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취중토크를 통해 꼭 한 번 만나보리라’ 하는 막연한 생각이 현실로 이뤄진 지난 7일, 전남 순천의 집에서 만난 김영광은 핼쑥한 얼굴로 기자를 반겼다. 감기 몸살로 링거까지 맞았다고 하면서 인터뷰를 제대로 해낼지 모르겠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어머님이 정성스레 차려주신 술상 앞에서는 젊은 세대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투혼(?)을 불살랐다. 물론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술은 앞에 앉은 여자가 죄다 마셨지만. 올림픽 최종예선전을 치르며 ‘무실점 완벽 방어’로 한국 축구를 짊어질 차세대 골키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영광과 그의 애견 ‘굴비’(주인과 개 이름을 합치면 ‘영광 굴비’가 된다)와의 정신없는(?) 인터뷰를 소개한다.
김영광의 별명은 ‘리틀 칸’이다. 독일의 명수문장 올리버 칸을 빗댄 표현이다. 그럴싸한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김영광은 좀 불만스러운 모양이다.
“전 처음에 칸처럼 수비를 잘한다는 칭찬인 줄 알고 흡족해 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험상궂은 외모 때문이라면서요? 올리버 칸이 지난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최고의 추남으로 꼽혔다는 거예요. 솔직히 저 그 말 듣고 충격 먹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칸보단 제가 더 낫지 않아요?”
훨씬 낫다고 말했다. 아픈 사람 기 좀 살려주자는 차원에서^^. 조각 같은 미남은 아니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강한 남성미는 김영광의 매력 포인트다. ‘리틀 칸’이란 별명이 순전 외모 때문만은 아니라는 부연 설명까지 듣고서야 김영광의 억울한 표정이 조금은 부드럽게 펴졌다.
애인이 있는 여자(또는 남자)에게 ‘작업’ 들어갈 때, 흔히 하는 말이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냐’다. 직업이 진짜 골키퍼인 김영광한테 그런 경험이 있는지를 묻자 주저없이 ‘예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여자친구를 뺏은(?) 적이 있어요.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사랑을 택했고 친구와는 ‘원수지간’이 되었죠. 고등학교 입학식 때 처음 보고 프로 입단할 때까지 만났어요. 햇수로 4년 반이나 사귀었어요. 너무나 힘들게 만났기 때문에 헤어지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는데 결국엔 이별하더라고요.”
김영광한테 여자친구를 빼앗긴 그 친구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김영광이 당시 학교의 ‘짱’이었기 때문.
“제가 초·중·고등학교 때 ‘짱’이었어요. 어느 누구도 저랑 ‘맞장’ 떠서 이기질 못했죠. 정말 싸움 많이 했어요. 조용히 지내고 싶어도 제 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절 가만 두질 않았거든요. 전 먼저 눈빛으로 기선을 제압했어요. 그러면 대부분 먼저 기가 죽더라고요. 저랑 싸워서 진 애들은 그때부터 ‘꼬붕’ 노릇을 자처했어요. ‘짱’이 되고 싶지 않아도 워낙 주변에서 절 받들고 사니 절로 ‘짱’이 된 거죠. 철없던 시절이었지만 사는 재미는 있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보스’로 군림하며 살던 김영광은 프로에 입단하면서부터 그 자신이 ‘꼬붕’에다 눈칫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신분 하락’을 맛보게 된다. 1군이 아닌 2군에서 생활하며 신인이자 막내로 선배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방졸’(방장의 반대어) 인생의 막을 올린 것.
“한마디로 적응이 안 됐죠. 2군 생활도 서러운데 ‘따까리’까지 하려니 더 더욱 힘들었어요. 그러나 그런 밑바닥(?) 생활을 통해 비로소 세상을 보는 안목과 방법이 생긴 것 같아요. 축구선수로 살아가는 목표도 생겼고 오기와 근성도 만들어졌어요. 제가 얼마나 팀에서 필요한 존재인가를 확인시켜주겠다며 별렀는데 결국 그 기회가 오더라고요.”
2003년 5월14일이었다고 한다. 부천과의 경기에서 김영광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서는 감격을 맛봤고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그리고 성인대표팀에까지 오르며 ‘포스트 이운재’로 주목받는 골키퍼가 되었다.
모두 다섯 차례의 올림픽 예선전을 치르며 무실점으로 선방한 김영광은 첫 게임이었던 중국전과 이란과의 원정경기, 그리고 창사에서 벌어진 중국전(어웨이 경기)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중국과의 첫 게임은 정말 짜릿했어요. 제가 (최)성국이한테 패스한 골이 단독 드리블로 연결돼 결국 (조)재진이형이 골을 넣게 된 거잖아요. 얼마나 흥분되던지. 이란전의 경우엔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막지 못하면 한마디로 ‘역적’이 되는 순간이었죠. 절체절명의 위기를 잘 극복한 게 기분 좋았고요.”
그리고 중국 원정 경기는 6만명이 넘는 엄청난 관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치른 경기였기 때문에 더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치른 말레이시아전도 빼놓을 수가 없네요. 한국팀이 그쪽 골키퍼를 영웅으로 만들어 줬잖아요. 30여 개의 슛을 쐈는데 3개밖에 성공시키지 못했으니까요. 아마 그 골키퍼는 90분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좀 미안했죠. 전 ‘손님’이 없어 놀고 있는데….”
▲ 김영광이 여자친구를 보여준다며 신세대답게 휴대폰 카메라를 꺼낸다. ‘야생마’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수줍게 웃는 김영광의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영광은 술자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술은 못 마신다. 기독교 신자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술이 체질상 잘 받지 않는다고 한다. 딱 한 번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우승 후 뒤풀이 장소에서 양주 10잔을 털어 넣었다가 사망 직전에까지 간 이후론 더 더욱 술을 ‘금지약물’처럼 멀리하게 됐다.
“대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요. 곧잘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남들 술 마실 때 마이크 잡고 배경 음악 깔아주면 분위기가 금방 ‘업’돼요. ‘안주발’이 그리 센 편도 아니고. ‘취중토크’라고 해서 처음엔 사양했어요.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술 대신 술 마신 사람 이상의 솔직한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어 인터뷰에 응한 겁니다. 그런데 이 맥주, 전 한 잔만 할 테니 나머진 누나가 다 드세요.”
‘기꺼이’ 남은 술을 다 마시기로 하자 김영광은 다음과 같은 립 서비스로 술을 대신했다.
프로 데뷔 후 축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여자 보기를 돌같이 여겨온 김영광이 첫눈에 반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2002년 울산으로 원정 경기를 갔다가 모 호텔에서 근무하는 김지연씨(21)를 만난 것.
“정말 첫눈에 마음이 끌렸어요. 그런데 그곳을 떠나올 때까지 얼굴만 쳐다볼 뿐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거든요. 나중에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신기한 건 숙소 도착 후 메일을 열어봤는데 글쎄 그녀로부터 편지가 와 있는 거예요. 팬 카페를 통해 메일 주소를 알았다면서요. 다른 얘긴 없었어요. 제 인상이 너무 착하고 성실해 보인다며 앞으로 성공할 것 같으니 지금보다 더 노력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엄청 감동 먹었어요.”
그 메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한 달에 몇 번 만나냐고 물었더니 2년간의 교제 기간 동안 얼굴 본 게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며 푸념이다.
“최근 5개월 동안 만나질 못했어요. 그 친구도 직장이 있고 저도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는 정신없는 생활로 짬을 낼 수가 없었어요. 여자친구의 불만이 대단해요. 지난번에는 너무 미안한 나머지 그 친구한테 자주 만날 수 있는 다른 남자를 찾아보라고 말했다가 얻어맞을(?) 뻔했다니까요.”
김영광은 자신의 휴대폰에 골키퍼 유니폼과 장갑을 끼고 찍은 여자친구의 사진을 저장해 두고 수시로 열어본다고 한다. 결혼 여부는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아직은 미지수지만 만약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다면 결혼도 빨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의 철벽방어를 거듭 다짐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처음 시작한 김영광의 당시 포지션은 센터포드였다고 한다. 그러다 감독이 공격수로서의 자질 부족을 지적하며 미드필더로 내려보냈고 미드필더에서 사이드 어태커로 밀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스위퍼를 보게 됐다고 한다. 마지막 종착역이 ‘볼보이’.
김영광은 골키퍼로 전업한 후 당시 객원코치였던 임종호 현 프로 심판으로부터 혹독한 지옥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눈물과 코피를 쏟는 강행군을 벌이면서도 유소년 대표팀에 발탁되고 싶은 욕심에 임 심판의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
“해보니까 골키퍼는 참 외로운 자리더라고요. 스포트라이트도 받기 어렵고. 지난번 중국전이 끝난 뒤 첫 골을 넣은 (조)재진이형한테 ‘스포츠신문 1면에 나오겠다’며 부러움을 털어놓았더니 저한테도 그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거예요. 골키퍼는 주목받기 힘들어요. 월드컵 때 (이)운재형처럼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를 막아내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지 않는 한.”
조재진-‘건상우’(인기는 연예인 권상우 못지 않은데 조금 ‘건방지다’고 해서), 박지성-‘순수 농촌 총각’, 이천수-‘귀여운 악동’, 김동현-‘삼식이’, 최태욱-‘목사님’, 박용호-‘조각미남’, 김치곤-‘까불이’, 김두현-‘나이는 후배, 외모는 선배’, 박규선-‘태국 용병’…. 올림픽대표팀 내에서 나도는 선수들의 별명이나 연상되는 이미지란다. 김영광 하면 ‘무식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자신은 절대로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김 글로리(영광)’.
인터뷰 말미에 지나가는 말로 친한 연예인이 있냐고 물었다. “리포터 하는 조용구형이랑 친해요. 그리고 이건 기사화되면 안 되는데… 가수 ‘주얼리’라고 아세요? 그 멤버 중 이지현과 친분이 있어요. 저랑 동갑내기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요즘 잘 나간다면서요?”
‘스포츠 기자의 입장’에선 ‘주얼리’의 이지현보다 김영광이 더 뜬 것 같다. 김영광은 자신의 팬 카페 회원이 3천명을 넘어섰다면서 ‘건상우’ 조재진의 팬 카페 회원 8천명을 따라 잡는 게 개인적인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