그리고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놓는다. 그걸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농구 유학을 가는 거라고 말하면서.
“미국에는 농구에 대한 기술보다 인생을 공부하러 가는 거야. 미국의 작전이 아무리 좋은들 뭐해. 한국과는 잘 맞지 않는데. 물론 농구도 배우겠지만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산 부분에 대해 새롭게 되새기고 느끼고 싶어. 가족들과도 정말 오붓한 시간을 갖고도 하고.”
허재의 농구 인생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허재의 보양식으로 명성이 자자한 뱀이다. 아버지 허준옹이 뱀탕을 즐겨 해줬던 것이 지금까지도 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했다.
“난 뱀과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 다른 보약보다 그게 잘 듣거든. 하도 뱀을 먹다보니 여러 나라의 뱀들을 다 겪어봤는데 뱀은 사계절을 견딘 뱀이 제격이야. 그중에서도 강원도의 뱀이 최고지. 동남아 뱀은 뱀도 아니야.”
허재는 자신과 관련한 숱한 에피소드 중에서 소개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소연’이다. 바로 농구의 천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 KCC 정재근과 몸싸움을 하고 있는 허재. | ||
허재한테 가족은 생명과 같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면면이 강해 보여도 아내와 아이들 앞에선 껌벅 죽는다. 특히 자신의 대를 잇겠다며 농구공을 잡은 큰아들 웅이와 성격면에서 아빠를 빼닮은 훈이는 그의 ‘존재의 이유’들이다.
“웅이는 카리스마가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로 앞에 서는 편이거든. 훈이는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야. 엄마가 용돈으로 1만원을 주면 그날로 친구들을 햄버거집으로 이끌며 ‘야 내가 오늘 쏜다’ 이러면서 사준다고 하더라고.”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한가득이다. 농구나 술 얘기보다도 아들에 관한 화제로 돌아가면 묻지 않아도 절로 이야기가 쏟아진다.
“나 평소 이런 얘기 잘 안하는데 미수한테 정말 고마워.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도 안 해봤거든. 그래도 속 썩이는 남편 잘 토닥거려 주고 두 아들 잘 키우고 내조하는 거 보면 문득 아내가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지.”
아버지 허준 옹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난 우리 아버지처럼 웅이 뒷바라지 못할 거야. 그야말로 지극 정성이셨으니까. 어린시절 하루 용돈 1천원씩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아버지는 혹시 내가 돈이 떨어져 먹고 싶은 거 못 먹을까봐 학교 주변의 분식점을 돌면서 내 사인만 있으면 모두 결재해줄 테니 외상으로 처리해 주라고 부탁하고 다니신 분이야. 내가 실력에다 남다른 기질이 있다면 그건 순전 아버지 탓이라고 봐. 아버지의 남자다운 배포를 닮고 싶었으니까.”
무뚝뚝한 부자지간이지만 그 말없음 속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부정이 숨어 있었다. 허재의 눈빛이 순간 촉촉이 젖어든다.
허재는 조만간 성대한 은퇴 경기를 벌일 예정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스케줄이 나오지 않았지만 허재가 좋아하고 또 허재를 사랑하는 후배들과 농구 역사상 처음 치르는 은퇴식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허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허재란 사람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은 터라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 본 허재는 많은 걸 가져봤고 누려봤지만 여전히 뭔가를 더 갖고 싶은 허전함과 외로움을 안고 있었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으로 인해 사람에 대해 실망이나 배신감을 곱씹어도 여전히 사람이란, 남자란 술도 마시고 서로 부대끼며 ‘정’과 ‘의리’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허재가 소원대로 감독으로서도 장수하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감독으로 은퇴할 때 제2의 ‘취중토크’를 다시 하고 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