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상문 롯데 자이언츠 감독(왼쪽),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 | ||
아직 속이 완전히 시꺼멓게 타들어 간 감독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매 경기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맘고생에는 성적이 좋거나 나쁘거나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승패에 관계없이 권위와 위엄을 다소 갖춰야 하는 감독들은 언제나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다. 물론 속으로는 ‘희로애락’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의 기복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 이들의 위치다.
올 시즌에는 유독 신임 감독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는데 그만큼 이들에게는 감독의 무게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시합 내용과는 별개로 성적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프로야구 순위표에서 나란히 6, 7위권을 다투고 있는과 두산 김경문 감독과 롯데 양상문 감독은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성적이 바닥권을 유지하고 있는 순위 때문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특히 양상문 감독은 아쉬움을 남기는 경기가 계속되자 “이제는 도인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라는 말로 그간의 속타는 마음을 내비쳤다. 시즌 초반 4승1패로 반짝 1위까지 달렸던 롯데는 이후 6차례의 연장전과 무려 8번의 1점차 패배로 양 감독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렇다 보니 양 감독은 시즌 초반 불면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고.
두산 김경문 감독은 얼마 전 당한 5연패 때문에 감독 부임 이후로 편할 날이 없었다는 소화기관들이 다시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팀이 연패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상당히 예민해지는데 최근 들어서 소화가 안 되는 걸 보면서 나도 민감해졌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고. 현재 두 감독은 생활패턴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김 감독은 석촌호수에서 조깅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양 감독은 오히려 술자리가 줄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아쉬웠던 순간이 더 떠올라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더라는 것.
프로축구에서는 유난히 많은 무승부 때문에 감독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 16일까지 첫승을 챙기지 못하며 5무1패를 기록했던 부천 정해성 감독과 개막전 승리 이후 4무1패의 부진에 빠졌던 전남 이장수 감독은 역시 신임 감독으로서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 정해성 부천 SK 감독, 이장수 전남 드래곤즈 감독, 조광래 서울FC 감독(왼쪽부터) | ||
개막전 이후 다섯 경기째 승리의 맛을 못 보고 있는 전남 이장수 감독은 데뷔전의 여운이 너무 길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감독은 “이기고 지는 게 직업이다 보니 경기마다 너무 민감해질 필요까지는 없다”면서도 “뭔가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도 안 터지니 역시 (감독이) 쉬운 자리는 아닌 것 같다”며 팬들의 관심에 특히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2승 4무로 16일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 서울FC의 조광래 감독은 팀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지만 맘고생만큼은 여느 감독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스트레스는 더 많이 받는다고 자평할 정도다. 조 감독이 내세우는 이유는 유독 따르지 않는 골운.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도 꼭 골대를 맞추며 비기곤 했다. 이 점에 대해 조 감독은 “서울에 입성한다고 대단한 신고식을 치르는 건 아닌가”라는 풀이를 내놓기도.
또 다른 이유는 ‘선수 농사’ 때문이다. 올림픽대표팀이 아테네올림픽축구 예선을 6전 전승으로 통과했지만 조 감독은 “그 덕분에 5명이 넘는 우리팀 선수들의 차출로 전술 훈련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조 감독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브라질 출신의 헤나우도가 연일 헛발질을 하며 단 1골만 기록하고 있기 때문. 지난해 자국 리그에서 30골로 득점 2위를 기록한 까닭에 믿음이 대단했는데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 감독은 최근 이런 말을 자주 되풀이한다고 한다. “알 수가 없어, 도대체 알 수가 없어.”
김남용 스포츠라이터